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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균인간 Mar 17. 2022

스타벅스의 고민은 바로 나?

갈 곳을 잃다

A-27번 고객님, 주문하신 따뜻한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 한 잔 나왔습니다~.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커피를 집어 든다. 급히 자리로 돌아가 앉는데, 테이블 옆에 유모차가 보인다. 여자는 커피를 내려놓고 칭얼거리는 아기를 능숙하게 챙긴다. 헐. 아이 엄마였다니. 창 밖을 보니 고등학생이 군복을 입고 걸어간다. 


찬찬히 매장 안을 둘러봤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이 많지 않다. '아니겠지.. 지금 시간대가 젊은 사람들이 많은 시간대인 거야'라고 생각하며 주문을 한다. 카톡으로 받은 쿠폰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앱이 열리지 않는다. 한 5초쯤 흘렀을까? 뒷사람의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왠지 '저런 것도 빨리 못하나?' 하는 것 같다. 나는 그냥 휴대폰을 넣고, 카드를 꺼낸다. "그냥 이걸로 해주세요"

자리로 가 앉으면서 옆 테이블에 앉아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는 여학생을 본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양 엄지를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어찌나 빠른지 손가락이 여섯 개로 보인다. 혹시 내가 늙었나? 절대 아니다. 난 원래 문자 메시지를 느리게 보낸다. 그리고 쿠폰 앱이 빨리 실행되지 않은 건 전적으로 매장의 와이파이가 형편없기 때문이다.  


며칠 전 신문에서 기사를 읽은 게 발단이다. 제목이 '고민이 깊어지는 스타벅스...' 대충 이랬던 것 같다. 스타벅스는 젊은이들의 감성을 사로잡는 마케팅으로 성공했다. 그런데, 최근 40대에서 50대 손님 비중이 크게 늘어나면서 젊은이들의 '힙'한 장소라는 이미지가 위협받게 됐다는 거다. '아.. 이런, 내가 위협이라니.'


동의할 수 없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아직 젊다.(그렇게 믿는다) 청바지에 운동화. 그것도 찢어진 청바지다. 테이블에 앉아 조선일보를 펼쳐 들지도 않고, 메뉴에 쌍화차는 없는지 묻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들처럼 노트북에 태블릿도 있고,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X세대가 늘 그래 왔듯, 변화를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그런데,, 내가 고민거리라니..


스타벅스는 회사를 그만두고 즐겨 찾는 곳이다. 팬데믹으로 도서관에서도 책을 읽을 수 없다. 사실상 대한민국은 카페를 제외하면 갈 곳이 없다. 한국이 '스타벅스 공화국'이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도시에 공원도 별로 없고, 있다 한 들 여름과 겨울엔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더 그 기사가 뼈아프다. 갈 곳을 잃었다. 스타벅스가 한국에 진출한 지 20여 년. 20년 전에 나는 누가 뭐래도 젊고 힙한 영 에이지였다. 그렇게 20년 동안 힙한 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게 누군데... 배신감을 느낀다.


젠더 갈등보다 더 심한 갈등이 세대 갈등이다. '노 키즈 존'에이어 '40대 이상 출입금지', 노 프로페서 존 도 등장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현재 대한민국의 평균 연령은 43.7세고, 10년이 지나면 평균 50세가 넘는다. 나는 수적 우세를 앞세워 점쳐본다. 스타벅스가 '중년 출입금지'따위의 정책은 펼치지 않으리라.


이제 곧 나도 더 이상 '힙'할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이미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받아들이는 문제는 별개다) 아무리 젊게 입는다고 한들 가슴에 '오지는 세상'이란 글자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을 자신도 없고, 침침한 눈으로 벽을 가득 메운 현란한 명칭의 메뉴를 속사포처럼 주문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인간의 수명은 길어지고, '힙하다'의 정의 또한 바뀔 수 있으니,


스타벅스도 그런 시대착오적인 고민은 그만하고, 세대를 아우르는 진짜 '힙'한 공간으로 재 탄생하길 


진. 심. 으.로. 바. 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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