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수라>를 보고
'새만금 사업으로 수많은 생명이 죽거나 터전을 잃었다'
충격적임에도 어딘가 익숙한 문장이다. 국가발전에 의해 희생된 자들을 자주 목격해서일까. 어쩌면 생명을 ‘이용가능한 것’으로 바라보는 국가의 시선에 익숙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영화는 소중하다. <수라>는 ‘수많은 생명이 죽고, 터전을 잃었다’는 문장에 현미경을 갖다 댔다. 어떤 생명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어떤 사람이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자세히 기록해 냈다. 그 기록들은 뜨겁고 낯설다. 국가의 유해한 관습에 익숙해진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수라>를 추천한다.
[갯벌이 허락한 삶]
바닷물이 자리를 비운 순간, 갯벌은 수많은 생명의 삶을 허락했다. 바다에는 하루 두 번 물이 들어온다. 하루도 빠짐없이 들어오고 나가고, 또 들어오기를 반복한다. 바닷물이 빠지면 그곳의 생명들은 진흙 속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서 바닷물을 기다린다. 장기간 비행을 마친 새들도 갯벌에 도착했다. 새들은 갯벌에서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며 다음 비행을 준비한다. 여성어민 류기화씨가 뒷걸음질 치며 조개를 줍는다. ‘저렇게 해서 얼마나 캐겠나’ 싶지만 그들은 그런 식으로 오늘 저녁과 자녀의 학비를 일궈냈다.
[막힌 줄도 모르고, 바다 기다리는 생명들]
바닷물이 막혔다. 주민들은 바다를 지키겠다며 바다 앞을 막아섰다. 경찰은 주민들을 밀어냈고, 시멘트는 부어졌다. 이 상황을 알 길 없는 생명들은 진흙 속에서 하염없이 바닷물을 기다렸다.
어느 날은 비가 내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물에 조개들이 가까스로 갯벌에서 고개를 들었다. 쏟아지는 빗물을 바닷물이라 여긴 것이다. 그렇게 해가 뜨고, 그들은 모두 죽었다.
2006년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된 후, 방조제 안쪽 갯벌의 저서생물이 몰살당했다.
상괭이 수백 마리가 떼죽음을 당했고, 어패류의 집단 몰살도 수시로 발생했다.
<새만금과 수라갯벌 답사를 위한 안내>에서 발췌
갯벌에 날아온 새들도 굶어 죽었다. 조개를 캐던 주민들의 손에는 낫이 쥐어졌다. 바다를 막은 정부가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주민들에게 낫을 준 것이다. 그 낫을 들고 주민들은 시멘트로 뒤덮인 바다 옆에서 잡초를 캤다. 잡초 사이사이 죽은 조개껍데기들이 있었다. 주민들은 조개껍데기에 쌓인 먼지를 닦았다.
[늘 걷던 길목에서의 죽음]
<수라>는 류기화씨를 따라간다. 그는 새만금 사업 소식을 들었을 때, 다른 직업을 구해야 할 지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아 다시 바다에 나갔다. 18년 간 해온 물질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았을 테다. 그렇게 그는 앞장서서 새만금 사업 중단을 외쳤다.
그런 그가 2006년 7월, 갑작스럽게 죽임을 당했다. 매일같이 거닐던 물길을 건너던 중이었다.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 공사로 조석주기가 바뀌었고, 갑자기 물이 불어났다. 그는 결국 자신의 터전에서 목숨을 잃었다.
보도자료를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kfem.or.kr/?p=11870
[대법원 판결 : 한쪽은 게임, 다른 한쪽은 전쟁을]
영화는 2006년, 새만금 사업 판결 장면을 기록했다. 대법원이 "새만금사업을 진행해도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정에서는 “새만금 만세”를 외치는 사람과 “역사가 심판할 것”이라며 울부짖는 사람들의 소리가 동시에 퍼졌다. 새만금을 사이에 둔 양 측의 상황이 너무나 달랐다. 새만금 사업을 찬성하는 쪽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걸었다. 새만금 사업으로 고속도로, 철도, 국제공항을 갖추면 전라북도가 우리나라 최고의 경제도시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갯벌을 지키는 쪽은 자신에게 속한 것들을 내걸어야 했다. 생계와 직결된 문제들이었다. 한쪽은 게임을, 다른 한쪽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폭력이었고, 이 폭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름다움을 본 것이 죄가 된다면]
국가가 쏜 화살이 내 옆사람을 맞출 때, 나 또한 희생된다. 심각한 트라우마로, 두려움으로, 무기력으로, 권력은 우리 삶의 채도를 멋대로 낮춘다. 영화에서 오동필 씨는 자신이 기억하는 아름다운 장면 하나를 소개한다. 갯벌에서 수 십 마리의 새들이 하늘을 날았다. 그들이 날갯짓을 하자 바람이 크게 일었다. 꼭 춤을 추는 것 같았고, 반짝거렸다. 그 장면을 소개하는 오동필 씨가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새만금 사업 이후, 그곳에서는 죽은 생명들이 떠올랐다. 그는 아름다운 장면을 본 것에 대한 죗값을 치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름다움을 본 것도 죄가 되나?’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생명과 교감하고,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것. 그저 삶을 살며 겪는 일들이다. 그저 살아간 것이 죄가 된다면, 죗값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치뤄야 한다. 무엇보다 국가사업으로부터 개인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면 이 또한 사업이 중단되어야 할 중요한 이유다.
[움직이는 사람들]
새만금 일대에는 여전히 새들이 날아온다. 땅 속 흙과 지하수의 염분으로 살아남은 생명들도 있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을 비롯한 시민단체들과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고군분투하며 갯벌을 지키고 있다.
2003년부터 시민들은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을 만들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새만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다란 장승들은 불씨가 꺼지지 않았음을 서로에게 상기시켜 준다. 장승뿐인가. 새만금 해수유통도 이들의 목소리로 이뤄졌다. 새만금 공사 후, 물의 색이 어두 침침해졌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직접 수질조사에 나섰고, 최악의 수질상태를 확인했다. 이를 환경부에 입증해 막힌 물과 바닷물을 순환시키는 해수유통을 이룬 것이다. 물론 국가는 해수유통을 1일 2회로 제한해, 새만금 사업에 속도를 내려는 중이다. 그럼에도 조사단은 살아남은 생명들을 관측하며 사업을 멈출 근거를 찾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영화 <수라>는 온전히 시민들의 힘으로 상영됐다. 시민들이 돈을 모아 전국의 130여개가 넘는 상업극장을 대여한 것이다. 그리고 직접 만든 링크로 <수라> 영화 예매를 진행했다. 그렇게 지난 6월21일, <수라>는 130여개가 넘는 극장에서 동시 개봉했다. <수라>를 본 시민들이 갯벌을 지키기 위해 점점 모이고 있다.
새만금 사업 중단은 살아남은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개인과 생명을 ‘이용가능한 것’으로 바라보는 국가의 잘못된 관습을 없애는 일이다. 영화처럼 우리도 그곳을 갯벌이라 불렀으면 좋겠다. 우리가 그곳을 갯벌이라 부르면 새만금 사업은 하루빨리 완성되어야 할 프로젝트가 아니라, 막아야 할 폭력이 될 것이다.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촉구 1만인 서명하기
국토교통부 장관을 피고로 1,308인의 국민소송인단이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 중입니다. 재판부에 제출할 취소촉구 서명에 함께 해주세요!
서명하기: bit.ly/새만금신공항취소서명
*9월25일 옥천에서 열리는 상영회 신청링크 : https://forms.gle/VAaqtRyTovSDQp3C6
*영화<수라>예고편 : https://youtu.be/N-9uL4pQdpQ?si=54KrSza94HZkzoyy
*영화 <수라> 페이스북 페이지: www.facebook.com/docusura
*영화 <수라> 인스타: instagram.com/docu_su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