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이야기
우리에게 역사란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학교 교과목이나 시험으로 기능하는 역사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사회탐구단원의 역사나 취업을 위해서 준비하는 한국사처럼 말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역사를 대할 때에 시대별로 흐름을 이해하기는커녕 시험을 위해서 암기할 것도 많았고 오답을 거르고 정답을 찾기 바빴을 것이다. 거기에 다른 이야기지만 수능도 해를 갈수록 출제범위는 그대로인데 나올 수 있는 문제는 계속 쌓이는 중이라. 단순히 아는지 물어보는 것으로는 문제 난이도를 맞출 수가 없다. 그래서 굉장히 지엽적이고 꼬아서 문제를 내다보니 배우는 입장에서는 그 사건이 1834년인지 1835년에 있었는지 알게 뭔가 거기에 한 번 더 꼬아서 그 일이 일어나던 해 옆나라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맞추려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다.
역사도 결국 이야기였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 역사는 공부하는 과목 중 하나가 아니다. 시간순으로 사건을 암기하며 집착하면서 읽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나는 나는 문학 작품 읽듯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듯이, 아니 그렇게 읽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역사를 읽은 이유는 재미있어서였다. 만약 이것이 문학 작품이라고 하면 외교, 정치, 전쟁 전략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이다. 때로는 현실이 픽션보다 더한 것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들의 연속이었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어떻게 역사를 읽었는가에서 자세히 쓰도록 하겠다.
지식은 삶의 해상도를 높인다.
흔히 하는 말로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하지 않던가. 같은 맥락에서 지식은 삶의 해상도를 높이는 일이고 해상도가 높은 사람은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믿는다. 이는 특정한 주제나 키워드로만 정의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분야 역시 마찬가지이므로 잡다한 분야의 독서와 경험을 권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역사가 가지는 힘은 우리 삶과 밀접하게 붙어있다.
"시치미를 뗀다"는 과거 매사냥을 할 때 남의 매의 이름표를 떼고 자신의 것을 붙이는 것에서 유래된 것은 흔히 알려진 사실이다. 베트남의 대표음식인 비안미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에 프랑스식문화가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음식이다.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많은 나라들은 좌측통행을 하고 있다. 내가 여행을 하고 있을 때 만약 일본이 아닌데 좌측통행을 하고 있는 곳이라면 과거 영연방이나 식민지였던 곳이 아닌가 살펴보자. 일상에서 사용하는 용어 중 마지노선의 유래는 전쟁에서 왔다.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을 겪으며 아군을 최대한 보호하고 적군에게 소모전과 희생을 강요하는 방어적인 전술은 참호라고 보았다. 거기에 더해 전차라는 처음 보는 무기를 대비하여 프랑스-독일 국경지대에 진지를 구축하고 전차가 지나갈 수 없게 깊게 참호를 팠었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를 제안한 앙드레 마지노의 장군의 이름을 따서 마지노선이 되었다. 참고로 독일은 마지노선을 우회하여 벨기에를 통해 프랑스로 침공하여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러한 것은 비단 일상생활의 어떤 용어나 여행을 하며 만나는 문화뿐 아니라 문학작품을 읽을 때도 도움이 된다.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명작 최인훈의 <광장>에서 시종일관 '중립국'을 외차는 주인공을 만날 때에 역사를 알면 그의 행동이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한국전쟁 막바지 정전협상을 진행하기 전 걸림돌은 포로 문제였다. 제네바 협약에 의하면 일괄적으로 포로의 의사에 따라 소속된 본국으로 송환하게 하지만 이번 전쟁은 상황이 달랐다. 중국은 국공내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점 국민당원이 공산당으로 전쟁에 참전하여 포로가 되자 대만으로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다수 있어 중국이 깜짝 놀라고 국군과 북한군 역시 이념이나 살던 지역에 따라서 간단하게 소속이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한강 이남에서 북한에게 징집되기도, 한강 이북에서 국군에 징집되기도 하였다. 즉 일괄적으로 잡혔을 때의 소속만을 가지고 송환할 수 없었는 상황이었다. 최종적으로 인도의 제안에 포로협정을 타결하는데 우선적으로 포로가 소속된 해당국에게 설득할 기회를 주었고 어디에도 선택하지 않고 중립국을 택한 사람들은 인도에서 일정기간 생활한 뒤 원하는 나라로 보내주게 되었다. 그렇게 공화국을 위해 일해달라고 설득하지만 주인공이 시종일관 '중립국'을 외치는 장면이었으며, 주인공이 인도로 가는 배를 타고 가면서 일어나는 일이 소설의 내용이다. 많은 것들은 시대 분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해당 문학이 쓰인 시기의 역사와 배경을 안다면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누군가의 편협함은 다른 생각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최초의 역사서를 쓴 사람이든 어떤 것을 주제로 책을 쓴 사람이든 무조건적인 중립이나 절대적인 객관성은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사람이기에 발생하는 편향과 고정관념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를 두고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 다양하게 많은 책과 담론을 다루다 보면 이런 지점이 느껴지기 때문이고 아 이 사람은 이 사건을 이렇게 보는구나 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을 두고 누군가는 긍정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볼 수 있다. 한 가지 예시를 들자면 1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는 전쟁의 상처를 회복하기도 전이었는데 경제 대공황의 여파까지 덮쳐왔다. 독일과 영국을 비롯한 총 4개국은 독일에게 체코 영토를 넘겨주는 대신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조약을 체결했는데 이를 뮌헨협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1년 뒤 독일은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다.
친애하는 여러분, 역사상 두 번째로 영국 총리가 독일에서 명예로운 평화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시대를 위한 평화라고 믿습니다. -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
체코를 넘겨주는 일에 대해서 큰 두 가지 평가로 나누어지는데 첫 번째는 비판적인 시각이다. 평화에 눈이 멀어서 그릇된 선택을 했다는 의견으로 싸우겠다는 의지가 없는 유화정책은 상대방의 공격 의지를 더욱 강하게 한다.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의 여파로 영국과 프랑스는 사실상 군대를 운영할 돈이 없었기에 군비증강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영국의 체임벌린 총리는 히틀러를 띄워주며 독일의 조건을 들어주었고 뮌헨 협정을 가져오며 영국 국민에게는 이 시대의 평화가 왔다고 했다. 이를 두고 윈스턴 처칠은 평하기를 영국은 불명예나 전쟁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에서 둘 다 선택했다고 말한다. 독립국이었던 체코를 자신들의 평화를 위해 독일에게 넘겨주었지만 전쟁이라는 결과를 막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의견은 긍정적으로 평하는데 전쟁은 피할 수 없었고 시간을 버는 기회라는 것이다. 독일 총통인 히틀러는 처음부터 전쟁을 하고 싶어 했고 독일은 대공황의 여파를 벗어나지 못하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탄탄한 중공업을 바탕으로 군비증강을 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틀러는 처음부터 전쟁을 전제로 무리한 요구를 하였으나 의외로 프랑스와 영국이 독일의 모든 조건을 수용하면서 체코슬라비아를 침략할 구실을 잃어 전쟁을 잠시 미루게 되었다. 그리고 독일이 패전하기 직전 히틀러는 그때 바로 침공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결국 체코를 넘겨주는 비굴한 협약을 통해서 프랑스와 영국은 겨우 1년이라는 시간을 벌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시간을 통해서 숨을 돌렸고 2차 세계대전의 결말이 달라졌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결과론적인 이야기며 체코를 넘겨주는 것이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여기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지금 다시 살펴보면 나도 한때 극단적인 어떤 주장이나 사상이 옳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것에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멍청하며 그 사상을 가지고 장사를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정도로 오만하였다. 비록 이런 나도 많은 책과 역사서를 읽으면서 점점 허물어진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그곳에 서 있는 이유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인 것을 이 당연한 것을 깨닫게 해 준 것이 역사였다. 역사는 지적인 호기심과 비판력을 키우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