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에는 꽤 어리게 느껴지는 나이 스물여섯 살. 신랑과 대학교 캠퍼스 커플로 만나 오랜 연애 중이던 나는 스물여섯 살에 결혼을 하게 됐다. 그런데 결혼을 하자마자 몇 년간 나를 괴롭히던 신체 증상(허리와 손목의 통증)과 함께 심리적 어려움이 겹치면서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게 됐다. 신랑 입장에서는 그것이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맞벌이 상태에서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신혼집을 마련했는데 결혼 하자마자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으니까. 당시 내 월급이 250만원을 조금 넘었으니 그만큼의 수입이 줄어들게 된 데다 심지어 나는 대학원에 재학 중이었다. 서른두 살에 외벌이 가장이 된 신랑은 그 때 얼마나 막막했을까.
하지만 신랑은 나를 원망하거나 내가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 상황에 대해 당황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을 말로 표현한 적은 있지만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고, 그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 할 때에도 내게 상처를 주지 않는 선에서 완곡하게 이야기 했다. 당시에는 많이 혼란스럽기도 하고 죄책감이 들기도 했는데, 신랑이 덤덤하고 의연하게 내 곁을 지켜 주었기에 그 시기를 무사히 잘 넘겨낼 수 있었다. 만약 그가 나를 비난 혹은 원망하고 나를 이해주지 못했다면 나는 세상에 나 혼자 뿐이라고 여기며 더욱 침체되었으리라.
풀타임 직장에서 퇴사 한 이후 나는 대학원 생활에 집중했다. 대학원 생활을 통해 학위와 전문지식을 얻을 수 있었지만 내게는 그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이 있었으니, 아동심리를 배우고 실습하는 과정에서 내 자신을 이해하고 내면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직장생활과 인간관계에 지치고 모든 것이 바닥까지 찍었다고 느꼈을 때 시작한 대학원 생활은 내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이 때 신랑이 내 곁에서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버텨주지 않았더라면 그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겠지. 그걸 생각하니 신랑에게 더욱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렇게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2년 정도는 수입이 없었고, 이후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했다. 프리랜서 특성 상 요일이나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었던 대신 수입은 들쭉날쭉 했는데 그 때도 신랑은 한 결 같았다. 고정적인 수입을 벌어 오는 신랑과는 달리 나는 시기에 따라 월급 차이가 많이 났는데, 내가 얼마를 벌던 내 노력을 인정해주고 지지해주었다.
내가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을 월급으로 받았을 때에도 신랑은 “이번 달도 고생했어.”라고 말했고, 반대로 꽤 많은 소득이 있었을 때에도 “우와~ 고생 했네.”라고 말했다.
(좀 많이 벌었다 싶은 달엔 감탄사가 붙기는 했구나)
이처럼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내 옆에서 묵묵히 곁을 지켜준 신랑이 있었기에 힘든 시기를 버티고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다. 그 때 내 곁에 이 사람이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한 내가 될 수 없었으리라.
그는 존재 자체로 내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것이다.
과거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