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쓰는 글
오늘 탄 거리: 151km (Lake Baden ~ Wahoo)
총 이동 거리: 3321km
아 습하다...
어제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자 매우 피곤한 상태. 토네이도라도 불까봐 조마조마하면서 자는 시늉만 했다. 이럴 때일 수록 한국이 살기 좋은 곳라는 것을 깨닫는다(조상님들 감사합니다).
오늘도 시속 30km에 달하는 미친 남풍이 불지만 북쪽으로 어느정도 갈 예정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출발하면서 마운틴듀 킥스타트라는 음료를 먹었는데 진작 이걸 먹을 걸 싶다. 레드불이랑 게토레이를 섞어서 마시는 기분이다.
그렇게 마운틴듀로 한 세 시간 정도 달리다가 점심을 먹으러 주유소에 들렸다. 동네 맛집을 들리고 싶지만 여기 동네에서 음식을 파는 곳이 주유소밖에 없기에...
피자를 먹고 있는데 자전거 여행객 세 명이 주유소에 자전거를 세우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밀워키에서 출발했다고 하는데 나랑 반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아직 출발한지 1주일 밖에 안 됐는데 내내 옥수수밭만 봤다고. 나는 로키 산맥 얘기로 겁좀 주고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며 갈 길을 다시 출발했다.
내가 묵었던 곳이 인터넷이 안 터져 제대로 오늘 갈 길을 조사하지 않은 체 갔는데 큰 잘못이었다. 교차로가 몇 개 있길래 주유소가 거기에 있겠거니 했지만 그 주유소를 기점으로 90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가장 가까운 주유소가 있었다. 마지막 10km는 시야도 좁아지고 더워 죽는줄 알았다.
여기서 물이랑 간식을 사 먹고 캠핑장으로 출발. 10km 떨어진 Wahoo라는 마을에 있다. 꽤나 큰 마을이라 맛집을 찾아 다녔더니 월요일이라고 단체로 장사를 안 한다. 그냥 버거킹 와퍼 밀 두 개를 먹었다.
캠핑장에 도착할 때쯤 하늘의 낌새가 뭔가 심상치 않았다. 샤워하고 나오니 웬 천둥 번개가... 나무도 거의 없은 호수 옆 평지에 텐트를 친 나는 사실상 피뢰침이나 다름 없는 상황. 텐트 안에 들어가 자보려고 했으나 너무 무서워서 잠이 안 왔다. 이러다 죽겠거니 싶어서 결국 화장실로 숨었다. 옛날 사람들이 하늘을 무서워한 이유를 알겠다.
천둥 번개가 멈추기를 아직도 기다리는 중...(현시각 11시) 비가 오기 시작했다. 자전거는 무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