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상자

by 다은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였다. 나는 학교를 마친 뒤에 친구들과 놀면서 오후 시간을 보냈고, 이른 오후에 친구들과 헤어져서 집에 돌아가면 그 이후로는 혼자 집을 지켜야 했다. 사실 내게 오빠 한 명이 있기는 했지만 나이 터울이 너무 크다보니(8살 차이) 학창시절에는 오빠와 내가 마주치는 시간 자체가 상당히 적었고, 그렇다보니 나는 거의 외동이나 마찬가지였다.


함께 놀던 친구들과 헤어진 뒤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TV를 켜는 일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당시엔 스마트 폰이 있기는커녕 컴퓨터 게임도 디스크를 넣어서 해야 했는데, 애초에 386 컴퓨터를 켤 줄도 몰랐던 나는 그냥 오로지 TV만 봤다. 오후 세 네 시 쯤 TV를 틀어 몇 개 안되는 채널을 돌려가며 엄마 아빠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까지 내내 앉아 있었다. 그렇게 나는 TV에 빠지게 됐다.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 온 아빠는 내게 “책을 보거나 다른 것 좀 하지 또 TV를 보고 있느냐”며 훈계를 했고, TV는 ‘바보상자’라서 오래 보면 바보가 된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 때의 나에게 TV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유일한 수단이었고, TV가 없이 나 혼자 오후를 보내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엄마 아빠도 달래주지 못한 외로움을 TV가 달래주었으니까.


엄마 아빠가 집에 돌아 온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가족들이 TV 앞으로 모일 수 있는 황금 시간대가 되면 TV에서는 온갖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방영됐다. 그래서 나는 오후 내내 TV를 봤으면서도 저녁때가 되면 또 TV를 봤다.

저녁 8시나 9시에 꼭 뉴스를 봐야 했던 아빠는 뉴스 시간만 되면 뉴스가 나오는 채널로 다이얼을 돌렸고, 그 시간만이 내가 TV를 보지 않고 다른 것을 하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뉴스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그것이 끝나자마자 “아빤 뉴스 봤으니까 이제 됐지?”하며 다시 내 마음대로 채널을 골라 TV를 봤다. 아빠의 입장에서는 이런 딸이 얼마나 한심하고 안타까웠을까.


그러다 결국 일이 터졌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빠가 TV를 집 밖에 버린 것이다. 당시의 나에겐 정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저녁 시간에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을 못 보는 것도 그랬지만, 하교 후 엄마 아빠가 돌아오는 시간까지 나 혼자서 긴 시간을 보내야한다는 것이 더욱 두려웠다. 그리고 시작 된, 참 많이 지루하고 외로웠던 몇 달.


그러던 중 엄마가 경미한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됐다. 평상시라면 저녁 시간에 엄마가 집에 돌아와야만 엄마를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병원에 가면 엄마를 볼 수 있으니 철없는 마음에 나는 그것이 내심 반갑기도 했다. 그래서 학교가 끝나면 엄마의 병실에 들러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때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을 반복하던 그 시기에, 학교에서 전 학년이 운동장에 모여 조회를 하던 중 교장 선생님이 요즘 아이들이 TV 프로그램 중 어떤 것을 재미있게 보는지 궁금하다며 갑자기 “5학년 2반 반장, 이리 나와 보세요.”라고 하셨다. 5학년 2반 반장은 바로 나였다. 맙소사. 그 많은 학년과 많은 반 중에 왜 하필 우리 반을... 집에 TV가 사라진지 몇 개월이라 어떤 드라마가 재미있는지, 어떤 프로그램이 재미있는지 알지도 못 할뿐더러 전교생 앞에서 ‘우리 아빠가 너무 화가 나서 TV를 버렸고, 그래서 집에 TV가 없다’는 사실을 공표해야 한다니. 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나는 쭈뼛쭈뼛 걸어 구령대 위, 교장선생님 옆에 섰다.

“자, 5학년 2반 반장, 이름은 뭐지요?”

“김 다은 입니다.”

“김 다은 양, 요즘 제일 재미있게 보는 TV 프로그램이 뭔가요?”

“어.. 저희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있어서.. 엄마 병원에 가서 오래 있어서 TV를 볼 시간이 없어요...”


갑.분.싸. (갑자기 분위기 싸함)

최근에 생긴 이 신조어가 그 당시 상황에도 딱 들어맞았다.

교장 선생님은 진심으로 당황하셨고, 전교생 앞에서 나를 ‘엄마의 병간호를 위해 병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효녀’로 명명하셨으며, 마지막으로 엄마의 쾌차를 빌어주셨다.


사실 당시 엄마는 크게 다친 것은 아니었고, 병원에 가서도 오히려 내가 엄마 침대에 누워 수다를 떨면서 노는 시간이 많았지만 굳이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저 우리 집에 TV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기에 다행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이후 조회를 마치고 각자의 반으로 돌아가는 길, 친구들이 “너 진짜 TV 못 봐? 아주 잠깐도?”하고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그렇다니까~”하고 말았다. 어린 마음에 차마 그 당시에는 친구들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야 해본다. “얘들아, 나 진짜 아주 잠깐도 못 봤어~ 왜냐하면 우리 집엔 TV가 없었거든.”


나중에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아빠가 홧김에 TV를 버렸던 날, 나는 아빠에게 혼나고 울다 지쳐 잠이 들었고, 몇 시간 뒤 아빠가 TV를 가지고 오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재빠르고 운 좋은 누군가가 그 TV를 가져가버렸고, 아빠 입장에선 그냥 잠깐의 이벤트 정도로 넘어가려 했던 일이, 밖에 내놓은 TV가 사라지는 바람에 장기전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가끔씩 아빠가 내게 수 없이 반복해서 말했던, ‘TV는 바보상자’라는 표현을 떠올린다. 더구나 아동상담 일을 하면서 양육자와의 상호작용 대신 미디어에 빠져 언어 발달이나 다른 발달이 더디게 된 케이스를 간혹 보다 보니 어린 시절 아빠가 강조한 바가 무엇이었는지 더 많이 느낀다. 물론 미디어 자체의 순기능도 있기에 무조건 미디어를 차단하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연령 대비 너무 오랜 시간 미디어에 노출시키지 않는 것, 미디어를 접하더라도 양육자가 곁에 함께 하면서 거기에 아주 빠져버리지 않게 도와주는 것만 잘 지킨다면 미디어는 양육을 보다 수월하게 만들어주는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의 내가 지독하게 TV에 중독되어 있었기 때문일까. 나는 지후를 키우면서 미디어 노출을 최대한 자제하는 편이고,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틀어주더라도 1시간 이상 보여주지는 않으며, 내가 아주 급한 일을 해야 하거나 식사를 할 때가 아닌 이상은 지후와 영상을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가끔 주변에서 지후 또래의 두 돌 아이들이 스마트기기를 익숙하게 다루는 것을 보면 ‘나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지후를 키우고 있는 건가’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이 영상을 보며 다양한 지식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것을 보면 조바심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주 찰나이다.

지후가 기계를 다루는 데 미숙해도 좋고 무엇이든 천천히 배워도 괜찮다.

다만 과거의 나처럼 미디어에 의존해서 외로움을 달래는 아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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