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를 1학년 때의 나는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놀기만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그렇다보니 성적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고 매일 하교 후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거나, 집에서 메신저나 게임에 접속해서 온라인상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 친구인 친한 이모가 우리 집에 놀러 오셨다. 그 이모가 나를 보고 무언가에 대해 칭찬하자 “아유, 우리 딸은 양가집 규수야~”하고 엄마가 답했고, 이모는 민망한 듯 ‘호호’ 웃어 넘겼다. 그 당시에 나는 양가집 규수라고 하는 건 그냥 ‘참하고 여성스럽다’는 칭찬의 표현인 줄로만 알았기에 내가 가지고 있던 캐릭터와는 많이 다른 표현이라 조금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그냥 그렇게 넘겼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엄마가 말한 양가집 규수는 내가 생각했던 의미가 아니라 성적표에 기록 된 ‘수,우,미,양,가’의 그 ‘양, 가’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우스갯소리로 웃어넘길 수 있던 가벼운 농담이지만 사춘기 시기가 멀지 않은, 자아정체감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시기를 마주하고 있던 나는 그 발언에 자존심이 꽤 상했다. 그래서 나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시험공부란 것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다음 번 시험에서 나는 평균 90점에 육박하는 점수를 받게 됐다. 다른 반이었던 친한 친구가 내 점수를 듣고 와서 “네가 어떻게 90점이야! 대박!”하고 외치고 놀라기도 했고, 같은 반의 단짝 친구는 “이 배신자! 혼자만 잘 봤냐?”하고 툴툴대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반응들이 꽤 신선하고 뿌듯했다. ‘아, 나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구나’하고 자신감도 얻었다.
나의 자신감을 수직상승 시켜 준 그 성적표를 들고 집으로 가던 발걸음은 참 가벼웠고, 당시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 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이 성적표를 보면 깜짝 놀라겠지? 나를 엄청 칭찬 해 줄 거야’
집에 돌아가서 엄마를 목 빠지게 기린 끝에 드디어 엄마가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다. 엄마에게 “엄마, 이거 봐라~ 나 성적 엄청 올랐다?”하고 성적표를 들이 밀며 말을 건넸다. 그리고 뒤 이어 엄마로부터 돌아온 반응은 당시의 나에게 너무 충격적인 것이었다.
“아이고, 90점 맞고 잘 했다고 자랑하는 거야? 그래~ 알겠어~”
이럴 수가. 이게 그저 “알겠어”로 끝날 일이냐는 말이다. 1학년 땐 평균 50점 내외의 점수를 받아오던, 양가집 규수라던 내가 평균 90점을 받아 왔는데 돌아온 반응이 고작 이런 것이라니. 우리 반 담임선생님조차도 내 점수를 보고 열심히 노력했다고 기특하다고 말해주었는데 엄마의 반응이 담임선생님만도 못하다니...
그 당시엔 너무 충격적이고 허무함을 느꼈지만 사실 엄마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 점수는 정말 우스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와 터울이 크게 나는 나의 오빠는 고등학교 때 이미 전국모의고사에서 상위 1퍼센트 안에 들었고,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나라에서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SKY 대학 중 한 곳에 입학했으니까. 엄마에게는 ‘꽤 똑똑하고 주변에서도 인정해주는’, 엄마로서의 존재감과 양육 효능감을 높여주는 아들이 있었기에 나에게는 공부 기대치가 없었던 거다. 아예.
거기다 엄마가 나고 자라온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을 했다. 엄마는 ‘겸손의 미덕’을 갖추는 것이 예의라고 배웠고 그렇게 평생을 살아 온 사람이다. 그렇다보니 주변에서 자녀에 대한 칭찬을 할 때 고맙다고, 혹은 정말 그렇다고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유, 근데 걔는...”하며 자연스럽게 자녀를 깎아내리는 표현을 이어 붙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엄마 나름대로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일이었으니까.
애정표현은 또 어떤가. ‘낯간지러운 표현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처럼 “사랑해”, “네가 너무 자랑스러워”와 같은 표현은 감히 입 밖에 내지도 못한다.
이처럼 엄마 개인 성향이나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애정표현이나 칭찬에 취약했던 엄마. 그런 엄마의 딸로 태어난 나는 항상 칭찬에 목이 말랐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 더 꼼꼼하게, 더 잘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알아줬으니까.
나 역시도 자녀를 키우는 엄마가 된 지금, 나는 과거 청소년기의 내 자신이 너무 안타깝고 불쌍하다. 어느 누구든 존재 자체만으로 가치 있는 사람이고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던 과거의 나. 무언가를 확실하게 잘 해야지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과거의 나...
그래서 지후에게는 관심 받고 있는 느낌, 사랑 받는 기분이 들 수 있도록 수시로 표현해주려 노력한다. 이 때 주의하고 신경 쓰는 부분은 ‘조건부 칭찬’을 지양하는 것이다. “네가 이걸 색칠했구나. 잘했어.”하고 완성작에 대해 칭찬하기보다는 “네가 이걸 칠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색깔을 쓰고 많이 노력했구나. 기특해.”라며 노력한 과정에 대해 격려해주는 것이다. 또한 무엇을 해냈을 때뿐만 아니라 밥을 먹거나 장난감 자동차를 바닥에 굴리는 사소한 행동이라도 반응해줌으로써 ‘나는 너에게 관심이 있어’라는 메시지를 주고자 신경 쓴다.
지후는 나의 어릴 적과는 달리 스스로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사랑 받고 인정받는 귀한 존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자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