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주제마다 당부하는 이야기지만 역사를 읽기 위해서 꼭 해야 하는 어떤 것! 그런 것은 대부분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것이 있다고 한들 그것은 그냥 본인에게 잘 맞는 하나의 방법일 뿐 보편적인 방법론이 될 수 없다고 믿는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자신에게 제일 잘 맞는 하나의 방법만 가져가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부족하지만 나의 읽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야기의 주인공
사건의 중심
그 방법은 소제목으로 적어둔 사건과 사람이 키워드다. 실은 사건과 사람을 분리해서 볼 이유는 없다. 전자는 크게 보는 것이고 후자는 좀 범위를 좁혀서 작게 보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결국 일을 일으키고 거대한 바위를 굴리는 것은 결국 사람이듯 화자 없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은 없다. 앞에서 "왜"를 설명할 때 적어둔 것처럼 역사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다. 이 말을 조금 다르게 하면 좋아하는 이야기를 읽으면 된다.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배운 역사의 기억 때문에 순서를 따라서 꼭 과거부터, 시작부터 읽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될지 몰라도 그렇지 않다. 특정 시대별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사건별로(이야기로) 접근하면 훨씬 쉬워진다. 그렇게 이야기의 조각을 모아가다 보면 각 사건의 전개와 연관성이 어떻게 되는지 보이고 이는 많은 경우 필연적으로 시간순서로 정리되기 때문이다.
역사의 어느 부분을 잡는가에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사람, 인물을 중심으로 잡아도 되고 특정 국가나 단체를 중심으로 잡아도 되고 또는 사건별로 아니면 사상을 중심으로 잡아도 된다. 사실 비슷한 말이기는 하다. 사람 없이 흘러가는 사건은 없기 때문이지만 어떻게 초점을 잡는가에 따라 글을 읽는 방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필연적인 이유
최근 들어서 필연적이거나 구조적인 어떤 것들에 대해서 보고 있다. 당시에는 보지 못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a라는 사건은 A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고 이는 뜻밖에 다른 부작용(side effect)을 낳게 되는 그런 것 말이다. 그리고 그 영향을 주는 과정은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보이는 지점들이 있었다.
포스트모더니즘 팝아티스트로 대표되는 앤디워홀한번 포스트모더니즘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철학과 예술의 분야로 익숙한 포스트모더니즘도 역사의 흐름으로 접근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전적인 정의는 기존 사회의 주류였던 이성, 합리성으로 대표되는 모더니즘을 해체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해체하려 드는가? 시간 순으로 살펴보자. 철학 편에서 자세하게 이야기할 계획이지만 미리 당겨서 조금 풀어가고자 한다. 철학에 대한 교과서적이나 사전적인 정의가 있겠지만 내가 철학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때 자주 사용하는 것은 "세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열망"이라고 표현한다. 한때 종교와 신을 가지고 세상을 설명하려고 하였지만 르네상스를 시작으로 더 이상 세상을 설명할 때 신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람을 중심으로 해석하려 하였고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의 발전으로 수많은 가능성을 보았던 시기였다.
사람이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믿음, 사람의 지혜로 다듬어낸 과학기술은 삶을 풍요롭게 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믿음은 곧 오만이었으며 장밋빛 미래를 배반하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민주주의와 투표를 통해 더 나은 지도자를 뽑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파시즘과 나치즘이라는 사생아를 낳았다.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과학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사람을 효율적으로 죽일 각종 무기와 핵무기로 그 정점을 찍었다. 이상을 가졌지만 그 이상에 정확히 반하는 결과들을 보며 그렇게 현대주의, 모더니즘을 조롱하며 태동한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이렇듯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역사를 따라가 보면 어떤 필연적인 성격을 띠는 곳을 발견할 수 있다. 좋아하는 것을 중심으로 배경과 역사를 살펴보면 더욱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다.
세계대전을 가지고 계속해서 살펴보자. 영국을 비롯하여 주변국가들은 평화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독일의 무리한 조건을 수용하였다. 이런 모습을 보고 끈질기게 히틀러의 야망을 경고하며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경고하던 무명 정치인이 있었다. 독일에게 체코를 넘겨주는 비굴한 협상을 하면서 시대의 평화가 왔다는 네빌 체임벌린 수상을 두고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과 치욕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기로에 놓였다. 그들은 치욕을 선택했고 곧 전쟁도 치르게 될 것이다." 지속적으로 비난하였고 동료의원들에게는 전쟁광취급을 받던 어느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비굴한 협정으로는 전쟁을 막을 수 없었고 2차 세계대전이 막이 오르자 이를 경고한 전쟁광 취급을 받던 어느 무명정치인이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앞에서 언급하였기에 눈치채신 분도 있겠지만 윈스턴 처칠이다.
하지만 만약에 평화분위기가 어느 정도 장기간 이어졌거나 독일의 침공이 전면전으로 가지 못하고 소규모나 국지전에서 그쳤다면 처칠은 그저 전쟁에 미친 정치인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독일은 전쟁 이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결과적으로 모든 사건이 다 끝난 뒤에 보았기에 이런 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당시 결정권자들은 정말로 독일의 조건을 들어주면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을까. 하지만 그 실제 되는 위협을 애써 외면하고 우리의 뜻대로 움직여줄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때 역사는 그대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흐름을 쫓아가보자
가슴속 품은 열망
당신의 사명은 무엇인가
어느 날 회사에서 저연차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였다. 강연의 주제는 인생설계에 관한 것으로 내가 앞으로 삶의 주기를 어떤 목표로 설정해 나갈 것인가. 삶의 목적을 정하고 어떻게 구체화 나갈 것인지 다루었다. 자기 계발적 이야기를 썩 좋아하지 않던 나는 뜬구름 잡는 내용이라 생각하여 한 귀로 흘려듣고 그다지 집중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역사책을 읽으면서 문득 그 강연이 떠올랐다. 강연 활동 중 팀원들끼리 자신의 각자 목표를 수립하기 위해 사명-비전-핵심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동기들은 아직 마땅히 미션이라거나 잘 모르겠다고 답을 하기도 하였고, 그때 당시 강연을 듣던 많은 동기들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목표는 딱히 필요 없어도 될 거 같다는 식으로 답하였다. 나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삶의 목표, 나의 사명 같은 것은 살아가야 하는 데 있어 필수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없으면 없는 대로라고 사는 것이지 생각을 하고 넘어갔지만 책 <역사의 쓸모>를 읽으면서 사뭇 달라졌다.
저자 최태성 강사님께서 역사는 어디에 쓰는가? 질문으로 시작한다. 확실히 느낌부터 역사는 실용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일반적인 다른 과목이나 학문을 놓고 활용도를 비교할 때 역사는 뒤에 있는 녀석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사를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진정한 나로 잘 살기를 원한다면 역사를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독립운동가 이회영<역사의 쓸모>에서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님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의 문구를 소개하였는데 그대로 가져왔다.
서른 살 청년 이회영이 물었다.
"한 번의 젊은 나이를 어찌할 것인가"
눈을 감는 순간 예순여섯 노인 이회영이 답했다.
예순여섯의 '일생'으로 답했다.
이 땅 위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고통받는 백성의 짐을 덜기 위해 대동법만을 외쳤으며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대동법이 이뤄지지 않을까 걱정해 유언 상소를 올리는 선비가 있었다. 처참한 조국의 현실 앞에 판사를 그만두고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하기 위해 내려온 사람이 있었다. 누구는 부자였으나 가문이 가진 재산을 모두 팔고 만주로 넘어가 학교를 세웠다. 그렇게 기꺼이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고 광야로 따라 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제대로 된 보급도 없이 추위 속에서 마지막까지 항전한 군인이 있었고 고문당하며 죽어가는 이의 사명은 이미 망한 나라의 독립이었다. 가슴속 품은 뜨거운 사명이 없었다면 이렇게 까지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던 사명-비전-핵심가치를 말하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의 삶을 통해서, 그들의 한평생 일생으로 답을 하였다. 이것을 보며 삶을 던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럽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부끄럽기도 하였다. 내가 삶을 던져서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내가 가져야 하는 사명은 무엇일까. 그런 것 따위는 없다고 중요하지 않다고 하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요즘 대내외적으로 많은 혼란이 이어지고 있는 시기다. 그럴 때일수록 한 번 더 살펴보게 되는 것은 용기 있는 선택 하지만 어려운 선택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대게 그런 선택을 한 사람일수록 사명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역사를 볼 때 그 아무개의 사명은 뭐였는지 보자. 그리고 그 사명을 비추어보며 지금까지 살아왔고 지금부터 살아가는 나의 사명은 어떤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