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송금 서비스'에서 '해외 선물하기 서비스'로 피벗 하기까지
스타트업에게 피벗*은 단순한 사업 아이템의 변경을 넘어 생존과 성장을 위한 핵심적인 결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피벗을 통해 성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막상 피벗을 처음 하는 창업자라면 “피벗은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피벗(Pivot): 피봇 또는 피보팅이라고도 함. 농구의 기술 중 한 발을 축발로 두고 다른 발은 원형을 그리며 수비수를 따돌리는 용어이지만 비즈니스에서는 사업의 구조나 방향성을 전환하는 것을 의미함.
빠르게 실행하고 실패하는 것이 스타트업이라고 하죠. 그러나 저는 스타트업의 시간과 자원은 더욱더 한정적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실패 확률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피벗은 비즈니스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인 만큼 잘못했을 경우 아래와 같은 위험을 증가시키게 됩니다.
잘못된 피벗은 시간, 자본, 인적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고 경쟁자에 의해 중요한 시장 기회를 놓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빈번하거나 잘못된 피벗은 팀 내부의 갈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비전과 사업 방향의 불일치는 팀의 결속력과 실행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올바르지 않은 피벗 결정은 미래의 자금 조달 기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일관성 없고 명확하지 않은 팀의 방향성에 회의적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여러 서비스를 출시하고 실패했습니다. 그중에서 피벗을 성공적으로 했던 사례도 있어 이 과정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저희 팀의 피벗 사례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창업자들에게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
2018년도, 저희 팀은 한국-미국 사이에 송금이 가능한 SodaTransfer(소다트랜스퍼)라는 해외송금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외환거래법이 개정되어 해외송금업이 새로운 시장으로 떠올랐고 30개가 넘는 기업들이 거의 동시에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시작부터 치열한 경쟁을 예고한 것이었죠. 여기에 더해 해외송금업은 다수의 규제와 높은 진입 장벽을 요구하는 금융업의 일종이었기 때문에 초기 스타트업이 이를 갖추기 위해 비용이 많이 드는 사업이었습니다. 저희 팀이 자금 조달이나 라이선스 준비로 허덕이는 사이 업력과 자본력을 앞세워 후발 주자였음에도 먼저 치고 나가는 업체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팀원 중 한 명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가 해외 송금을 혁신한 것처럼 해외로 선물 주고받는 것을 편하게 만들 수 없나요?” 질문을 듣고 잠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졌습니다. 좋은 아이디어였고 해봄직 했습니다. 또 우리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고요. 이때부터 저는 팀과 함께 ‘글로벌 선물하기 서비스’라는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피벗 또는 새로운 서비스를 시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팀은 이 질문을 보다 세분화하여 아래와 같은 논의를 이어갔습니다.
저와 공동창업자들은 창업을 함께 하며 두 가지 사업 키워드를 늘 가져가기로 약속했었는데, 기술을 활용해 스케일업(Scalable)할 수 있는 사업이어야 하고 국내에 국한되지 않고 해외에서도 가능한(International) 사업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해외 선물하기 서비스는 이 두 가지 키워드에 모두 부합하는 아이템으로 보였습니다.
해외 송금 사업을 하면서 송금자(Sender)와 수취인(Recipient)이 서로 다른 국가에 있는 크로스보더(Cross-border) 서비스를 해왔기 때문에 해외 파트너와의 제휴, 해외 고객 유치 등 노하우를 어느 정도 축적한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한다면 다른 어떤 팀보다 잘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해외 송금에서도 소액 송금은 선물의 목적성을 띄고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수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사업이므로 서비스를 만들어 시장 크기를 탐색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장조사를 해봤을 때 특별한 경쟁자가 보이지 않았고, 국가를 여러 곳으로 확장한다면 해외 근로자, 유학생,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그룹으로 규모를 키워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서비스 출시를 결정했습니다.
SodaGift(소다기프트) 서비스를 기획부터 MVP를 출시하기까지 한 달 정도 걸렸습니다. 기존 서비스 운영에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13명 정도 되는 팀원 중 세 명만 소다기프트 서비스의 초기 빌딩을 담당했습니다. 6개월 간 베타서비스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정량적인 지표와 고객 인터뷰를 통한 정성적인 반응을 보면서 점점 더 이 서비스가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벗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피벗을 했을 때 기존 사업보다 더 성공적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장벽은 바로 'sunken cost', 즉 이미 기존 사업에 투입한 비용과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었습니다. 수년간 해외 송금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쏟아부은 노력과 자원을 포기하는 것 역시 도전이었습니다.
완전한 피벗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잠재 투자자들의 피드백이었습니다. "서비스 두 개를 동시에 운영하는 것이 오히려 방향성을 흐리게 하여 투자하기 어렵다"는 코멘트를 반복적으로 듣게 되었고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수개월 간의 치열한 논의 끝에 2020년 12월, 저희 팀은 해외 송금 서비스에서 해외 선물하기 서비스로 완전한 피벗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스타트업의 여정은 불확실성의 연속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잘 나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 갑자기 방향을 바꿔야 할 상황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결정이 단지 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 성찰과 시장분석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희 팀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성공적인 피벗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경쟁이 치열했던 시장의 팔로워(follower) 위치에서 우리가 개척해 낸 시장의 리더(leader)로 위치가 바뀌었고, 피벗 후 8개월 만에 57억 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이루어냈기 때문입니다.
피벗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입니다. 피벗 후에도 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은 다른 글에서 또 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