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 가는 길
안중(安仲)은 '편안함 가운데'라는 뜻이다. 마을이름이 안중이라면 살만한 동네다. 오래된 마을의 이름은 이유가 있다. 대개 지세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안중이 속해 있는 평택도 평야와 못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중이란 이름은 남다르다. 의미가 부여된 경우니 실제로 편안하거나 아니면 편안하기를 바라는 바람이 담겼을 것이다.
내가 처음 안중에 간 건 아주 오래전이다. 결혼을 앞두고 시댁을 찾았다. 서울의 한동네 혼사였지만 시댁은 아버님의 고향에 땅을 마련하고 집을 지어 내려가신 직후였다. 남편도 몇 번 찾은 적 없어 전화통화로 길을 물어물어 찾아가야 했다. 읍내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시골길은 외길에 다듬어지지 않아서 가는 내내 덜컹거리고 마주 오는 차가 있지 않을까 가슴 졸여야 했다. 동네 입구를 알려주는 커다란 느티나무와 마주한 마당 넓은 집이 목적지였다. 새로 지은 집은 요란하지 않으면서 세련된 지붕을 얹고 있어 울긋불긋한 시골집들 사이에서 귀티가 났다. 나지막한 붉은 벽돌담은 길 쪽으로만 처져 있고 집 뒤의 밭쪽으로는 훤히 뚫려 있어 애초에 보안과는 상관없는 모양새였다. 설계에 관여하셨다는 아버님의 자부심 넘치는 눈빛과 별개로 업자에게 미리 준 돈을 떼이셨다는 뒷얘기를 어머님으로부터 들어야 했지만 어쨌든 편안한 살림집이었다. 적당히 촌스러운 실내 인테리어는 이웃들이 놀러 와도 기죽지 않을 정도라 겸손하게까지 느껴졌다. 집은 주인을 닮기 마련이다. 아버님과 어머님을 닮은 집은 주인과 함께 오래오래 행복할 것이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지붕을 새로 이었다.
마을 저 멀리로부터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어우러져 보이던 스위스 샬레식 아름다운 지붕이 온 데 간데없었다. 대신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형광빛에 가까운 주황색이 느티나무 아래 번쩍였다. 집에서 지붕이 그렇게 중요한 줄 이전엔 미처 몰랐다. 첫인상이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었다. 인상을 좌우하는 지붕이 바뀌고 나자 앞마당의 잔디가 아무리 윤기 나게 푸르러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시골집'이 되고 말았다.
할 말 잃은 가족들의 실망감은 아버님의 의기양양한 미소 앞에서 얼른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사진이라도 찍어뒀어야 하는데'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집은 늘 거기 그대로일 줄 알았다.
"이중지붕이라 단열에 강하단다."
말은 삼켜도 안타까운 눈빛만은 숨기지 못한 가족들이 지붕을 올려다보며 서성이자 아버님의 변명 아닌 변명이 따랐다. 이글대는 태양아래 가족들의 침묵 사이로 잔디밭 자동물뿌리개 소리만 '휙휙' 돌아갔다.
"할아버지, 지붕이 이상해요!"
시원한 마루에서 한잠 자고 나온 유치원꼬맹이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였다. 가족들이 차마 하지 못한 그 말이 크고 낭랑하게 울렸다. 그러자 어색하게 유지되던 알 수 없는 긴장이 일시에 풀리며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아버지, 지붕은 왜 하셨어요?"
"옛날 지붕이 훨씬 나아요."
"지붕업자 말에 넘어간 거지 뭐냐."
담아두었던 원망과 질책이 돌아가면서 나왔고 수세에 몰린 아버님은 진땀을 빼셨다.
"원래 지붕 위에 덧씌운 거니까 정 싫으면 걷어내면 된다."
가족들의 공세에 아버님이 한발 물러나셨다.
"햇빛에 바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처음이라 어색해서 그렇지 익숙해지면 있는지도 모를 거예요."
이번엔 가족들이 누그러졌다.
"지내보다 영 아니다 싶으면 그때 걷어내죠."
그렇게 '잠정적'으로 주황색 지붕은 집의 얼굴이 되었다. 언제든 마음먹으면 걷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 가족들의 안타까움을 덜어준 게 사실이다. 그 '마음먹는 일'이 요원하리란 건 모두가 알았지만...
집은 주인과 함께 한다.
아버님이 콩밭에서 쓰러지시고 몇 년의 병원생활을 하시는 동안 집안 잔디는 무성하다 깡똥하다를 반복했다. 기록적인 이상고온으로 갖가지 봄꽃과 장미까지 핀 따뜻했던 11월의 하루,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님 홀로 계신 시골집은 안쓰럽게도 기가 꺾여 보였다. 처음의 반짝이고 눈부시던 시절이 생각나 괜히 먼 산만 바라보게 되었다.
여전히 지붕은 주황색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처음의 그 눈부시던 형광빛이 바랬다는 정도다. 아버님 댁 주위로 새로 고친 집들의 세련된 박공지붕이 들어섰다. 이제 마을을 대표하던 멋진 집의 타이틀을 넘겨야 할 때가 됐다.
« Quand les cimes de notre ciel se rejoindront
Ma maison aura un toit. » Paul Eluard, Dignes de vivre, éd. Julliard, 1941, p. 11
하늘 꼭대기가 서로 맞닿는 날,
내 집은 지붕을 갖게 되리. - 폴 엘뤼아르
아버님은 더 이상 지붕이 필요하지 않으시다. 마음씨 고운 시인들과 함께 계신 그곳에서.
(사진: Unsplash의 Hans Isaac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