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당할 만한 사람은 없다. 무시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언젠가부터 내 알고리즘에 이런 게 뜬다. 내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알려주는 영상들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스스로를 막 대할 때도 있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 때도 있지. 나보다 더 소중한 게 있거나 스스로를 챙기기 어려운 환경일 때, 등등. 우리의 삶은 같지 않다. 저 사람이 나와 비슷해 보여도 다르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상황과 맥락이 있다.
이런 영상의 문제는 사람을 기업처럼 대한다는 것이다. 마치 경영에 실패한 기업에게 솔루션을 제안하듯, 누군가에게 무시받지 않을 해결책을 제안한다. 무시당하는 이유를 개인에게 돌린다.
각자가 처한 삶은 다양하고 복잡 미묘하다. 누구에게 가치 높이기는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두에게 해당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끊임없이 무시와 차별을 경험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치 높이기’는 이렇게 말한다.
“니 행동이 구려서 니가 무시받는 게 아닐까?”
이 말은 틀렸다. 이 말은 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우리의 습관을 합리화할 뿐이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사람들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의 삶은 각기 다르다. 그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잊으면 안 된다. 누군가 당신을 함부로 대할 때, 원인은 당신의 낮은 자존감이 아니다. 당신이 이미지 관리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당신의 가치가 낮아서가 아니다. 무시받을 행동을 해서가 아니다. 문제는 당신을 함부로 대한 사람과 그 사람을 둘러싼 사회에 있다. 무시당할 이유를 제공하는 사람은 없다. 무시하는 사람과 무시하는 문화가 있을 뿐이다. 애초에 누군가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이유라는 건 없다. 그런 이유가 존재한다면 수긍할 게 아니라 없애거나 바꿔야 한다.
우린 서툴고 엉성하다. 그래왔고 그래야 한다.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가야 한다. 스스로를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면서 가야 한다. 쓸모 있다가 쓸모없다가 왔다 갔다 해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전략가'가 될 필요 없다. 그러지 않아도 되고, 그래서는 안된다. 가치를 높이고 이미지관리를 하는 건, 기업에서 하는 거다. 우린 브랜드가 아니라 사람이다. 다양한 환경에서 삶을 살아가는 생물들이다. 가치를 높이지 않아도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