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신랑이 먼저 일어나 8시쯤 출근을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지후가 깬다. 그 때부터 시작되는 우리의 하루. 일어난 지후를 대충 씻기고 아침을 먹인 뒤 함께 놀아 주다가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그 이후에는 나도 할 일을 하고, 출근 하는 요일에는 출근을 한다.
출근한 날이면 퇴근하자마자 허겁지겁 지후의 어린이집으로 가서 지후를 데리고 나오고, 출근하지 않는 날엔 비교적 여유롭게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지후와 함께 동네 주변을 걷고 놀이터에서 놀거나 키즈카페에 데리고 가서 놀리기도 한다.
그렇게 지후의 체력을 어느 정도 뺐다 싶으면 집에 가서 간단히 씻긴 뒤 오후간식을 먹이고 놀아주면서 동시에 저녁 준비를 시작하는데, 이 때부터는 정말 전쟁 같은 시간이 펼쳐진다. 지후는 나의 관심을 다 차지하고 싶어 하고 나와 함께 놀고 싶어 하는데 나는 저녁 준비를 해야 하니 그 마음을 알면서도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후의 기분이 괜찮은 날엔 요리 하다 중간 중간 지후를 돌보는 것이 가능한데, 가끔 지후가 심하게 떼를 쓰거나 나를 계속 찾는 날이면 그 날은 정말 정신이 쏙 빠진다.
가스레인지 곁에 서서 불을 켜고 요리를 하고 있는데 다리에 매달려 안아달라고 울고 악을 쓰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버겁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다. 내 새끼에게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여 주려고 요리를 하는 건데, 그 요리를 하기 위해서 아이를 내버려두고 밀어내야 하는 현실이라니.
울적한 마음을 달래가며 요리를 마치고 지후에게 저녁 식사를 차려주는 시간은 보통 오후 6시 30분. 신랑 퇴근 후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면 좋겠지만 신랑이 직장에서 퇴근하는 시간 역시 빨라야 6시 30분이고, 집에 도착하기 까지는 퇴근 후 거의 한 시간이 걸린다. 사실 평상시 퇴근이 그 시간보다 더 늦기 때문에 지후가 저녁식사를 마치고 한참 놀고 있을 즈음에 집에 오는 편이다.
그런 신랑을 보는 내 입장에서는 신랑이 안쓰럽기도 하고, 갓 만든 음식을 함께 먹고 싶은 마음이 크기도 해서 되도록 신랑을 기다렸다가 함께 저녁을 먹으려 하는 편이다. 그래서 신랑이 퇴근 하자마자 밥을 떠서 부랴부랴 먹으려 하면 지후는 그 때부터 우리 부부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고 재촉하면서 식사를 방해한다. 지후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엄마 아빠가 둘이서만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으니 소외감이 들 만하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지후에게 밥을 먹일 때에도 배고픔을 참고 있다가 저녁 8시가 되어서야 겨우 식사를 하는 건데 그 시간에 방해를 받으니 성가시기도 하고, 특히나 지후가 울면서 떼를 쓰거나 자꾸만 나를 이리 저리 움직이게 만드는 상황이 반복 되면 밥 먹는 과정 자체가 너무 지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정도도 감사해야 할 때가 있으니, 그 때는 바로 신랑이 맡은 프로젝트의 마감이 임박했을 때다. 그 시즌이 되면 지후가 아빠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는 날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지후를 낳기 전엔 TV 광고에서 아이가 아빠에게 “아빠, 우리집에 또 놀러 오세요~”라고 하는 것을 보고 ‘저럴 수가 있나? 진짜 웃기다’하고 웃어 넘겼었는데 이제 보니 그건 극사실주의 광고였다. 우리의 삶을 그대로 옮겨 놓은 광고였다니!!
요즘은 과도한 야근을 당연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워라밸(work life balance)’이라는,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서 워라밸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회사와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하는데 왜 그게 우리 가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걸까?
신랑이 가정에 소홀한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가사일도 적극적으로 도맡으려 하는, 나름대로 많이 노력하는 사람인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득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 사람에 대한 화가 아니라
이 지독한 현실에 대한 화.
나부터도 '독박육아'라는 표현을 마치 유행어처럼 가볍게 쓰고 있지만 사실 이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왜 신랑이 회사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고 일을 하는 동안 나만 부랴부랴 퇴근해서 아이를 돌봐야 하지? 아이가 떼 부리거나 뻗대는 가장 절정의 순간을 왜 나 혼자 감당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
아이가 자라면서 떼를 쓰고 힘들게 하는 일은 당연한 거다. 그런데 그것을 부모 중 한 명이 혼자 감당하고 있는 것은 절대 당연한 일이 아니다.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라면서 아이가 보여주는 수많은 변화들, 그 자체로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순간들. 그것들을 나 혼자 보고 눈에 담아야 하는 것이 참 안타깝다. 물론 최대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그 순간을 기록하고 신랑에게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 순간에 함께하는 것은 아니기에 아쉬움이 크다.
어째서 아빠라는 존재는 평일에 아이와 밥 한 끼 하는 것이 힘든 걸까? 아이가 아빠 얼굴이라도 봤으면 좋겠다는 날도 있는 요즘,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식사하는 것까지 바란다면 너무 분에 넘치는 걸 바라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