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삼아 국토종주.
총 거리 약 6000km. 예상 소요일수 (최소) 70일.
막상 이렇게 보니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던 것 같다. 일정을 잡고 비행기표를 예매하니 문득 겁이 났다. 저질 체력도 저질 체력이겠건만, 무엇보다 곰이 무서웠다. 실제로 밤에 유튜브에서 곰이 자전거 여행객을 좇는 영상을 보고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zEH5t4Xp9
다행히 윗 영상은 합성으로 판명되었다. 그래도 소름 돋는 것은 마찬가지. 본래 시애틀 혹은 샌 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해 옐로우스톤을 경유하는 루트를 수정해서 곰이 비교적 드문 남부 쪽으로 가기로 했다(2010년 이후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1년에 한 명 꼴로 곰 공격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곰 문제는 대충 해결되었으니... 이제 체력이란 숙제를 해결해야 했다. 우선 무려 150km에 달하는, 팔당댐이나 찍고 뻗는 본인에게는 '초장거리 코스'인 서울-춘천을 도전해봤다. 생각보다 할만했다. 물론 한 100km 지점을 지난 시점부터는 무아지경에 가까웠지만, 끝내 힘겹게 완주를 했다. 40km나 150km나 결국 힘든 건 매한가지고, 일정 거리만 지나면 정신력 싸움이란 것을 깨달았다. 자신감을 얻은 뒤 본격 미국 횡단 모의고사를 위해 국토종주에 도전장을 내밀게 되었다.
하루 장거리 주행을 하는 것과 4박 5일 동안 온갖 짐을 자전거에 얹고 달리는 것은 체감이 완전히 달랐다. 모의고사라고 생각했기에 미국에 가져갈 텐트부터 취사용품까지 전부다 가져갔다. 무게 때문에 제 속도를 내는 것이 힘들었다. 거기다가 노숙도 했다. 그것도 공중 화장실에서. 8시간 동안 역풍을 맞으면서 달리기도 했고, 태풍 수준의 비바람 속에서도 페달질을 했으며, 먹을 게 없어 라면을 구걸하기도 했다. 만약 이걸 완주하게 된다면 곰 빼고 모든 상황에 대비된 기분일 것만 같았다.
사실 이제 고백하는데 부산을 가면서 정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몇 번 있었다. 홀로 자전거 여행을 하는 일은 굉장히 고독한 일이다. 더군다나 평생 대도시에 살면서 문명을 당연시 여겼던 나에게는, 서울밖에 4대강 코스에 이렇게 사람이 없을 줄 상상도 못했다. 자전거를 탔던 5일 중 이틀은 좋은 인연을 만나 함께 타고는 했지만, 나머지 3일 동안은 거의 사람 한 명도 보기 힘들었고, 혼자이기에 내가 직면한 문제들을 어디 의지할 곳 없이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자전거는 해봐야 춘천 한 번 찍고 온 게 다고, 캠핑은 훈련소 시절 야외숙영밖에 없었던 나이기에, 매 순간이 새롭고 매 순간이 위태로웠다.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연속으로 터질 때마다(언덕 한 가운데서 체인이 끊어지고, 8시간 동안 역풍을 맞은 뒤, 타이어에 펑크가 나고, 화장실에 노숙을 하면서 라면 구걸. 이 모든 게 하루 만에 일어났다.) 나는 버스를 타고 집을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솟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결국 미국도 못 간다는 생각에 정신줄을 잡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본래 미국 횡단 모의고사로 자전거 여행에 대한 자신감을 얻기 위해 기획했던 국토종주였는데, 부산에 어찌어찌 도착하고 나니 오히려 두려임이 더 커졌다. 한국도 이리 힘든데 이렇게 해서 미국은 갈 수 있을까? 이런저런 사소한 노하우는 생겼고, 체력도 길러진 것 같긴 했지만, 개고생도 너무 큰 개고생을 했다. 한 3일 동안은 자전거를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러나 회사로 돌아오니... 내가 왜 이 여행을 결심하게 되었고 하고 싶은지 아주 잘 되새김질 되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개고생을 하면 금방 초심을 잃곤 하지만, 그만큼 또 쉽게 개고생을 잊고 다시 초심을 되찾기도 하는 것 같다. 오히려 더 미친듯이 떠나고 싶어졌다.
이제는 출발일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준비는 거의다 마친 상태고, 곰 대처법도 다 익혀놨다.(혹시 사막에서도 곰을 마주칠지 누가 아는가.) 준비물도 거의다 구비했다. 이제 진짜 가서 페달 밟을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