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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J Feb 01. 2024

문학 어떻게 읽을 것인가

집착하지 말 것  버려야 할 것

내가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에는 크게 생각 없이 문학이라는 키워드를 가져왔다. 그러나 글을 다시 쓰는 지금 문학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를 지닌 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어떤 이미지를 추상화하여 대강 글을 작성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금 글을 되짚어 볼 때 문학은 무엇인가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시와 가사, 각본, 수필, 비평 모두 '문자'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문학의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이며 이는 종교 경전, 고전 서사시 역시 모두 포함하게 된다. 이를 두고 문학을 중심으로 하위분야로 나누어 볼까 생각해 보았지만 내가 문학에서 소설을 제외한다면 시, 희곡, 시나리오등을 즐겨 읽는 편이 아니기에 결국 소설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기에 소설만 다루기로 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소설로 다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따라왔다. 드라마 작가가 쓰는 것이 오리지널이 아닌 여러 가지 의미로 유명한? 드라마 재벌집막내아들처럼 기존에 흥행한 웹소설을 바탕으로 제작하기도 한다. 일본의 많은 애니메이션 원작을 이루는 라이트노벨(Light Novel) 역시 소설이다. 카카오페이지나 네이버시리즈 같은 플랫폼을 통해서 다양한 장르소설을 접하기 쉬워졌으며 나도 버스와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에 종종 챙겨 보고는 한다. 그렇기에 굳이 분리를 하여 장르적인 소설을 폄하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다만 소설을 쓰는 호흡이 다르며 즉각적인 독자의 피드백이 오는 것과 그렇지 않다는 차이를 무시할 수 없을 거 같았다. 결국 고민 끝에 여기서는 분리하지 않았다. 결국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은 작가의 역량이며 그것을 읽는 입장에서도 소설에 따라서 태도를 달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설. 어떻게 읽어보면 좋을까


0. 일단 읽어 보는 것

모든 주제에 대해서 꼭 한 번은 언급하겠지만 결국 뻔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일단 읽기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만약 시집을 본다? 마음에 드는 시가 있다면 몇 번이고 따라 써보는 것도 좋다. 마치 그 시를 쓰는 시인처럼 말이다. 지금 내 독서노트를 보니 많은 시를 따라 적어둔 것을 보면서 시를 따라 쓰는 것이 심리적으로 많이 도움이 되었으며 감정적으로 풍부해지는 때이기도 했다. 일단 읽고 쓰는 것이 시작이다.


1. 속독이 아닌 정독을 하지만 빠르게

정독과 빠르게라는 말이 모순되지만 결국 이렇게 적을 수 밖에는 없다. 어느 종류의 독서든 마찬가지지만 문자를 눈으로 훑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렇게 읽는 것은 하느니만 못한 정말 시간을 버리는 것이다. 소설의 맥락과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데 그것에 무슨 독서인가.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의 행동과 그 상황을 면밀하게 따라가는 정독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독을 이유로 소설을 읽는 과정이 늘어져서는 안 되는데 우리는 많은 것을 오랫동안 기억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장편 소설을 읽을 때 나도 이따금 "근데 얘는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 하기 때문이다. 소설의 흐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챕터단위도 아니고 한참 읽다가 일주일 쉬어버리면 그다음 디테일한 부분이 기억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기에 할 수 있다면 시간을 내서 몰아서 소설을 읽는 것을 권장을 한다. 아니면 정말 꾸준하게 매일마다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2. 질문지를 따라가기

고전, 베스트셀러일수록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그에 따른 다양한 독서모임 등에서 질문지, 해설지등을 인터넷, 유튜브 검색만으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스포일러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책을 다 읽은 뒤에 찾아보면서 질문지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정리해 볼 수도 있다. 또는 직접 질문지를 만들어 모임에 나갈 수도 있다. 나는 대학생 때 시간을 들여 A4 1~2장 정도로 내가 읽었던 책의 질문지를 정리하여 모임을 주기적으로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이는 분명 책을 읽고 마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경험을 하였다. 내가 소설이나 사회과학책을 읽고 이해했다고 생각하였지만 나의 빈 구멍을 보고 정말 많이 다시 찾아보는 일을 반복하였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도 분명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질문을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지적인 즐거움이며 능동적인 책 읽기의 시작이었다. 어떻게 독후감을 쓸 것인가에 글쓰기에 대해서도 나중에 많은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3. 욕망을 쫓아가기

어찌 보면 가장 직접적인 소설 읽기에 관련된 내용이 될 것이다. 어쩌면 소설을 쓰는 팁이 될 수도 있는데 바로 소설 속 인물의 욕망을 따라가 보자는 것이다. 만약 등장인물들이 욕망이 없다면 그 책에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가난한 사람이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며(평소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는 편견이다) 권력자라고 부자라고 근심이 없다고 그려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진행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판타지에서도 용사의 욕망은 이야기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악당에게 있어서 욕망이 없다면 평범한 엑스트라일 뿐이지 그것은 악당도 아니다. 상반된 두 인물의 욕망은 이야기를 이끄는 수레바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계속해서 주인공과 등장인물의 욕망이 무엇인지 의식하며 읽어보자


4. 좋은 출판사 찾아보기

소설을 읽을 때 지금 당장의 인물이나 이해관계, 배경 설정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아서 읽던 부분을 다시 읽거나 어디서부터 놓쳤는지 모른다면 책을 읽다가도 오히려 짜증이 밀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국내 소설이 아니라 외국의 번역서 영미권이나 일본 또는 특히 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는 안 그래도 이름이 어색해서 누가 누구 인지도 모르겠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게 엉망으로 되어 있다면 집어던지고 싶을 것이다. 결국 그럴 때는 고전소설이라면 다른 번역서가 많을 수도 있으니 출판사별로 독서후기를 참고해서 좋은 번역서를 찾아가야 한다. 아니면 극단적이지만 내가 해당 언어를 마스터해서 원서를 읽는 수 밖에는 없다. 엉망인 번역서를 붙들고 잘 읽는 방법은 나도 모르겠다.


길게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번역서뿐만이 아니라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의 출판사가 출판한 다른 책도 읽어볼 가치가 있을 확률이 높다. 작가는 달라도 원고를 고르는 사람이나 편집자가 같을 수 있으면 유사성을 볼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좋은 편집자의 손을 거치면 좋은 책이 나오는 것은  소설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적용된다.



5. 작가의 작품을 따라다니기

여기서 이야기하는 사례 중 일부 예외적인 작가는 있을 수 있다. 내가 마침 보았던 책이 유일한 히트작이고 다른 책은 뜨지 못한 이유가 있거나 많은 책을 냈지만 거기서 거기인 작가도 있다. 그런 것들을 제외하고 내가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나 글이 있다면 그 작가의 출간한 책을 과거-현재순으로 찾아보자. 작품 속의 이야기도 좋지만 작가의 문체나 이야기가 형식적으로 어떻게 다듬어져 가는지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소설을 소설 그 자체뿐 아니라 작가의 배경이라거나 이전 작품등에 대한 경험을 끌고 와서 보면 더욱 풍성하게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기 시작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면 첫 번째 이유는 우리는 그 책을 쓴 사람이 아니다. 이 무슨 당연한 소리를 대단한 발견처럼 이야기 하나 하겠지만. 작가는 글을 쓸 때 적어도 자신은 그 이야기의 배경과 인물의 관계를 알고 있으니 그것을 옮겨 적으면 된다. 하지만 방금 책을 집어 든 독자 입장에서는 낯선 길 위에 우두커니 선 느낌이다. 지금 당장 보는 사람의 이름도 헷갈리며, 소설 속의 처음 들어보는 지역은 이름도 설정된 위치도 기억하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모든 부분에 각주와 표지판을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몰입도가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처음에 적어둔 질문으로 돌아간다. 일단 읽기 시작하며 "속독이 아닌 정독으로 하지만 빠르게"


대부분의 소설, 문학은 갑자기 주인공이 죽어버리거나 한순간에 적대관계에서 우호세력으로 돌아서거나 이해관계가 휙휙 바뀌지 않는다. 지도를 보고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풍경을 보고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소설의 분위기를 타며 같이 따라가다 보면 정황상 어떤 상황이고 누구인지 파악이 된다. 전 부분에 이해가 안 되던 것이 퍼즐을 맞추듯이 나중에 이해되기도 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계속해서 말하는 소설은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조건이 있는데 '잘 쓴 글' 좋은 소설임을 가정한다. 그렇지 못한 글은 몇 번을 읽어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는 독자의 잘못이 아니고 전적으로 작가의 책임이다. 한 책을 끝냈다는 것에서 이야기를 완결을 냈다면 그것 자체로 분명 대단한 것이지만 사실 소비하는 입장에서 그런 것까지 이해하며 읽어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작가 상상 속에서 아무리 거창한 세상을 생각하고 있어도 그것을 표현하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면 그건 우리에게는 의미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소설을 고를 때 베스트셀러나 모두가 아는 고전명작을 고르거나 또는 나와 책 읽는 취향이 비슷한 친구가 추천해 주는 검증된 책부터 시작하는 것을 권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적어도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면 나에게도 그럴 가능성이 높으며 완성도가 높은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입장벽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두꺼운 소설책에서 책의 무게와 크기만으로 압도당하고 뭔가 장황한 것 같은 도입부를 보고 이해를 하지 못해 겁먹거나, 주눅 들 필요는 전혀 없다. 다른 사람들이 명작이라고 추천하는 책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정 안되면 해설집을 봐도 되는 일이다. 요즘 유튜브에다가 책이름만 쳐도 수많은 해설이 쏟아지는 좋은 세상 아닌가.


책은 읽는 것은 노동이 아니다. 책 속에서 주인공과 함께 힐링을 받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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