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땜의 연속
오늘 탄 거리: 18km (LAX ~ Hermosa Beach)
총 누적 거리: 18km
시작은 좋았다.본인은 비행기에서 심심하면 비행기 옆자리 사람하고 종종 얘기하곤 한다. 오늘 역시 영화도 재미 없고 지루함이 극에 달했을 때 옆자리 부부에게 말을 걸었다. 미국횡단이라는 소재 덕분인지 옆 자리 분들이 매우 큰 관심을 보이면서 이것 저것 물어보았다. 그러다가 내가 현금 100달러만 들고 미국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자 갑자기 아저씨께서 지갑에서 100달러 짜리 지폐를 꺼내 손에 쥐어주시고 기도까지 해 주셨다.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그 순간만큼은 할레루야를 외치고 싶었다. 역시 선행을 하다 보면 이렇게 되돌아 오나 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때부터 말도 안 되는 머피의 법칙이 시작되었다. 미국 입국심사가 까다롭고 오래 걸리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3시간이 넘게 걸린 적은 아마 이번이 처음이지 싶다. 거대한 상자 덕분에 여러번 검열을 당하면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이미 12시간 비행에 3시간 줄서기까지 지칠대로 지쳤었다. 그런데 아직 자전거도 조립하고 숙소까지 80km를 타야했다.
땡볕에서 끙끙대면서 혼자 자전거를 조립하는데 과잉포장을 했던 바람에 뜯을 때 배로 힘들었다. 칼 하나 없이 드라이버로 뽁뽁이를 째는 내 자신이 안 쓰러웠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더니.,.
그런데 여기가 끝이라 생각하면 오산. 한시간 좀 넘게 겨우겨우 자전거를 조립하고 짐을 다 정리했다. '드디어 6000km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이 감격의 순간을 만끽했다. 브금도 틀었다. David Bowie의 <Space Oddity>.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주인공이 모험을 떠날 때 나온 노래다. 그렇게 한 30m 갔나?갑자기 '펑'하는 소리와 함께 자전거가 멈췄다.
타이어 튜브가 터진 것이었다. 도착한지 다섯 시간만에 겨우 출발했는데 30미터만에 터지다니... 주저 앉아 울고 싶었지만 좀 있으면 해가 질 시간이라 재빨리 짐을 풀고 튜브를 교체했다.
아직도 숙소까지 80km가 남은 상태. 도저히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거기까지 갈 자신이 없기에 전화로 못 간다는 말을 전했다. 다행히 25달러 짜리라 타격은 덜했다.
놀랍게도 목적지가 사라지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아니 오히려 갑자기 밀려오는 자유에 극도로 행복해졌다. 일단 무작정 바다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여기...
Hermosa Beach라고 한다. 처음 들어보고 사람들한테 길을 물으면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 곳이라 그런지 더더욱 마음에 든다. 오늘은 안개에 덮여 잘 안 보였지만 내일 아침 해가 뜰 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