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밤의 X 소동 上> 편에서 이어집니다.
※ 보는 사람에 따라 비위가 상할 수 있으니 유의하세요!
오랜 기다림 끝에 ‘이재모 피자’ 시식을 마친 뒤 가게를 나섰다. 넉넉히 피자를 시켜주던 형부는 남은 피자를 포장해 손에 쥐여줬다. 먼저 서울에 가느라 외로울 처제에게 아량을 베푼 것이다.
그렇게 한 손엔 피자를 어깨엔 묵직한 배낭을 메고 KTX를 타러 가는 길. 영롱히 불이 켜진 편의점이 눈에 들어오자 홀린 듯 들어갔다. 맥반석 달걀 두 개와 음료를 산 뒤 기차에 탔다. 분명 피자를 두 조각 넘게 먹었는데 왜 배는 차지 않는 걸까. 그런 의문을 품고 달걀 두 개를 한입에 우걱우걱 먹었다. 그리고 한숨 푹 자고 일어났는데 기분이 쎄하다. 아, 체한 거 같은데.
아닐 거야. 바람 쐬면 괜찮겠지. 마인드 컨트롤 하며 역에 도착해 내렸는데 큰일 났다. 찬 바람에도 속이 진정될 생각을 안 한다. 안돼. 우선 집에 가자. 참아 다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집에 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신호는 죄다 걸리고 방지턱을 지날 때마다 속은 울렁울렁울렁. “쫌만 참자. 쪼옴만...! 제발요…!” 대상도 모를 이에게 기도를 하다가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을 때쯤, 목소리를 쥐어 짜내 말했다.
“기사님…(시름시름) 저, 그냥 여..기 정류장에서 내릴 게요…..”
본능이 시킨 일이었다. 택시에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으면 당장 내리라고.
결국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 내린 뒤 택시 문을 열고 나와 문을 닫았다. 휑- 하고 떠나는 택시 뒤꽁무니가 보인다. 아휴. 얼른 집에 가야지. 그렇게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다섯 걸음 정도 뗐을까.
“우웨웨엑”
마치 좀비 영화 속 괴성과 함께 막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그것은…. 나의 리틀 vomit. 하아아. 이거 꿈인가?
시간은 밤 12시 30분. 다행히 주변엔 아무도 없다. 정류장 옆 흙바닥에 한 바가지 실례를 하고는, 쭐쭐 울면서 집에 왔다. 정말이지 말이 되는 일인가...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이. 설날 연휴에 것두 혼자. 너무 처량하도다.
시무룩한 마음으로 겨우 몸을 씻고 나왔는데 민폐 끼치는 걸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싫어하는 나는 순간 뭔가 중요한 걸 정류장 흙바닥에 두고 온 듯, 마음이 걸리기 시작한다. 그 중요한 무언가는, 아마도……나의 vomit이겠지. 그것을 그대로 두고 오다니. 그때부터 고뇌가 시작됐다.
“하. 어떡하지? 치우고 올까? 근데 나 아직 아픈데. 아니야. 그래도 그거 누가 보면, 그 사람은 무슨 죄야. 흙바닥은 괜찮을까? 미안하잖아. 어떡해. 치우고 와? 말아? 치우고 와? 말아?”
제발, 저에게도 모른척할 뻔뻔함을 주시옵소서. 몇 번을 속으로 빌다가 결국, 집을 나섰다. 샤워까지 했는데 또 밖에 나가다니 스스로가 너무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 손엔 쓰레기봉투, 한 손엔 휴지 한 롤을 챙겨 사건의 현장으로 향했다.
오늘의 토사물 처리반 : 다다
사건 현장 : 의외로 생각한 것만큼 끔찍하진 않음.
말끔히 치우고 돌아서는데, 이리 개운할 수가! 근데도 마음 한구석은 스스로가 한심해지는 거다. 이 달밤에 나 뭐하냐. 나오는 헛웃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하였으나. 아직 다다에게는 긴긴밤이 남아있었다.
한 번의 ‘우웨에엑’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그날 새벽 난 도합 10번의 ‘우웨에에엑’을 하게 된다. 병명은 노로바이러스 혹은 장염. 겨우 혼자 응급실에 가서는 수액을 맞고 누웠다. 깜빡 잠에 들었더니 2시간이 지나 있었다. 간호사가 말했다.
“너무 잘 주무셔서 차마 못 깨웠어요~”
드르렁 쿨쿨 소리의 주인이 나였다니. 민망함에 허허 웃으며, 응급실에서 나와 수납을 마쳤다. 어쩐지 허무하다. 내 돈과 시간이 이렇게 날아가다니. 나는 장염에 걸리기 위해 3시간을 밖에서 떨었던가. 걸어서 5분도 되지 않는 집으로 걸어가는 길. 찬 새벽 공기가 콧속을 깊숙이 뚫고 들어왔다. 머리 위에, 희미한 말풍선 하나가 떠오른다. “아, 연휴 참 길고도 길다!”
⊙ 글 : 다다 (인스타그램 @ddidawn)
⊙ 그림 : 서콩 (인스타그램 @se0c0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