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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 Dec 29. 2018

하노이에서는 1일 1 분짜와 1 쌀국수는 필수

베트남 한 달 살기 Day 2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그동안의 피로를 풀기 위해 원 없이 자고 싶었는데...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베트남에 와서 그런지 나도 갑자기 아침형 인간이 된 느낌이다. (나에게는 여행지에서 9시에 일어나는 일이 '아침형 인간'의 말도 안 되는 정의이다.)

아침에 눈을 뜨니 현관 창문 사이로 햇빛이 은은하게 들어온다. 오토바이 경적 소리와 함께. 


스트레칭을 하고 '아침 루틴(Morning Routine)'을 시작했다. '아침 루틴'이란 아침에 해야 할 일을 뜻하는 나와의 약속이다. 

일어나자마자 스트레칭을 한다. 물을 한잔 마신다. 명상 앱을 켜고 15분간 명상을 한다. 차를 끓인다. 평소에는 녹차, 피곤한 날에는 홍차. 특별한 이유는 없다. 아마 홍차의 불그스름한 색이 카페인이 더 많아 보여서인 것 같기도 하다. 뜨거운 차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아침 일기를 쓴다. 

감사하는 것 3가지,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 3가지, 오늘의 다짐 3가지. 

팀 페리스가 쓴 <타이탄의 도구>라는 책에서 보고 따라한 것이다. 

이 의식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아침을 차려 먹고 출근하면 기분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안심이 된다. 성취감을 느낀다.


하지만 지난 몇 개월 동안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간헐적으로 하는 시늉만 냈다. 이번 연도에 시작해서 7월까지는 잘 해왔다. 이 정도면 습관이 됐겠지, 하며 방심한 내 잘못이 크다. 그래서 여행하는 동안은 이 아침 루틴을 빼먹지 않고 하자는 다짐을 하고 이 곳에 왔다. 어차피 한 달 휴가 내내 남는 게 시간일 테니. 


아침 루틴을 마쳤다. 샤워를 하고 바로 길을 나섰다. 기분이 좋다.

길을 나서니 오토바이 경적소리에, 오토바이가 도보를 점령한 길에 있으니 정신이 없다.

작년에 2주를 이곳에서 보낸 터라 익숙할 줄 알았는데 그새 감을 잃었나 보다.


배가 너무 고프다. 무엇을 먹을까, 잠시 고민해본다. 메뉴는 정해져 있다.

분짜. 

다른 곳에 간다면 몰라도 하노이에서 분짜는 꼭 먹어줘야 한다. 

분짜는 대개 피시 소스, 설탕, 식초로 만든 새콤달콤한 국물에 분이라는 쌀국수를 담갔다가 꺼내 먹는다. 우리나라 돼지갈비와 비슷한 고기와 고기완자, 그리고 각종 야채를 고명으로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처음 맛볼 때는 고기의 숯불 향에 놀라게 된다. 

작년에 이곳에 왔을 때 그 맛에 반해 매일 먹었던 음식이다. 심지어 쿠킹클래스까지 등록해 분짜 만드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첫날이니 만큼 뭘 먹어도 만족할 테니, 가장 만만한 '분짜닥킴 (Bun Cha Dac Kim)'을 가기로 한다. 처음부터 최고의 음식을 먹으면 다른 건 쉽게 만족을 못하기 때문이다.

분짜닥킴은 하노이 분짜를 전문으로 하는 노포이다.  무려 1966년에 개업했다고 한다.

자리를 잡고 분짜와 넴을 시켰다. 같이 나온 소스에 마늘 많이, 홍고추 약간 넣어 맛을 더한다. 

이 집 소스는 단 편이다. 소스에 설탕을 많이 넣었나 보다. 

넴은 어디서나 먹는 그저 그런 맛이다. 바삭함이 좀 부족하다. 

분짜 소스에 면을 넣고 야채를 듬뿍 넣은 후 고기와 함께 먹는다. 

오랜만에 먹는 현지 분짜이다 보니 참 맛있다. 정신없이 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이제 어디로 향할지 잠시 고민해본다. 이번 여행에서는 세세한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한번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면 지금 이 시간을 즐기기보다는 다음 그 시간을 위해 과도하게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건 꼭 먹어야 해, 거긴 꼭 가야 해, 라는 식으로 나 자신을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기 전에 갈 지역과 숙소만 정하고 이곳에 왔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그때그때 구글 맵에 저장하면 되니까. 


주위를 둘러본다. 그때 바로 앞에 발코니 카페가 보인다.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바로 들어갔다. 그리고 카페 쓰어다를 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앞이 뻥 뚫려있어 시원하고, 자리도 편하다. 


잠시 멍을 때려볼까? 

좋다... 이제야 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여유가 생긴다. 

지난 1년 간의 다이어리를 펼치고 이번 연도에 일어난 일을 정리한다. 열심히 산 것 같기도 하고, 게으르게 산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에는 코코넛 커피를 시킨다. 그리고 책을 꺼내 읽는다.

얼마나 내가 바라던 일상인가. 이따금씩 차와 오토바이의 경적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긴 하지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목이 말라서 맥주를 시켰다. 마침 해피아워가 시작되는 4시이다.

멍을 때리다,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맥주도 다 비우고 해가 지고 있었다. 

이제 저녁 먹을 시간.


무엇을 먹을지 고민해본다. 사실 이미 메뉴는 정했다. 어디로 갈지가 고민이다. 

어차피 숙소로 돌아가야 하니 그 근방으로 가기로 한다. 

포 틴(Pho Thin). 

하노이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쌀국수 집이다. 내 입맛에 잘 맞아서 작년에도 5번 이상 갔었다. 

주관적이지만 감히 하노이 최고의 쌀국수 집이라 말하고 싶은 곳이다.

고기로 육수를 내는 다른 쌀국수 집과 달리, 소뼈로 국물을 우려내 그 맛이 매우 깊고 맛있는 소머리 국밥을 먹는 느낌이 난다. 

익숙한 길을 걸어 그곳에 도착한다. 'Pho Thin'이라고 쓰인 철제 스탠딩 간판이 눈에 띄는 곳이다.

벌써 군침이 돈다. 서둘러 주문을 했다. 물론 반숙 계란과 국물에 적셔 먹는 빵은 꼭 먹어줘야 한다.

1분이나 지났을까? 바로 쌀국수가 나온다. 

먼저 있는 그대로 국물과 면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 국물에 라임을 짠다. 남은 라임은 젓가락을 닦는데 쓴다.

반 정도 먹고, 이 집 특제 칠리소스를 넣고 나머지 쌀국수를 끝내버렸다. 

이 집은 고기를 볶아서 고명을 내놓고 쪽파도 엄청 많이 넣어준다. 국물로도 족한데 이러니 첫날에 이 곳을 찾지 않을 수 없다.


진짜 진짜 잘 먹었습니다!


역시 하노이에 오면 매일 분짜와 쌀국수는 먹어줘야 한다. 

질리면 디저트로라도 분짜와 쌀국수를 먹고 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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