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주의보
오늘 탄 거리: 90km (Anaheim ~ Redlands)
총 누적 거리: 188km
아침 8시쯤 숙소에서 나와 Santa Ana River Trail이라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전날 구글 위성지도로 봐 놓은 Beaumont에 있는 녹지 공터였다. 노숙도 스마트하게 미리미리 구글 어스로 확인하는 센스^^. 그런데 탄지 한 두 시간 되서, 그렇게 믿고 따라갔던 구글 지도가 나를 배신했다.
자전거 도로에서 갑자기 대로로 빠지라고 알려주길래 이상하다 싶어 봤더니 대형 고속도로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나를 죽이려고 작정했나... 어쨋튼 그 후 구글 맵에서 알려주는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한 12시쯤 되자 어지러워질 정로 더워졌다. 온도계를 보니 38도 였다. 잭인어박스...는 돈 없어서 못 가고 거기 앞에 있는 그늘에서 미리 가져온 빵을 먹었다. 태양광 패널로 핸드폰 충전도 하고 심심해서 챙겨온 하모니카도 불러봤다. 결국 너무 콜라가 먹고 싶어 한 잔 사마셨다.
두 시쯤 나왔는데 아직도 미친듯이 더웠다. 아니 더 더워졌다. 40도 ... 나중에 찾아보니 하루에 가장 더운 시간은 오후 3시라고 한다. 땅이 가열되서 가장 더울 때라나.
덕분에 정신이 혼미한 체 몇 시간을 달렸다. 풍경도 계속 비슷해서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거기다가 도로는 거의 20km 넘게 직선. 역시 대륙의 스케일은 다르구나 싶었다.
중간중간 더워서 자전거샵이랑 교회에 피신하기도. 사람들이 짐을 한가득 실은 자전거를 보면 보통 어딜가냐고 묻는데, 뉴욕을 간다하면 백이면 백 다 미쳤다고 하는 것 같다. 근데 더워서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한 6시쯤 되니 33도 정도로 내려가 겨우 정신좀 차렸다. 이미 목적지까지 가는 것은 포기한 상태. 약 40km 떨어진 캠핑장을 찍고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 구글 맵이 또 한 방 먹였다...
자전거 길이 있다길래 기껏 5km나 돌아가면서까지 갔더니 길이 폐쇄되어 있었다. 시간은 7시 넘었는데 돌아갈 힘도 없고 그저 눕고 싶었다. 바로 앞에 집 주변에 텐트를 칠만한 잔디가 있길래 급한 마음에 바로 문을 두들겼다.
워낙 앞마당이 더러워서 마약중독자가 살고 있지 않나 겁을 먹기도 했는데 다행히 집 주인은 트래비스라는 굉장히 chill한 지질과학자였다. 원래는 집 주변에다 텐트를 칠 것이니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달라고 부탁했는데 감사하게도 자기 집 마당에다 쳐도 좋다고 했다. 감격스러워서 계속 고맙다고 난 말했고 그는 오히려 자기가 4년 동안 그 집에서 살면서 자기를 찾아온 첫 손님이라며 즐거워했다(눈물이...).
덕분에 이렇게 비교적 안전하게(트래비스가 안전한 사람이라는 가정하에) 잘 수 있게 되었다. 낯선 사람에게 이런 도움의 손길을 받은 것에 대해 '세상은 아직 살만 하구나'하면수 잠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