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쓰레기통

by 다은

친정 엄마는 종종 내게 “너는 막내고 여자라서 그나마 안 혼내고 키운 거다.”라고 하곤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이해가 안 갔던 것이, 내 기억에 나는 정말 많이 혼났다.

내가 어린 시절엔 부모님의 체벌이 자연스러운 시기이기도 했고, 엄마는 성격이 불같은 사람이었다. 거기다 엄마가 화났을 때 엄마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이 ‘사랑의 매’가 되곤 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회초리를 비롯해서 30cm 자로 맞다가 자도 많이 부러뜨려봤고, 태극기 게양하는 날 혼나다가 태극기 봉으로 맞은 적도 있다. 엄마가 어떤 걸 매로 들지 눈으로 탐색하는 그 짧은 순간에는 정말 식은땀이 났다.

‘오늘은 또 뭘로 맞으려나’

그런데 엄마 기준에선 나를 ‘덜’ 혼내고 키운 거라고 하니 나와 터울이 많이 나는 오빠는 대체 얼마나 심하게, 많이 혼났는지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어쨌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우리 남매는 어느새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오빠가 결혼 준비를 할 즈음, 엄마는 어렸을 때 오빠를 지나치게 많이 혼내고 키운 것이 미안해서 마음에 남는다는 말을 했었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그저 오빠가 성별이 달라서일까? 엄마는 오빠가 성인이 된 이후 오빠를 대하는 데 있어 나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려워하고 나와 대화 할 때처럼 직설적으로 강하게 하지 못했다. 나는 그런 엄마가 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딸인 나한테는 못하는 말없이, 어려워하는 것 없이 다 말하고 사소한 것도 꼬치꼬치 따지면서 왜 오빠한테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지.

나에 대한 서운한 점을 나에게 이야기 하는 거라면 내 얘기니까 그러려니 할 텐데 오빠에게 서운한 점에 대해서도 나에게 하소연을 했다. 내가 기분이 괜찮을 때나 처음 몇 번은 맞장구를 치며 공감해주기도 했지만 그런 일들이 반복 되다보니 나도 슬슬 듣는 것이 힘들어졌다. 왜냐하면 그냥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엄마 본인이 지금 금전적으로 얼마나 힘든지, 어떤 고생을 하고 있는지 까지 하소연이 이어지니까. 오빠뿐만 아니라 아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그런 하소연과 불평불만을 듣다보니 나도 답답하고 짜증이 나서 “왜 그런 얘기를 나한테 하는데. 당사자한테 얘기 하던가.”라고 받아치면, 엄마는 그런 내게 서운해 했다.

그럼 딸한테 그런 하소연도 못 하냐고, 내가 이걸 누구한테 얘기하겠냐고.


엄마는 나를 딸이자 친한 친구처럼 생각해서 내게 늘어놓는 이야기였지만 내가 느끼기에 당시의 나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었다. 하나뿐인 친구 같은 딸이라는 허울 좋은 이유로 엄마가 아빠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오빠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모두 들어주어야 했다. 자존심이 강한 엄마는 가족 구성원 간에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는 법이 없었기에 그런 이야기는 당연히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나에게만 했다. 나 역시 그 점을 알았기에 싫지만 꾸역꾸역 그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하소연을 듣는 것이 너무 버겁고 힘들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그것을 피해 밖으로 나돌았다. 성인이 되기 전에도 그렇긴 했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집에 붙어 있는 날을 손에 꼽을 정도였고, 약속이 없으면 어떻게든 만들어서라도 나돌았다.

엄마는 주말에도 항상 집을 비우는 내게 서운해 하며 “너는 도대체가 집에 있는 날이 없다”고 타박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가족은 아빠, 엄마, 오빠, 나 네 식구임에도 주말엔 엄마 혼자 집에 있는 날이 많았으니까. 아빠는 주말이면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오빠도 개인적인 일이나 약속들로 바빴으며 나 역시 그랬다.

나보고 주말엔 집에 좀 있으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상처가 될까 싶어 “집에 있는 게 숨이 막혀”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지만 당시 나에게 ‘집’이라는 곳이 편안한 안식처가 아니었던 것은 확실하다.


이런 내 마음을 알면 엄마 입장에선 너무 배신감이 들 것 같지만 그 때의 나는 그랬다. 지금이야 내가 자식을 낳아 기르는 입장이 되어보니 엄마의 마음이나 입장이 조금 더 이해가 되고 엄마의 이야기에 좀 더 귀 기울여 들어줄 수 있지만, 어릴 땐 그러지 못했다. 당시엔 엄마가 내게 쏟아내는 불만 가득한 이야기들을 듣는 것 자체가 너무 버겁고 힘들었고, 그러다 내 마음까지 너무 지쳐버리는 날이면 나는 가족 모두가 미워지고 싫어졌다.


아빠(또는 오빠)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엄마는 왜 이걸 나한테만 쏟아내는 걸까.

나중에 내가 자식을 낳으면 자식한테 이런 말은 하지 말아야지,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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