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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쓸모

by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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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콩과 진진을 만나면 우리 이야기는 오색의 샛길을 탄다. 생계의 고단함, 일상의 지루함, 케이팝의 황홀함과 우리를 웃게 하는 콘텐츠 list, 간직해오던 나만의 식당, 떠나고 싶은 여행지 등. 하나의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다가도 금방 방향을 틀어버린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당도한 길은 정답이 없고 그래서 우리를 예상치 못한 웃음과 마주하게 한다. 자주 갖지 못하는 그 시간을 보내고 오는 날은 어쩐지 든든해진다. 길을 잃어도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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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각자의 희한한 취향 같은 것들이 도마 위에 오른다. 우리는 그것을 잘라서 회쳐 먹는 대신 신기한 눈길로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한마디씩 거든다. 애정어린 핀잔이 핑퐁 핑퐁 오다가 이내 서로의 바다 위로 다시 휙 던지는 거다. 각자의 일상이 그것들로 무사하고 재밌게 유영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며칠 전 어느 날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우리는 또 샛길로 빠졌다. 새로운 주제 하나가 던져진다. “그래서 요즘 유튜브 뭐 보는데?” 내가 수줍게 물꼬를 튼다. “나...사실...(순간 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진다) 내성 발톱 고치는 의사 브이로그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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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학. 분주한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를 가르고 서콩과 진진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참 희한하다는 눈빛이다. 내성 발톱 고치는 브이로그의 효능을 모르는 이들이라니. 보는 것만으로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걸. 쾌감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 넘치는 시청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 부부, 분명 집 가서 내성발톱 브이로그를 찾아볼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밥 먹다가 할 얘긴 아닌 거 같다. 서둘러 스테이크 한 조각을 입에 물고 화제를 전환시켰다.


또 다른 색의 샛길이 시작된다. 진진이 주부 생활의 고단함에 관해 이야기한다. 치워도 티가 나지 않는 게 집안일이라며 한 때의 고민에 대해 털어놨다. 집안일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경제적인 이득이 생기는 게 아니니 성취감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그래서 한동안은 그게 참 울적했다고 말이다. 엄마가 선유도에 나가 살면서 본가에 혼자 지내고 있는 나도 고개를 끄덕거린다. 쌓인 빨래와 설거지를 할 때마다 생색 한번 내지 않던 엄마에게 죄책감을 느꼈더랬지. 그런 생각을 하며 파스타를 돌돌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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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진이 콜라를 한 모금 들이켠다.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선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지금은 하지 않는 고민이라고 했다. 과거에 그랬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솔루션을 제시해 주고만 싶다. 해결책을 부탁하지도 않은 진진에게 말했다. 그럼 어지럽혔다가 무진장 더러워졌을 때 치워보라고. 그럼 성취감이 느껴질 거라고. 헛웃음을 짓던 진진과 서콩을 따라 나도 마주 웃었다. 우리가 서로의 쓸모를 존재하는 것 외에서 찾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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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만 나도 변덕이지. 하루는 나의 존재 자체로 쓸모 있다 여겨지면서도 또 어떤 날엔 쓸모없는 일을 하고 있단 생각에 힘껏 괴로워진다. 하루 삼시세끼를 챙겨 먹는 것도, 바쁜 와중에 틈틈이 운동을 하는 것도, 마음이 마르지 않게 노래를 듣고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는 것도. 이 모든 것들이 체력을 쏟는 일인데 이것만 하기에도 벅찬 하루하루가 있는데 또 나의 효능을 하나씩 점치며 산다는 건 여간 고루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그래서 일을 망친 것 같은 날이나 말실수를 하고 온 날엔 부러 다짐한다. 나의 쓸모는 그곳에 없다. 그곳에서 찾지 말자. 쭉 힘을 빼고 걷다가도 발끝에 힘을 준다. 마음에 질척거리는 진흙탕이 있다면 장화 신은 발로 뚜벅 걸어가 온 힘을 다해 첨벙거리겠다. 온통 튀어버린 흙탕물에 웃고 말겠다. 집에 가면 더러운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샤워를 하겠다. 바디로션을 바른 뒤엔 가장 편안한 잠옷을 입고 잠자리에 눕겠다. 그런 뒤 내 하루의 효능은 이걸로 충분했다고 심장 위를 토닥거리겠다. 나의 쓸모에 대한 오랜 날의 다짐을 꺼내들고 분주히 쓰다듬는다. 그러므로 조금은 괜찮은 하루가 된다는 걸 아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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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다다 (인스타그램 @ddidawn)

⊙ 그림 : 서콩 (인스타그램 @se0c0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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