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045

by 다은

어릴 적에 퇴근하고 돌아 온 아빠가 현관문을 열며 “아빠 왔다~”하면서 손에 든 간식거리를 내게 건네주는 날이 종종 있었다. 그런 날이면 아빠도 반갑지만 손에 들린 간식 역시 너무 반가워서 방방 뛰곤 했는데, 그런 내게 아빠는 “아빠보다 간식이 더 반가운 거냐”면서도 행복한 듯 온 얼굴로 웃어주었다.

아빠가 이렇게 언질 없이 간식을 사들고 온 날이 있었던 반면, 내가 아빠에게 간식을 사오라고 해서 사오는 날들도 많았는데 그런 날이면 아빠가 돌아오는 시간을 유독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왜냐하면 내가 아빠에게 간식을 사다 달라고 하는 날은 저녁메뉴가 내 취향이 아니었는데 억지로 먹었거나, 엄마에게 크게 혼난 날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어릴 적에 유독 검은콩을 싫어해서 엄마가 밥에 검은콩을 가득 넣어주는 날이면 그 날은 어떤 반찬이 차려져 있어도 맛있게 먹을 수가 없었다. 하루는 콩만 골라내고 밥을 먹는데 엄마가 그게 너무 보기 싫었는지 숟가락 가득 콩만 떠서 내게 억지로 먹인 적이 있었다. 엄마한테 혼나는 게 무서워서 입 안 가득 콩을 넣고 씹어 넘겨보려 억지로 저작운동을 하던 그 날을 생각하면 검은콩의 비릿한 냄새가 다시금 올라오는 것 같다.

엄마를 너무 냉혈한처럼 쓴 것 같아서 엄마를 위해 변명을 해보자면, 내가 두세 살 때에는 콩밥이 아니면 밥을 안 먹는다고 오히려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콩밥을 해주면 콩만 먹을 정도로 콩을 좋아하는 아이였다고 한다. 근데 조금 크더니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콩을 편식하기 시작했고, 엄마는 그게 너무 의아했다고 한다. 그렇게 콩만 골라 먹어서 ‘콩순이’라고 부를 정도였는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싫어하게 됐는지.

반대로 나 역시도 지금까지도 너무 의아한 것이, 어떻게 검은콩만 골라먹을 수 있었던 거지?

내 입맛이 진짜 특이했구나.

어쨌든, 그렇게 엄마와 거친 씨름을 하고 ‘입맛을 버렸다’ 혹은 ‘기분이 진짜 별로다’ 싶은 날이면 나는 아빠에게 SOS 신호를 보냈다. 내가 초등학교 때까지는 휴대전화가 보편화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주요 수단은 ‘삐삐’였는데, 아빠의 삐삐 번호로 음성메시지를 남겨도 되었지만 나는 보통 짧은 숫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선호했다. 내가 보내던 메시지는 주로 ‘8282(빨리빨리)’, ‘82045(빨리 빵 사와)’였다. 그 메시지를 보낸 날이면 바람에 문이 움직이는 소리에도 아빠가 돌아온 걸까 싶어서 “아빠야?”하고 몸이 신발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빠가 집으로 돌아와서 내 손에 치킨이나 빵, 물만두 등 간식거리를 쥐어주는 순간이면 그 날 있었던 좋지 못한 기억들은 순식간에 모두 밀려나고 따뜻함과 행복감만이 가득했다.

이러한 경험 때문일까. 나도 주말에 신랑과 지후를 두고 출근하는 날이면 자꾸만 뭐든 사들고 가고 싶어진다. 아침에 지후가 깨어 있으면 “엄마가 오늘 뭐 사올까? 뭐 먹고 싶어?” 물어봐서 지후가 말한 메뉴를 사오기도 하고, 지후가 특별히 뭘 말하지 않더라도 빈손으로 가고 싶지 않아 작은 간식거리라도 사기 위해 직장 주변을 맴돈다.

내가 빈손으로 퇴근하는 날에도 물론 지후는 나를 보면 좋아서 폴짝 폴짝 뛰지만, 내 손에 간식이 들려있는 것을 보면 ‘꺄르르’ 웃으며 더더욱 좋아한다. 만 3세가 되어가는 지금은 이전보다 먹을 수 있는 것들도 많아지고 맛을 아는 메뉴도 다양해져서 냄새만 맡고도 어떤 음식인지 알아채기도 한다. 얼마 전엔 햄버거세트를 사서 들어갔더니 “감자튀김이다! 감자튀김!”하면서 어찌나 좋아하던지.

이런 모습을 볼 때면 나도 우리 아빠처럼 “엄마보다 감자튀김이 더 반갑지 너!”하고 얄궂게 묻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차오르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아, 우리 아빠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keyword
이전 02화바보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