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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균인간 Jan 01. 2022

비酒류

비주류에게 술은 '벽'

비주(酒)류. 한국에서 술을 못 마신다는 건 비극이다. 신입사원이 마주한 첫 회식은 그야말로 '벽'이었다. 테이블 반대편에서 시작된 소주 파도타기는 내 앞에서 해일이 됐다. 잔을 들고 움찔거리자 포식자들은 그 0.1초의 망설임을 감지했다.


"야 파도 끊기잖아. 신입이 빠져가지고." "마셔 마셔!"

나는 얼른 잔을 털어 넣었다.

"자 이제 반대편부터~"


목구멍에서 역한 냄새가 올라왔고, 그대로 뛰어나가 가로수를 부여잡고 격하게 게워냈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부터 본능은 내게 말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가게 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 안에서 일을 치르면 큰일이다. 건물 옆을 돌아가면 화장실이 있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신발 신을까 말까를 고민하는 와중에 존엄한 인간의 모습까지 지키는 건 무리였다. 이마에 핏줄이 선 파란 얼굴이 돼서 들어왔지만 여전히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야 어디 갔었어? 거기부터 다시!~"


몇 차례 회식이 있을 때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고, 팀공적인 술자리 외에는 나를 더 이상 부르지 않았다. 월급쟁이들의 술자리는 온갖 뒷얘기들이 오가는 '정보의 장'이면서 상사에 대한 접대 자리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비주류가 됐다. 아침에 출근하면 술냄새에 절어 어제 술자리 무용담으로 자기들끼리 키득댔다. 그게 뭐 그렇게 자랑이라고 3차까지 갔네, 4차까지 갔네, 먹은 술이 몇 병이네 하며. 팀도 만족한 눈치다. 애써 외면했지만 사회초년생인 나는 불안했다. 그 자리에 껴야만 할 것 같았다.


송년회로 거리가 북적이던 어느 겨울, 사무실을 나와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데 길 건너에 불그스레 불이 켜진 포장마차가 눈에 들어왔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된 하루를 겪고 퇴근길에 홀로 포장마차에 들어가 소주를 마시는 매우 낭만적인 장면. '나도 해볼까? 혼자 천천히 마시면 괜찮겠지. 술이 늘지도 모르잖아?'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어느새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병과 우동을 주문하고 있었다. 옳지 않았음을 깨닫는 데는 소주 1잔이면 충분했다. 소주 한 병을 거의 그대로 남긴 채 우동만 한 그릇 먹고 나왔다. 그날 이후 술자리에는 미련을 완전히 버렸다.


술 못 먹게 태어난 게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10년을 꾹 참고 다녔다.


세월은 나를 과장으로 만들었다. 아랫사람도 많이 생겼고 천만다행으로 '술 권하는 문화'가 사회적으로 문제시되면서 포식자들이 함부로 발톱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개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었고, 난 무시하고 넘길 수 있었다. 그때 난 담배도 끊었다. 마지막 남은 나의 안테나.. 또 하나의 소식통이었던 흡연실을 끊은 거다. 다시 비주류인 건가 싶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뭐가 중한지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또 10년이 지나 회사를 그만둔 지금은 혼자서도 가끔 맥주를 마신다. 여전히 한두 잔 정도 마시면 몸이 힘들어져 더 마시지도 못하고, 그래서 취하지도 않지만 말이다.

 

혹자는 술이 영감을 주기도 한다는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절대 취할 수 없는 내 머리는 이성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오늘도 하얀 백 지위에서 또 '벽'을 마주한다.


그래서 아직도 난 비주류인 건가...

 


          새해에 금주 금연하시는 분들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올 한 해 모두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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