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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Jan 26. 2018

남겨진 사람의 안부

필사를 했습니다. 밝고 파란 펜을 꺼내들고, 오늘의 퇴근길 마음을 쓰다듬었던 문장을 그대로 적어냈습니다. 팔이 조금 아팠고, 그 아픈 감각을 부여잡고 지난 12월 한구석을 떠올렸습니다. 길게 늘어선 침묵의 줄에, 오래 버티고 섰던 무수의 사람들을 그려봤습니다. 다정한 문장은 그랬습니다. 정리되지 못한 마음을 나무라지 않고, 그렇게 두어도 된다고, 가만가만 다독였습니다. 나는 그 문장이 가엽고 아름다워, 여러번 쓰다듬길 반복했습니다. 


“한동안 귀 뒤에 연필을 꽂아두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때, 노래는 얼마나 긴지, 밤은 얼마나 푸른지, 그이는 지금쯤 얼마나 포근한 이불 속에 누워 있을까, 여기 남은 사람이 4분 37초의 노래를 듣는 일이 여기 남지 않은 사람의 4분의 37초를 대신 살아주는 일이 되는 건 아닐까, 감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4분 37초 동안 우리는 젤리를 씹으면서, 학교와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거리면서 노래를 들을 수 있게지요. 그때 그런 우리의 일상은 아마도 그이의 자랑이 될 겁니다. '남겨지는 일'은 그런 걸 믿는 경혐입니다. 나와 네가 아직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요.”

 - 김현 시인, 1월의 詩처방전 ‘4분 37초 동안 우리는 가만히’ 中


이 밤, 혼자인 사람들을 생각했습니다. 지난 날 홍성에서 아주 하얀 눈자락 위에 흔적을 남기던 발자국을 그려봤습니다. 한자욱의 발걸음마다, 외로움을 떠올렸고, 그건 나의 외로움만은 아니었습니다. 수북히 쌓인 꽃다발을 앞에 두고, 울음짓던 등과 그 눈물을 닦아내던 또 다른 이의 손. 그리고 당신이 남겨둔 외로움, 그 모두를 아주 기꺼이 끌어안아 위로의 한조각이라도 당신에게 전해지길 나는 아주 간절히 바랬던 것도 같습니다. 한 시인의 문장처럼, 당신은 지금 아주 푹신하고 따듯한 이불을 덮고, 낮잠이라도 자고 있는 걸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잠에 조금 인색했던 당신이, 그곳에선 기꺼이, 잠에게 당신의 시간을 온전히 뺏겨있길 바래봅니다.   


아주 추운 겨울을 지나고 있습니다. 춥고 추워서, 그 시린 시간을 끄집어내기도 하겠지요. 그치만요. 이 겨울을 견딜 때마다 문득문득 당신 생각을 할 나를 압니다. 그리고 이 세계를 사는, 또 다른 누군가도 당신의 목소리를 떠올리고, 당신의 손짓을 그려보고, 당신의 노래에 맞춰 발짓을, 까닥거리기도 할 겁니다. 그건 저에게도 아주 큰 위로겠지요. 


아주 깊은 잠을 자고 나면, 개운하게 기지개도 펴주세요. 그때 당신의 이불자락 위로, 따뜻하고 긴 햇볕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씩씩하게 지내주세요. 나의 이기적인 마음이, 당신의 마음에 조금만 빚지길, 바라면서도 오늘 기도를 멈추진 않을 겁니다. 나는 오늘 아주 깊은 잠에 잘 것이고, 내일이면 일어나 기지개도 꼼꼼이 펴보겠습니다. 당신 아침과 낮과, 그리고 밤이, 부디 평안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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