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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 Jan 06. 2019

마이쩌우 홈스테이 일상
(하노이 근교 여행)

베트남 한 달 살기 Day 10

저절로 눈이 떠졌다. 창문은 회색 빛을 띠고 있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켠다. 

6시 25분이다.

더 잘까 잠시 생각해본다. 그러기에는 정신이 너무 맑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잠을 마다하다니 이곳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나 보다. 


카디건을 걸치고 방문을 연다. 마이쩌우의 아침은 우리나라 가을 새벽처럼 제법 쌀쌀하다. 

잔잔하게 부는 선선한 바람이 정신을 더 맑게 해 준다. 

사방은 안개로 둘러싸여 있다. 마당 나뭇잎과 꽃 위에는 지난밤의 이슬이 채 마르지도 않았다. 주변 공기도 약간 축축한 느낌이다. 

이따금씩 울리는 새소리가 정적인 아침에 리듬을 더해준다.



스트레칭을 한다. '아침 루틴'을 시작한다. 주인집 엄마가 우려 주신 자스민 차와 함께.

이곳에서 명상을 하면 이상하게 기분이 황홀하다. 감각을 주변 소리에, 몸에, 호흡에 집중한다. 아침의 고요가 내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아침 루틴이 끝나면 넋을 놓고 앉아 저 멀리 아침 풍경을 바라본다. 



"꼬꼬댁~~~"


공작새의 자태를 뽐내는 닭이 우는 소리다. 생긴 건 잘 생겼는데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댄다.

그 소리가 절박해 마치 집 나간 누구를 애타게 찾는 것 같다.

닭의 울음소리는 아침을 알리는 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밥 먹어~"


주인집 엄마가 우리를 부르는 정겨운 소리다. 

지난밤에 한국어 '필수 표현'을 여쭤보시길래 알려드렸다.

밥 먹어, 언제, (응용하면) 언제 밥 먹어, 배고파. 와 배고파?, 엄마 등...


오늘 아침은 쌀국수에 이어 바게트 빵과 계란이다. 그리고 우리 베트남 엄마의 특제 연유 커피이다. 

바게트 빵을 찢어서도 먹고 계란과 오이에 싸서 먹는다. 

간단한 요리인데 참 맛있다. 커피는 꼭 커피 향을 머금은 풍미 있는 초콜릿 우유 같다. 



아침을 맛있게 먹고 다시 마당 테이블로 간다. 씻는 건 생략한다. 

이른 아침의 축축함과 정적은 온데간데없고 어느덧 해가 기분 좋게 자리를 비추고 있다. 

노트북을 꺼낸다. 여행 글을 쓰던지 업무 관련 글을 쓴다. 

지루해지면 그만두고 방에서 책을 가져온다. 그리고 해먹에 누워 책을 읽는다. 

또 지루해지면 풍경을 본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점심은 항상 양이 많다. 매번 소고기, 돼지고기, 생선 등 세 종류의 고기를 요리해주신다. 그리고 바로 앞 텃밭에서 막 따온 야채를 듬뿍 주신다. 맛이 좋아 계속 먹게 되어 자주 과식을 하게 된다. 

우리의 전략은 밥을 적게 먹고 반찬에 집중하는 것이다. 정성스럽게 해 준 음식을 많이 남기면 실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점심 후 배를 움켜잡고 마당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소화가 좀 되었다 싶으면 자전거를 타고 마이쩌우 곳곳을 둘러본다.

첫날은 마이쩌우 빌리지 돌아보기.

둘째 날은 호수 주변 돌아보기.

오늘은 여기저기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보기로 했다. 


해가 쨍쨍하다. 이곳의 겨울 햇빛은 강하면서도 따뜻하다. 

로션은 안 발라도 선크림은 필수로 바르지만 이곳에서는 선크림 바르는 일을 생략한다. 

있는 그대로의 햇빛을 온몸으로, 풀잎 향을 머금은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선크림이 나와 햇빛, 그리고 바람 사이의 접촉을 막는 찜찜한 느낌이랄까...

자전거를 타며 시원한 바람을, 따듯한 햇빛을 맞는다. 온몸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초록의 논 가운데 오솔길이 펼쳐져 있다. 서로 장난치는 개들도 보이고, 소와 염소도 보인다. 



자전거 페달을 밟다 보면 여기저기 마을에 다다르게 된다. 

"신짜오"

능숙한 솜씨로 베를 짜는 현지 주민과 눈을 맞추니 인사를 건넨다. 

그 옆에는 형형색의 전통 의상들이 걸려있다. 

각 마을을 거치며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쉬어야겠다 싶으면 숙소로 돌아온다. 땀을 한 바가지 흘리면서.

따로 자전거 타는 시간을 정해놓지 않았다. 여기서라도 맘 가는 대로 살고 싶어서.


마침내 샤워를 할 시간이다. 땀과 먼지를 씻어내고 마당에 앉아 솔솔 부는 바람을 만끽한다.

이때 얼음 동동 띠워서 마시는 하노이 맥주는 세상 어느 맥주보다 더 맛있다. 

벌컥벌컥 마신다. 차가움으로 머리가 띵할 때까지. 

그러고 나서 해먹에 눕거나 의자에 앉기를 반복하면서 책을 읽거나 멍을 때리거나 웹서핑을 하거나 낮잠을 잔다. 기분 내키는 대로. 

몇 시간에 한 번씩 논에서 먹이를 찾아다니는 오리 떼를 보는 것도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꽥꽥, 삥삥, 등 다양한 소리를 내면서 일렬종대로 논에서 무언가를 먹는다. 아주 열정적으로 먹이를 먹는다. 



해가 지는 광경은 꼭 바라본다. 일몰에는 어떠 신비한 힘이 있는 것 같다. 슬프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하고, 찬란하기도 하다. 황금색과 붉은색을 섞어놓은 듯한 아름다운 색이 하늘을 뒤덮는다. 해가 지고 나서도 끝까지 은은한 빛을 내는 모습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언제 봐도 그렇다. 

주변이 암흑으로 뒤덮인 이후에도 여운이 계속 남는다. 


저녁을 먹고 주인집 엄마, 아빠와 대화를 나눈다. 손짓으로 하다가 안되면 번역 앱도 쓰고, 그래도 안되면 옆집에 영어를 할 줄 아는 현지인 친구를 부른다. 공기는 선선하고 마음은 따듯한 시간을 보낸다.

마당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공기가 차가워졌을 때쯤 방 안으로 들어간다. 

안에서 하루를 정리한다. 주변은 귀뚜라미 우는 소리와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로 가득하다.

책을 들고 얼마간 읽는다. 스르륵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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