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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 Jan 08. 2019

나는 세상에서 개가 가장 무섭다

베트남 한 달 살기 Day 12

여행할 때 개를 방어하는 호신용품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개가 무섭다. 귀신보다도 더 무섭다. 

덩치가 큰 개를 지나칠 때면 오금이 저린다. 그 자리에서 얼어버린다.

내가 풍기는 두려움의 냄새를 맡아서 그런 건지 개들은 나한테만 으르렁 거리는 것 같다. 

이곳 베트남에는 길거리를 배회하는 개들이 많다. 마이쩌우에 와서도 아침 일찍 달리기를 하자고 결심했지만 곳곳에 개들이 산적해 있어 아침 조깅을 포기할 정도이다. 


초등학교 때로 기억한다. 

학교 가는 길에 있는 집에 눈이 뻘건 개가 있었다. 매번 으르렁거려서 나와 친구들은 좁은 골목에서 최대한 거리를 두고 그 집을 지나치곤 했다. 다행히 그 개는 개줄에 묶여있어, 위협만 할 뿐 우리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어느 날 동네 친구가 늦잠을 자서 혼자 학교에 가게 되었다. 여느 때처럼 그 집을 지나치며 그 개를 마주쳤다. 

이상하게도 나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날따라 어린 감수성이 발동한 탓인지 그 개가 쓸쓸해 보였다.

조심히 그 개에게 다가갔다.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겨주었다. 

내가 그동안 착한 개를 오해했구나, 하며 미안한 생각이 들어 한참을 놀아주다 학교로 향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동네 친구들과 집에 가는 길에 다시 그 개를 만났다.

"이 개 하나도 안 무서워. 엄청 착해. 내가 보여줄게." 하며 그 개에게 다시 다가갔다. 아마도 그 사나운 개를 만질 수 있다는 걸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침과 같이 그 개는 얌전히 있었다. 

나는 동네 개를 쓰다듬으며 친구들을 바라보고 말했다.


"봐봐! 얘 말 잘 듣지."


순간, 그 개가 두 발로 내 다리를 움켜잡고 물기 시작했다. 


찌지직!!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입고 있던 바지가 한 번에 찢어졌다. 

어린 나이에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발을 떼어내고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두려움, 그리고 배신감이 들었다.

다행히 두꺼운 청바지와 겹겹이 내복을 입고 있어서 다리 살만 약간 까지는 정도로 끝났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개가 있는 집을 돌아서 통학했다. 


그때부터 개들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내 몸집보다 더 큰 진돗개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음에도 다른 개들만 보면 몸이 얼어버렸다. 

내 두려움이 개들을 더욱 자극했던 걸까,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우리 할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씩 근처 절 안에 있는 약수터에 가서 물을 떠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셨다. 

그곳에는 어마 무시한 도베르만이 살고 있었다. 내가 갈 때마다 엄청 짖어댔는데 너무 무서워서 주인아저씨가 나오거나 다른 어른이 주변에 있을 때까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다리기 일쑤였다. 쇠사슬에 묶여 있었는데도 그 존재 자체가 너무 무서웠다. 


마당에 낙엽이 무성한 늦가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따라 그 개가 조용하길래 용기 내어 천천히 약수터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 보기로 결심했다. 계단을 다 내려가니 도베르만이 막 짓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이대로 도망가면 할머니에게 혼 날 것이 분명했다. 


철렁! 철렁! 


도베르만이 나에게 다가오려고 하자 쇠사슬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용기 내어 아주 작은 보폭으로 약수터 쪽으로 한발 자국씩 전진했다. 


철렁! 철렁! 뚝!........ 철렁! 


그때였다. 그 검은 개가 쇠사슬을 힘으로 끊고 어린 내게 달려온 것이. 

어린 맘에 나는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려주세요! 부처님 제발 살려주세요! 아저씨 제발 살려주세요! 악!!!!!!"


울면서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바로 내 앞으로 송곳 같은 이빨을 드러내며 그 개가 다가왔다.


"야! 이놈 XX"


라는 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아저씨가 근처 건물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 도베르만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나는 한참을 울었다. 그때부터 약수터 심부름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집 마당과 길거리에 있던 개들도 자취를 감쳤다. 개에 대한 두려움도 이내 옅어져 갔다.

그러다 성인이 되어 동남아로, 남미로 여행하면서 곳곳에서 개들을 마주쳤다. 

과거의 두려움이 다시 나를 엄습하였다. 

이곳 베트남은 수도를 가나 시골을 가나 어디에서든지 개들이 즐비하다. 심지어 밧줄에 묶여 있지 않고 길거리 곳곳을 활보한다. 


마이쩌우 홈스테이 집에는 무려 개들이 네 마리나 있다. 검은 개 세 마리, 누런 개 한 마리.

첫날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도 낯선 사람을 보고 다가오길래 온 몸이 얼어버렸다. 그래도 주인 분들이 항상 계시니 안전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가능한 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으려 했다. 

그런데, 해먹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조용히 내 옆에 다가와 누워 있고 밥을 먹고 있으면 그 앞에서 조용히 앉아 있고, 때로는 꼬리를 흔들며 다가와 발을 핥고 가곤 했다.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모습이 귀여운 구석도 있어 넷째 날이 되는 날 개들을 한번 만져보기로 했다. 주인이 바로 옆에 있는 안전한 환경에서. 

심호흡을 하고 두려움을 마주했다. 그리고 두려움을 만져보았다.

막상 만져보니 별거 아니었다. 으르렁대지도 않고 물려하지도 않고 오히려 꼬리를 흔들며 나의 손길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늘 경험을 통해 두려움에 대해 생각해본다.

개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

두려움은 막연하다. 실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 있었던 경험이, 상처가 우리 내면 깊은 구석에 숨은 채로 왜곡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실체를 모르는 경우 두려움은 증폭된다. 각가지 경험과 이유를 들이대며 두려움의 크기를 키우기 때문이다.

이 경우 두려움을 마주하는 것보다 회피하는 일이 더 쉬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두려움을 마주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두려움의 실체를 파악하고 마주할 용기를 갖고, 과거의 두려움은 현재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자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나의 내면과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바뀌었으므로, 지금의 나는 과거의 두려움을 반복하지 않을 용기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

두려움의 실체가 사실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과거의 어떤 경험이 현재의 일에 말도 안 되는 관련성을 부여했을지도 모른다. 그 둘을 잘라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곳에서 네 마리의 두려움을 마주했다. 두려움을 만져보았다. 어린 시절의 내가 느꼈던 크기는 아니었다. 

그러자 내 안에 있는 두려움의 크기가 조금은 줄어들었다.

홈스테이 네 마리 강아지 중 대장으로 추정되는, 내가 가장 무서워하던 개였다.
찡그린 듯한 이마 주름이 귀여워 '찡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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