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동안, 열 번은 넘게 부산에 사는 언니 집에 갔다. 그럼에도 부산의 명물인 ‘이재모 피자’는 한 번도 먹질 못했다. 평일에도 인기가 너무 많아서 항상 웨이팅이 길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 설날 연휴, 드디어 먹을 기회가 생겼다.
“오늘 저녁 뭐 먹지?”
누군가 던진 화두에 온 가족이 고민에 빠졌다. 엄마가 좋아하는 양곱창은 조카 때문에 먹으러 갈 수 없고, 회도 너무 많이 먹었다. 흠.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 사이, 농담 반 진담 반의 마음으로 툭 메뉴를 던졌다.
“이재모 피자 어때?”
언제 기다렸다가 먹냐며 한마디씩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다.
“그럴까?”
“줄 긴데 괜찮겠어?”
“한 번 기다려서 먹어보지 뭐.”
그렇게 모두의 만장일치로 우린 무모한 웨이팅의 굴레에 들어서게 된다. 무려 입장 번호는…. 두둥!
[대기 시간 180분, 웨이팅 175팀]
그때 그냥 포기하고 집에 갔어야 했는데.....라고 지금의 다다는 생각한다. 하지만 어쩐지 호기롭던 그날의 다다는.
“3시간? 뭐 금방 가겠지. 우리 어묵이랑…아! 시장에서 파는 오징어무침! 그거 먹고 있자. 저번에 엄청 맛있게 먹었잖아.”
미래는 내다보지 못하고 그저 신나버리고 만 것이다. 오랜만에 먹는, 국제시장 포장마차 표 오징어무침에 정신을 못 차렸다. 온 가족이 대충 허기만 채우고 뒤로 빠진 사이, 나만 양념까지 싹싹 긁어 먹었다. 머쓱함에 헤헤 웃으며 변명하듯 말했다. “어엉. 아직 2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니까, 배 금방 꺼지겠지. 헤헷”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우리 차례까지는 아직 60팀이나 더 남은 시각. 우린 점점 말을 잃어갔다.
“이게... 과연 옳은 일일까?”
“왜....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한 거지 우리?”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잠깐 몸을 녹이러 들어간 카페에서, 조카의 찡얼거림이 시작됐다.
“빈아~ 알겠어. 조금만 참자. 응?”
우아앙 울었다가 안겼다가, 뛰었다가. 가만히 있질 못하는 조카에 언니는 한숨을, 형부는 퀭한 눈을 내비쳤다. 그들의 지친 얼굴이 온 마음을 다해 말하고 있었다. “그냥...집에 갈...걸...걸...걸...”
하지만 시간은 흐르는 법. 게다가 우린 더 이상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 온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기다렸는데!! 이 추위에!!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저얼대!! 집에 돌아갈 순 없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기다린 지 3시간 5분째. 마침내 우리 차례가 됐다. 하. 드디어 먹는구나. 지친 몸을 이끌고 애써 웃으며 들어갔더니, 점원이 하는 말이란.
“죄송하지만 피자 주문이 밀려서요. 주문하고 30분 정도 더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세요?”
허허허. 우린 실성한 듯 웃었다. 허허허. 어쩌겠어요. 기다려야지요. 허허허. 추위에 지친 몸이 아직 떨려오는 거 같은 착각 속에, 길고 긴 30분이 흘렀다. 저 멀리, 영롱한 피자의 형태가 보인다. 치즈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피자를 보자, 입맛이 확 돌았다.
그러고는 한입 베어 무는데 입에서 살살 녹는다. 아, 너무 맛있다. 길게 늘어나는 치즈에 온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치즈를 이불 삼아 폭 덮고 있는 기분. 그래, 이걸 먹기 위해 지난한 웨이팅의 순간을 지나온 거야.
퀭한 눈의 형부도, 한숨이 짙던 언니도, 3시간 사이 핼쑥해진 엄마도, 모두가 조금 전의 과거는 잊고 행복해 보였다. 실성하듯 웃던 허허허 대신, 호호호 하하하 파하하. 경쾌한 웃음 소리가 울려 퍼지던 이재모 피자집에서, 다다는 5시간 뒤 자신에게 닥칠 미래 따윈 한 톨도 예상하지 못했다.
- 하편에서 이어집니다.
⊙ 글 : 다다 (인스타그램 @ddidawn)
⊙ 그림 : 서콩 (인스타그램 @se0c0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