며칠째 손목이 아팠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많이. 식사 할 때 젓가락질 하는 것도 버거웠으니 지후를 안고 돌보는 일은 당시의 나에게 신체적으로 더욱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더구나 지후가 어린이집도 다니지 않을 때라 내가 스스로를 돌보고 병원을 들르거나 휴식을 취할 시간적 여유가 도저히 없는 상황이었다. 신랑이 야근이라도 하는 날이면 그 날은 정말 최악. 지후가 깨는 그 순간부터 지후가 잠들 때까지 아이를 돌보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기에 나는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었고 그저 손목 보호대 하나로 고통을 견뎌내야 했다.
하지만 아이를 돌보며 손에 물이 닿을 상황이 너무 많다보니, 너무 고통스럽고 참기 힘든 순간에만 손목 보호대를 잠시 착용했다가 손을 씻어야 할 때 풀어놓고 그렇게 계속 손목 보호대를 차지 않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하필 그 시기에, 내가 너무 아파서 신랑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날, 신랑은 내일 회식이 예정되어있다고 했다. 팀 회식도 아니고 전체 회식이라고. 신랑의 말을 듣고 한참을 고민하고, 말을 할까 말까 몇 번을 망설이다 말을 꺼냈다.
"근데 있잖아, 아내가 아픈데도 회식을 빠질 수가 없는 거야? 그 회사 회식은 대체 어떻게 해야 빠질 수 있는 거야?"
나는 정말로 궁금했다. 대체 그 회사의 회식은 어떤 사정을 가진 사람이 빠질 수 있는 것인가. 단 한 명도 예외가 없단 말인가. 내가 남초회사에 근무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해를 못하는 걸까.
이 질문을 듣고 그는 당혹스러움을 보이며 '모두가 되는 날짜로 잡은 거라서 빠질 수가 없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말이야... 나는 아플 걸 미리 정하고 아픈 게 아닌데...? 나 지금 아프잖아 오빠."
그 말을 듣고도 같은 핑계만 되풀이하며 우물쭈물하는 그.
"어쨌든 내 생각은 그렇다는 거야. 이제 결정하고 행동 하는 건 오빠 몫이야."
한참 말이 없던 신랑이 어렵게 입을 뗐다.
"자기가 이해 좀 해줘..."
뭐라고?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는 왜 회사가 아니라 나에게 이해를 구하는 걸까.
이해를 구하는 대상이,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걸까.
이런 상황에서 회식을 택하는 그를 원망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배우자가 아파서 회식에 참여하지 못 한다'는 것을 그저 회식을 피하기 위한 핑계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그것이 사실이라 믿더라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쉽사리 그를 집으로 보내주지 않고 배려해주지 않는 직장 분위기를 원망해야 하는 걸까.
사실 알고 있다. 원망의 대상은 그가 다니는 직장이 아니다. 원망을 하려면 내 상태를 알고도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신랑을 원망해야 한다. 내가 가족으로, 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 배우자로 선택한 사람을.
원망을 하려거든 그를, 혹은 그를 선택한 내 자신을 탓하는 게 맞다.
아니지. 무언가 탓을 하고 그 탓의 뿌리를 찾아가다보면 그 끝엔 최종 대상을 향한 분노나 그로 인한 우울감만 남을 테니 그냥 놓아버려야지.
그럴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