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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 Jan 07. 2019

먹고, 자고, 감사하라

베트남 한 달 살기 Day 11

벌써 한 달의 3분의 1이 지났다. 

지금, 여기는 느리게 가는 것 같은데 시간의 총합은 얄미울 정도로 빨리 간다. 시간이 야속하다.

어느덧 이곳에서 누리는 모든 것에 익숙해졌다. 이곳의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럴 때 감사 일기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당연하게 되어버린 일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 준다.

나 자신을 충만케 해준다. 


일기장을 펼쳐 들었다. 그중 지난 10일 간 쓴 감사 일기를 살펴본다.


회사 업무를 무사히 끝마치고 하노이에 올 수 있음에 감사하다.

여행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음에 감사하다.

마음이 착착 맞는 여행 동반자가 있음에 감사하다. 


2일 차 아침에 쓴 감사 기록이다. 휴가를 가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라 이것도 하나의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3일 차 기록

감기에 걸리지 않아서 감사하다. 

여행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원하는 정보를 어디서나 얻을 수 있는 편한 세상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다. 


4일 차 기록

아프지 않아서 감사하다.

한국에서 업무 관련 긴급한 일이 터지지 않아서 감사하다. (내가 없어도 일이 돌아가는 사실에 감사하다.)

함께 여행하는 H도 아프지 않아서 감사하다.


지난 한 달간 무리한 일정 탓인지 출국하는 날 몸이 으슬으슬했다.

다행히 감기로 이어지지 않고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여행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우리는 종종 아프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고 착각한다. 몸살이나 복통이 우리의 정신과 몸을 황폐하게 만들 때까지. 여행 중 아픈 것은 운이 나빠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반대이지 않을까. 몸이 아플 수도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하는 게 아닐까. 


5일 차 기록

배려심 깊은 든든한 여행 파트너가 있어서 감사하다. 

현지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알게 되어서 감사하다.

음식 먹고 아무 탈이 나지 않아서 감사하다. 


6일 차 기록

여행 중 지금까지 어떠한 해코지도 당하지 않아서 감사하다.

지금 여기, 이곳 하노이에 있음에 감사하다.

간밤에 잠을 잘 자서 감사하다.


'친구를 알고자 하거든 사흘만 같이 여행하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그 정도로 여행은 서로의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여행 방식을 이해해주고 혼자 온 듯 둘이 하는 여행의 거리를 지켜주는 사람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서로의 '멍 때림'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 침묵 속에서도 이어져 있는 느낌이 드는 사람과 함께 여행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7일 차 기록

아무 탈 없이 이곳 생활에 적응하게 되어 감사하다.

크리스마스를 따뜻한 나라에서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 

타국에서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있음에 감사하다.


8일 차 기록

이곳 마이쩌우에 1년 만에 돌아올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곳 베트남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됨에 감사하다. 

따뜻한 햇볕 아래, 조용한 시골에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나는 인생도 그렇고 여행도 그렇고 모든 것이 사람으로 귀결된다고 믿는다. 

베트남에 있는 동안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정이 내 마음의 장작에 불을 지피는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엄청난 운이 필요하다. 이 모든 인연을 만나서 감사함을 느끼는 하루였다. 


9일 차 기록

자연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좋은 책을 만나게 되어 감사하다.

따뜻한 나라에 있게 되어 감사하다. 


10일 차 기록

잠을 곤히 잘 자게 되어서 감사하다.

감기에 걸리지 않아서 감사하다. 

자연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11일 차 기록

여행의 3분의 1 지점까지 아무 탈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한국 한파를 피해 이곳에 와 있어서 감사하다. 

쨍쨍한 날뿐만 아니라 비 오는 날 등 마이쩌우의 다양한 모습을 경험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날의 날씨도 하루하루 감사해야 할 일이다. 한국에는 한파가 몰아닥쳤다고 하는데 이곳의 날씨는 싱그럽기만 하다. 추위를 싫어하는 내게는 엄청난 축복이다. 비가 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산 중턱에 안개가 걸려있는 광경도 볼 수 있고 톡톡 떨어지는 빗소리의 운치를 즐길 수 있으므로. 


이렇듯 매일 아침 감사하는 것 3개를 쓰면 긍정적인 시선으로 모든 것을 대하게 된다. 

나를, 나를 둘러싼 환경을. 

감사라고 해서 거창할 것도 없다. 그저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쓰면 된다. 다음 날도 똑같은 일에 감사해도 괜찮다. 그 일에 대해 두 배로 감사하면 되니까. 


아침에 아주 잠깐 쓰는 일기가 여행을,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나 자신을 채워준다. 

오늘도 먹고, 자고, 감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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