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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겸 Jul 04. 2016

Day 27

산 넘어 산


오늘 탄 거리: 111km (Leadville ~ Georgetown)

총 이동 가리: 2084km

사막 탈출 이후 비교적 순조롭게 다니다가 오늘 아침 대형 사고가 터졌다. 4일차 때 911 불러서 구출된 것만큼이나 대형사고.

일어나서 텐트를 걷고 짐을 길 쪽에 내려놓고 다시 자전거를 가지러 올라갔다. 한 30초 정도 짐을 정리하고 다시 숲에서 길 쪽으로 자전거를 끌고 내려갔는데... 짐이 전부다 사라져버린 것. 순간 다른 곳에 놓았나 싶어 한 30분 동안 사방을 뒤져봤는데도 못 찾았다.

이런 곳에서 누가 훔쳐갈줄이야.

멘붕... 그 30초 사이 차가 몇 대 지나가긴 했는데 설마 내 모든 살림살이가 다 들어있는 가방 두 개를 가져갈 줄이야.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야하나...


한 시간 정도 지나서 마음이 좀 침착해질 때쯤 일단 Leadville에 있는 경찰서에 가기로 했다. 난생 처음 경찰서에도 와보게 됐다.


진술서를 쓰고 물론 찾을 확률은 전혀 없겠지만 찾으면 연락을 주겠다는 말과 함께 경찰관은 사라져버렸다. 기대도 안한다. 그냥 그 훔쳐간 도둑놈을 저주할뿐.

지금 가진건 자전거랑 내가 입었던 옷(다행이 추워서 거의 다 입고 있었다), 핸드폰, 여권, 지갑, 텐트. 카메라 3대, 가방 두 개, 침낭 정비도구, 배터리 등 다 사라졌다. 원래 가려던 Rocky Mountains 국립공원에 못 가게 생겼다. 거긴 나중에 차로 오는 걸로 하고... 일단 덴버로 가서 물건을 다시 사기로 했다.

덕분에 가벼워진 자전거...

덴버까지 가는 거리는 200km 좀 안 되는데 중간에 로키 산맥을 한 번 더 넘어야한다. 일단 여기서 100km 남짓 떨어진 Georgetown에 저렴한 에어비엔비 호스트와 예약을 잡았다.

자전거 샵에서 예비 튜브와 펑크패치 하나씩 사고 출발. 짐이 없어서 쭉쭉 나갈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별로 차이가 없었다.



웃긴게 하필 이런날 경치가 끝내준다. 원래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도로라던데, 콜로라도 어딜가나 아름답지만 여기는 그 중에서도 최고다. 빈털털이가 되었지만 화낸다고 뭐 달라질까 싶어 그냥 사진이나 찍으면서 즐겁게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산 위에 있는 작은 호수.
막 찍어도 화보다.
가는 길에 있던 Frisco. 이런 아기자기한 스키장 마을이 군데군데 있다.


그리고 도착한 대망의 로키 산맥 건너기. 일단 이름에 Pass가 들어가 있다는 것은 거지같이 높고 가파른 길을 보장하는 듯하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표지판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다. 짐이 있으나 없으나 똑같이 힘들다. 나중되니 고산증으로 호흡이 가빠져서 거의 몇 백 미터마다 쉰 것 같다.

그리고 두시간쯤 지나 도착한 정상. 마지막 오르막에서 지나가는 차한테 'please tell me that's the summit'이라고 애원하기도(다행이 정상이 맞았다). 아마 이곳이 이번 여행에서 올 가장 높은 고도 일 것 같다. 11990피트 = 3655미터.

드디어 정상...
저 멀리 보이는 산에서 왔다.
정상에서 어떤 부부가 와서 이걸 주고 있다.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내리막길 시작. 여기부터 덴버까지 쭉 내리막이다. 길을 잘못 들어 Interstate 고속도로를 타는 바람에 차들한테 경적 세례를 받기도 했지만 이쯤 되니 그런건 신경도 안 쓴다.

내리막 시작

밤 7시쯤 Georgetown 호스트 집에 도착. 내가 짐이 다 없어졌다는 얘기를 하자 티셔츠 세 벌이나 줬다. 감동 ㅠㅠ 게다가 삼일만에 샤워도 했다ㅠㅠ

Georgetown 도착. 옛날 풍의 마을이다.

여행을 많이 해봤지만, 이런 야생(?)에 놓여지는 경험은 처음이기에 원래 여행이 이렇게 다사다난한게 정상인지 싶기도 하다.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한 건가. 그래도 자전거로 오르막 길을 힘들게 올라야 내리막 길을 탈 수 있는 것처럼, 사는데 내리막이 있기에 오르막이 더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이겠지... 하면서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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