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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겸 Jun 06. 2016

Day 4

사막=사망

오늘 탄 거리: 70km (Redlands ~ Palm Springs)

총 누적 거리: 258km


살다살다 이런 날도 있구나 싶다. 시작은 상쾌하게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오늘의 목적지는 약 100km 남짓 떨어진 Joshua Tree. 차도 없고 날씨도 선선해서 정말 기분 좋게 달렸다. 동쪽으로 가는 길이라 노을을 구경하면서 갈 수 있었다.


새벽 다섯시

해가 뜨자 Redlands를 지나 Banning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가는 길 내내 옆에 기찻길이 있어 종종 기차구경도 했다. 마치 영화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에 나올법한 풍경이었다.


서부극을 보는듯한 느낌

그렇게 여유있게 구글이 알려준 길을 따라가다 보니... 막혀있는 길이 나왔다. 원주민 보호구역이라 원주민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었다. 지키던 경찰이 다른 방향으로 우회 할 수 있다고 알려줬고 나는 다시 구글 지도로 검색해 따라갔다.


울타리 반대편이 원주민 보허구역... 좋은데 산다
총알 구멍이 난 표지판

인터스테이트 고속도로 옆에 있는 미사용 도로로 안내받았는데, 미친듯한 순풍에 차도 없어서 엄청난 속도로 달렸다. 페달을 하나도 안 밟아도 속도가 45km/h 가까이 나왔다. 주변에 풍력발전소가 많은 것을 보니 원래 바람이 그리 세게 부는 곳이었던 것 같았다.


기분 좋게 뻗은 도로
저렇게 몇 km씩이나 이어진다

이 속도면 점심 먹기 전에 도착하겠는데? 엄청난 순풍에 해가 뜨거워지는 줄도 모르고 행복하게 길을 달렸다. 그런데 이대로 쭉 Joshua Tree전 체크포인트인 Morongo Valley까지 이어지기엔 역시나 too good to be true였다.


삼십분쯤 달리니 갑자기 길이 비포장 도로로 변했다. 처음에는 달릴만한 수준의 자갈길이었는데 점점 모래가 깊어지더니 나중에는 아예 바퀴가 거의 굴러가지도 않는 수준까지 되어버렸다.

문제의 도로
완전 사막이다

중간에 잠시 포장도로가 나와서 이제야 끝났구나 했는데, 엿먹이려는 건지 한 1km 지나서 바로 더 험난한 흙길로 변했다.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돌아가는 길은 역풍이기에 그냥 앞으로 가는 것이 살길이다 싶어 일단 직진했다.


근데 길이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고 심지어 엄청나게 큰 흙산으로 올라가 버렸다. 물을 5리터 챙겨갔는데 거의 다 떨어져가고 시간은 12시쯤 되니 40도가 넘었다. 점점 어지러워지로 거기다가 사이렌 소리같은 환청이 들려오기까지... 이러다가 진짜 쓰러져 사망하겠구나 싶어서 옆이 있는 풍력 발전기 중 문짝이 뜯어져 있는 곳에 피신했다.


여기로 대피했다

일단 주변 주유소에 연락해 트럭을 보내달라고 하려 했으나 데이터가 안 터졌다. 여기에서 최소 5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마을이 있었고 이 속도로는 한 시간 넘게 걸릴듯 싶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이 최후의 카드를 꺼냈다.


911에 전화해 상담원에게 내 위치(사막 한 가운데라 설명하는데 애를 먹었다)를 알러주고 건강문제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앰뷸런스를 부르는 순간 어마어마한 출동비용이 청구 되고 사실 그늘에 있으니 좀 정신이 들었으니 여기에서 벗어날 수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상담원은 일단 경찰차를 보내겠다고 안내해줬다.


난생 처음 걸어본다

20분이 지났는데 아니 왠걸 대형 소방차가 비탈길 위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소방관들에게 손을 흔드니 나에게 달려와  물을 건네주었다. 분명 긴급상황은 아니라고 말했는데 소방차가 그 길을 올라와 매우 당황스러웠다. 근데 그 순간 소방관의 통신기가 울리더니 불이 났다고 나에게 말했다. 내 앞에서 방화복(?)으로 환복을 하며 불이 났는데 일단 같이 가겠냐고 물었다. 근데 또 마침(진짜 말도 안 되는데 사실이다... 무슨 헐리우드 영화 수준의 우연의 일치가.) 3시간 동안 사람 한 명 안 보이던 길로 트럭 한 대가 올라오는 게 아닌가. 화재진압하는데 고작 자전거 때문에 지체되면 안 되니 저 트럭에 히치하이킹 할테니 그냥 가달라고 전했다.


그렇게 소방차는 가버리고 나는 트럭을 세워 운전수에게 뒤에다가 자전거르 싣고 타도 되겠냐고 물었다. 안 된다해도 올라 탔을 것 같지만 다행히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카를로스라는 친구인데 여자친구 바네사랑 이 흙산 길을 드라이브하러 나왔다고 한다. 대체 여기로 왜 드라이브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러면 같이 구경하고 근처 문명이 있는 곳으로만 내려달라고 했다.


신기하게도 죽다 살아나니 경치가 정말 끝내주게 느꼈다. 근데 산이 생각보다 엄청 컸다. 진짜 자전거로는 못 넘을 산이더라. 어쨋튼 한 삼십분 정도 드라이브를 하고 근처 Palm Springs에서 내려주었다. Palm Springs는 휴양지인데 대체 어떤 미친 사람이 기온이 40도 넘는 사막에서 휴양을 할까 싶기도 했다.


생명의 은인들. 충격 반전은 카를로스가 22살이라는 것. 물론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아직 두 시밖에 안 됐었지만 일단 무조건 실내로 들어가야겠다는 마음에 햄버거를 사먹고 바로 근처 모텔에 들어갔다. 좀 사치를 부렸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은 기념으로 이정도 쯤이야.

이제 문제는 앞으로 사막이 한 몇 백 km씩이나 더 이어진다는 것. 그래도 일단 오늘은 쉬고 생각하자. 인생에 이런 날은 처음이자 (제발...) 마지막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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