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듣는 거야, 안 듣는 거야

by 다은

신랑은 육아와 집안일에 있어서 꽤 노력하는 편이고 많이 도와주는 편이다. 주변에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만나서 서로 힘든 것을 토로 할 때면 “그래도 지후 아빠는 집안일도 잘 도와주잖아, 그 정도는 힘든 것도 아니야”라는 말과 함께 내 힘듦은 상대적으로 덜 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였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지후 아빠는 주변 다른 집 아빠들에 비해 집안일도 꽤 열심히 도맡아 하고, 그나마 집에 일찍 돌아오는 날이면 지후를 돌보는 데 최선을 다하는 괜찮은 아빠이자 신랑이다.


그런 그에게 크게 불만인 두 가지는 퇴근이 너무 늦다는 것, 그리고 잠귀가 너무 어둡다는 것이다. 퇴근이 늦은 것의 경우엔 신랑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그 역시도 억지로 야근을 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부부갈등의 단골 소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잠귀가 어두운 것은 나를 완전히 두 손 들게 만들었다. 항복.


사실 나는 처음부터 항복을 외치고 맘 편히 푹 재워줄 만큼 아량이 넓은 아내는 아니었다. 지후가 태어나기 전부터 신랑에게 육아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도록 신신당부했고, 새벽 수유 시간에 비록 직접 수유를 하진 못하지만 졸더라도 옆에 앉아서 졸라고, 그래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신랑 역시 주변에 먼저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은 친구와 동료들로부터 그렇게 하지 못해서 혼쭐이 났던 모험담을 잔뜩 듣고 와서는 “나는 꼭 깨서 옆에 있을게”라고 호언장담을 했었다.


그런데 작심삼일이라는 표현이 여기서도 쓰일 줄이야... 지후와 내가 조리원에서 나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이미 신랑은 귀를 닫고 자는 것 같았다. 어째서 아이가 잠결에 칭얼거리는 소리나 잠에서 깨서 우는 소리는 엄마인 나만 듣는 걸까. 절대 안 들릴 데시벨이 아닌데... 심지어 지후는 조리원에서부터 목청이 크기로 유명했다. 간호사 선생님들도 지후 우는 소리에 놀라 아기를 떨어뜨릴 뻔 했다고 하실 정도였으니까.


처음엔 알아서 못 깨면 내가 깨워 주리라 마음먹고 열심히 깨웠다. 그런데 문제는, 신생아가 너무 자주 깬다는 것이다. 두 시간에 한 번씩 배가 고파 깨서 우는 아기를 달래 먹이고 재우는 것도 에너지가 달리는데, 거기다 신랑까지 깨워 앉혀야 한다니... 그 뿐이랴. 깨우는데 못 깨면 그것 가지고도 너무 서운해서 다음날 출근한 신랑에게 메시지로 서운함을 쏟아낸다. 그 말을 하면서 나도 다시 감정이 상해버리고 기운이 빠진다.

이 과정 자체가 감정 소모와 에너지 소모가 너무 커서 그냥 포기해버리기로 했다.

항복.


그랬더니 신랑에게 느끼던 서운함이 덜 해지고, 그를 깨우느라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니 상대적으로 조금 편해졌다.

그래도 얄미운 건 얄미운 거지만.


물론 신랑이 하루 종일 회사 일에, 상사와 동료들에게 치어가며 열심히 버티고 집으로 돌아온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신랑 역시 내가 하루 종일 아기에게 치여 출산 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고군분투하며 아기를 돌보고, 밥 한 끼조차 편하게 먹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서로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도 버틸 수 있었고.


이처럼 내 상황과 내 힘듦에 대해 잘 알고 공감해주는 신랑이지만, 그래도 딱 한 가지만 더 말 하고 싶다.

사실 나도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살 때에는 잠귀가 어두워서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였고, 밥 먹으라고 깨워주는 따스한 손길(애정 어린 등짝스매시)에 아침을 맞이하던 사람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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