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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밥 아니고 보리차 밥

by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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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한답시고 부엌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딸에게 엄마는 요리 금지령을 내렸다. 고분고분, 처분을 받아들인 딸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요리만을 익혀서 해 먹곤 했다. 케첩이 들어간 ‘스팸 김치볶음밥’과 라면, 그리고 밥 짓기. 매번 물을 못 맞춰 촉촉하다 못해 축축한 밥이 되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짓는 쌀밥이 나는 참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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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맛있는 건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더니 쌀밥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혈당 스파이크를 일으킨다는 말에, 그간 ‘바닐라 라테’를 끊은 나의 노력을 생각해서라도, 잡곡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곡이 어디 있나 찾아보던 중,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부엌 베란다에 잡곡 담은 통 있으니까 쌀이랑 섞어서 해 먹어. 쌀밥만 먹지 말고. 알았지?"


베란다 선반 위를 봤더니 마침 알갱이가 담긴 투명한 통이 보였다.


"흠, 저게 잡곡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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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어서 엄마에게 물어봤더니 답이 없다. 맞겠지 뭐. 밥을 안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딸, 그거 보리차 끓일 때 넣는 거잖아."


웃으며 말하던 엄마는 답이 없는 딸에게서 위험을 감지했다. 예상의 예상을 뛰어넘는 딸의 기이한 행동을 35년간 목격한 엄마는 점차 목소리가 굳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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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설마 벌써 밥 한 건 아니지?"


‘-’....!

⚆_⚆...!


눈알만 도륵 굴리다 결국 실토했다.


“으응. 이미 쾌속 취사로 밥하고 있었는데..? 곧 증기 배출을 시작할 거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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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발언에 전화기 건너편에서 잔소리가 폭탄으로 날아들었다. “너느은!!!”으로 시작한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날, 나는 엄마의 잔소리를 BGM 삼아 난생처음 '보리차 밥'(보리밥 아니다)이라는 걸 먹었다. 밥이 이렇게 써도 되는 건가? 아니다. 고소한 거 같기도 하고? 덜렁이의 자기합리화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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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말했더니 이번엔 어이가 없는지 웃기 시작했다. 잔소리로 바뀔 딸이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아서다.

한참을 웃던 엄마는 이젠 놀리기 시작했다.


"너 그거 다 먹으면 배에서 보리 뿔어버린다?"


처음엔 웃어넘긴 엄마의 말이 그날 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틈만 나면 배를 내려다봤다. 음. 배가 조금 나와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슬쩍 두드려본 배에서는 퉁퉁퉁- 평소와는 다른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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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다다 (인스타그램 @ddidawn)

⊙ 그림 : 서콩 (인스타그램 @se0c0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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