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며 살다 보면 유독 아이가 말을 안 듣고 힘들게 하거나, 폭발적으로 짜증을 부리는 시기를 겪게 된다. 그럴 땐 ‘아.. 그 시기가 또 왔구나.. 무사히 넘겨야지’라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보다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는데, 문제는 정작 그 시기가 왔을 땐 도저히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거다.
잘 먹던 밥을 안 먹고, 기저귀도 안 갈겠다고 하고, 잠도 안 자겠다고 하고, 사소한 것 하나에도 화를 내기 시작하면 엄마는 결국 침착함과 인내심을 잃고 “얘가 또 왜이래?!”하고 소리치게 된다.
거기다 아이의 떼가 늘어난 것과 비례해서 엄마의 육아피로도와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예민해지기까지. 그 시기에는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어서 다 놓아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아이를 재우고 엄마 역시 잠자리에 눕고 나면 ‘그래, 오늘 하루도 잘 버텼다. 내일은 좀 낫겠지...’하며 숨을 돌리고 하루를 마무리하게 된다.
그렇다보니 아이가 잠드는 시간, 즉 ‘육아퇴근’하는 시간은 하루 중에서 가장 기다려지고 기대되는 순간이 된다. 보통날도 그렇긴 하지만 아이가 힘들게 하는 시기라면 더더욱.
그 날도 그런 날이었다.
육아퇴근 하는 시간만을 기다리며 끊어질 것 같은 이성의 끈을 겨우 붙잡고 지후를 돌보다가 드디어 재우러 잠자리에 들어갔는데, 그날따라 지후가 잠이 안 오는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보고 있었다. 잠이 안온다고 벌떡 일어서서 뛴 것도 아니고, 안 잔다고 운 것도 아니었다. 그냥 지후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후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졸리지 않은데 엄마가 누우래서 누웠고, 졸리지 않지만 가만히 누워 몸이라도 팔다리라도 쉬고 있었으니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지후에게 너무나 지친 목소리와 말투로 “제발 자, 지후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은 ‘엄마도 숨 좀 쉬자...’.
입 밖으로 내뱉지도 않고 그냥 속으로 생각만 했을 뿐인데,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하루하루가 댐의 작은 구멍을 막아서고 있는 것 같은 버겁고 위태위태한 나날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버티고 그럭저럭 잘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댐이 결국 무너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나라를 구한 소년>이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네덜란드에 사는 한스라는 소년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다가 댐에 구멍이 난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것을 손가락으로 급히 막았는데 그 구멍이 점점 커지더니 손으로, 팔뚝으로 겨우 구멍을 막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한스는 차가운 물로 인해 팔이 시리고 점차 힘이 빠져 나갔다. 그 즈음, 밤이 늦어도 돌아오지 않는 한스를 찾기 위해 부모와 마을 사람들이 길을 나섰고 댐을 막고 있는 한스를 발견해서 한스와 댐을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한스가 마을을 구한 영웅이 되었다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마치 내가 동화속의 한스가 된 것 같았다. 다만 한스 이야기처럼 해피엔딩은 아니었지만.
고된 독박육아에 치여 내 마음 속 ‘평정심’이라는 댐에 균열이 일어났고 나는 어떻게 해서든 그 댐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 했는데, 그런 나를 구해주기 위해 신랑이 야근을 마치고 부랴부랴 달려 왔지만 그 댐은 이미 무너지고 난 뒤였던 것이다.
눈물이 흐른 순간 지후가 놀랄까 싶어 터져 나오는 울음을 꾹꾹 눌러 담고 겨우 지후를 재웠고, 그러고 나니 참았던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그리고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큰 회의감과 우울감이 나를 감쌌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컴퓨터만 쳐다보고 일하고, 야근까지 강요받고, 그렇게 겨우 퇴근해서 집으로 도망치듯 퇴근하는 신랑. 녹초가 되어 돌아와서도 육아를 함께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설거지며 온갖 집안일을 마무리 짓는 사람.
신랑의 빈자리를 채워가며 육아하느라 하루하루 내 자신을 지워버리며 지내는 나.
평일이면 아빠 얼굴도 보지 못하고 보내는 날들이 늘어난 지후.
대체 이 이야기에서 불쌍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인가.
누굴 원망하고 탓할 수 있을까.
신랑이 야근이 잦은 직종이라는 것, 그렇다보니 육아의 대부분을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 모두 알고 있었다. 주변 상황이나 현실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고려한 뒤, 우리 부부는 아기를 낳기로 결정했다.
충분히 고민하고 고려하고 결정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그냥 너무 섣불렀던, 멋모르고 결정했던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지후는 존재 자체만으로 너무나 소중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이이기에 지후를 낳은 것을 후회해본 적은 당연히 없지만, 육아로 인해 어느 정도 힘들 수 있는지는 감히 가늠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부부는 너무 섣불렀고 무모했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무력감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