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인터넷을 하다가도 곧 페이지가 멈췄다. 빠르기만 했던 한국에서의 삶과는 모든 게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내가 가장 많이 마주한 표시는, 동그란 기호가 점선의 형태로 만들어져 제자리에서 데굴데굴 굴려지는 그 표식. 번역하자면,
‘로딩 중입니다-’
취직하면서 가난한 데이터-의 삶을 청산했다.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 그 말은, 와이파이가 되지 않으면 꺼버려도 된다는 소리다. 데이터를 흥청망청 쓰면서 종일을 보낼 수 있단 뜻이다. 나는 무제한 데이터의 삶을 살게 된 인간이었으니까. 한 달에 34기가가 소비되었다는 알림을 받지만, 나에게 초과되는 금액은 없었으니까. 심플하게 와이파이만 끄면 또다시 초고속 인터넷의 세계로 빠질 수 있었으니까.
데이터도, 와이파이도 모든 게 느린 이곳에서의 삶에 맞춰, 나의 대처요령도 방법을 달리했다. 가만히 와이파이를 다시 껐다 켠다. 조용히 핸드폰을 내려놓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하얀 벽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시도해본다. 안될 시, 반복한다.
그럼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내려놓고 설거지를 하거나, 넷플릭스를 보거나 책을 본다. 대안이 없다. 나에겐 데이터도, 데이터를 늘릴만한 돈도 없기 때문이다. 대안이 없으면 포기하게 된다.
유일한 차선으로 나를 대피하게 만든다.
지난 2년간 자주 머리가 아팠다. 뒷골이 땅긴다는 말의 뜻을 체험해본 시간이기도 했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날에 내가 한 일이라곤 일에 대해 골몰하는 것뿐이었다. 머리에 열이 많이 오른 탓에 빠진 머리가 꽤 됐다. 망쳐져 버린 일과, 곧 망쳐질 일 사이, 그 사이에서 난 언제나 로딩 중이었지만, 단 한 번도 다른 대안으로 나를 대피시켜본 일은 없었다. 로딩 중인 이 시간이 어서 끝나길. 내 마음을 쥐어짜는 긴장과 불안도 동시에 사그라들길. 그 방법은 일이 해결되는 것뿐이었다. 로딩 중 표식이 사라지는 것뿐이었다.
나는 내가 망가지는 줄도 몰랐다.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산다고? 이렇게 아등바등. 내가 아닌 나로 산다고?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취준생에서 프리랜서 라디오 작가, 실업자로 나의 수식어가 바뀐 지금, 깨닫는다. 나를 나로 살게 하기 위해선 나의 일부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겠구나. 앞으로도 많겠구나. 하지만 나는 그런 삶을 바래본 기억도, 바래볼 계획도 없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동그랗고, 선이 촘촘한 그 표식은 동글동글 제 몸을 굴린다. 그럼 나는 어느 것에도 관심을 빼앗기지 않고 더 타자를 빠르게 칠 수 있다. 로딩이 느려도 아무도 새로고침을 누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날 나를 망친 최악의 지휘자는 나였다. 새로고침을 무수히 눌러버린 나의 손가락은, 그 덕분에 지문을 여러 번 갈아끼웠다. 손가락에 촘촘히 달라붙은 거스름이 쿡쿡, 마음을 찌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