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나혜 Aug 07. 2023

아니 이게 무슨 여성친화도시야

파주시가 용주골 성매매집결지 강제폐쇄를 발표했다.

 

  누구는 용주골성매매집결지가 폐쇄되면 여성인권이 신장될 것이라 말하고, 또 누구는 성노동자들이 다른 일을 하며 잘살게 될 것이라 말한다. 모두 아니다. 용주골 성노동자들이 쫓겨난 자리에는 배제와 우월감, 그리고 더 켜켜이 쌓인 빈곤만이 남을 뿐이다.



[시장인데요, 여성친화도시 만들게 나가세요.]


  지난 6월 8일, 파주시 용주골에서 성매매 집결지 강제 폐쇄 반대 집회가 열렸다. 용주골 성노동자 모임 자작나무회와 성노동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그리고 각지에서 모인 활동가들은 집결지에서 피켓을 들었다.


  용주골 성매매집결지는 한국전쟁 이후, 국가가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적극 주도하던 사업이었다. 수많은 여성이 각자의 이유로 용주골에 모였고, 상당수가 그곳에 정착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의 용주골에는 약 80명의 성노동자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고 있다.


  용주골은 점차 사람들의 왕래가 줄어 자진 철거의 시간을 갖고 있다. 이유 중 하나는 ‘파주 1-3 재개발 사업’이다. 용주골 성노동자들은 재개발로 집결지가 철거될 것을 알고 있었다. 과거에는 업소당 종사자가 10명 정도 됐지만 현재는 2명도 간신히 유지 중이다.

  

  그러던 지난 1월, 김경일 파주시장은 집결지 폐쇄를 통보했다. 그는 “모든 타협 없이 연내 폐쇄 절차를 마무리할 것”이라며 폐쇄의지를 보였다.



[여성 내쫓겠다는 파주시와 박수 치는 정부]


  시는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듯 집결지 폐쇄를 진행했다. 시가 내세운 이유는 ‘여성친화도시'다. 여성가족부는 5년마다 한 번씩 '여성친화도시'를 선정하고 있다. 파주시도 해당 사업에 선정됐다.


  파주시는 지난 2월 27일, ‘김경일표 여성친화도시, 사회 안전망으로 거듭난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여성친화도시를 만들겠다며 내세운 카드는 용주골 성매매집결지 폐쇄였다. 2달 후인 지난 4월, 경기도는 ‘여성친화도시 활성화 지원사업 시·군 공모’에서 파주시를 1위로 선정했다.


  탄력 받은 파주시장은 '여행길' 단체를 조직했다. ‘여행길’은 여성과 시민이 행복한 길의 줄임말이다. 해당 단체에는 파주시장과 공무원, 그리고 시민들이 있다. 이들은 ‘여성인권지킴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는 조끼를 입고, 매주 화요일마다 집결지 일대를 걷는다.


  용주골 투쟁이 있었던 6월 8일은, 경찰을 포함한 약 300여 명의 여행길 참여자들이 용주골 내부를 걷기로 되어있던 날이었다. 소식을 들은 자작나무회, 차차, 그리고 시민들이 집결지에 모였다.  



출처: 곽예인 작가 /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강제 폐쇄 반대 집회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여행길 단체 300여 명이  집결지에 오기로 예정된 날,  성노동자들이 집결지에 피켓을 붙였다



[파주시, 30억원 삭감되니 부랴부랴 방안 마련]


  시는 집결지 폐쇄를 통보한 1월부터 5개월이 넘도록, ‘성노동자 지원 방안’을 수립하지 않았다. 5개월 간 파주시는 집결지 내에 CCTV , 단속초소, 경광등을 생겼다. 아무런 지원 방안도 없이 성노동자를 내쫓을 궁리를 한 것이다. 이에 정부는 ‘사전 준비 미흡’으로 성매매 집결지 정비사업 추경예산 약 30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그제야 파주시는 조례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6월, 단숨에 만들어진 ‘파주시 성매매 피해자 등의 자활 지원 조례안’이 발표됐다. 그런데 정작 용주골 성노동자들은 조례안을 이장님을 통해 받았다. 조례안이 나왔다는 소식도 기사로 접했다. 시의 적극적인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에 시는 "홈페이지에 올렸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중이다.

  
  조례안은 성노동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조례안 논의 과정에서 지원대상자인 성노동자 당사자들의 의견이 빠져있었다. 당사자 없이 만들어진 지원 조례안은 판타지와 다름없었다. 조례안에 따르면 용주골 성노동자 대다수는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중복지원이 안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초생활수급자인 경우, 해당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또 성매매 여부를 관리, 감시하겠다는 조항이 있다. 탈성매매 서약서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 서약서는 이들에게 위협적이다. 무엇보다 생계부양자 역할을 하는 이들에게 지원금은 터무니없이 적다.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고, 새롭게 직업을 구할 때까지, 자식과 부모가 굶주리는 모습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집결지가 강제폐쇄 되면 벌어질 일]


  김경일 시장은 “유린되어 온 여성인권이 회복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용주골 집결지 폐쇄에 속도를 낼 것이라 말했다. 파주시 여성가족과 권문영 위원은 지난 6월, OBS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반성매매 정책과 반대"된다며 폐쇄를 주장했다.


  지난 3월에는 파주시여성단체협회가 파주시청에서 ‘성매매 집결지 폐쇄 유예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협회장은 “성매매 집결지 폐쇄 유예가 여성인권을 유린한다”라고 발언했다.


  그런데 현실은 너무나도 다르다. 집결지가 강제폐쇄 되면 성노동자는 더 위험해진다. 현재 용주골 성매매집결지는 성노동자들에게 최선의 대안이자 안전지대다. 노동자들끼리 서로의 얼굴을 아는 것, 성노동자가 생활하는 공간에서 손님을 받는 것은 중요하다. 성매매 현장에서는 폭력, 살인, 위협, 감금, 협박 등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때 가해자는 폭력적인 성구매자부터 단속에 나온 경찰까지 다양하다)

  

  집결지가 강제폐쇄되면 그들은 오피스텔과 같은 곳으로 가야 한다. 실제 한 성노동자는 "그곳에선 죽어도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성노동자가 성구매자의 집에 방문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동료 없이 개인으로 일해야 한다. 각종 폭력에 노출되기가 쉬운 노동환경인 것이다.

 

 

[우리가 처한 조건이 같지 않다]


  “우리 같은 여성으로서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매매 집결지 폐쇄를 지지하는 시민모임' 대표가 지난 6월, OBS와 인터뷰에서 발언했다. '우리 같은 여성'은 어떤 여성일까? '우리 같은 여성'에 포함되지 못하면 쫓겨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일까? 너무 거친 해석인 걸까?


 그의 발언에 ‘각자가 처한 조건이 다르다’는 사실에 대한 무관심함이 묻어있다. 마치 성노동자를 공격하는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노력으로 가난을 극복한 아무개의 이야기와도 비슷하다. 모든 사람이 그 시나리오 속 주인공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성공담은 극히 일부다.


  어떤 이들은 놀랍도록 계속해서 나쁜 제안들만을 마주친다. 그러나 그 제안은 그들에게 빈곤과 가정폭력 등, 각종 문제로부터 해방될 여지를 만들어 줬다. 특히, 빈곤이 ‘노력하지 않은 죄’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생존해야만 할 때, 내 앞에 놓인 제안을 못 본 척할 수 없다.



[성노동자 쫓겨난 곳에 여성인권은 없다]


  지금 용주골 성매매집결지에서는 투쟁이 한창이다. 성노동자들과 성노동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를 비롯한 시민들이 함께 싸우고 있다. 한편 파주시는 여행길 사업 등으로, 여성친화도시사업의 성과를 증명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턱-하니 성과금을 주고 있다. 그들은 성노동자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안락한 의자에 앉아 성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끄적거릴 뿐이다.


  파주시는 계속해서 묻고 있다. 성매매여성을 그대로 둬도 되냐고, 성매매집결지가 없어져야 여성친화도시가 될 수 있지 않겠냐며 말이다. 그러나 이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우리는 "위험에 처했다"고 외치는 여성의 이야기를 믿어야 한다.


  성노동자가 쫓겨난 곳엔, 여성친화도시는 고사하고 '여성인권'조차 있을 수 없다. 나는 "그러게 왜 그런 직업을 선택했냐"며 성노동자를 내쫓는 도시가 아니라, 그런 선택지를 마주하게 만든 조건을 문제 삼는 도시에 살고 싶다. 복잡한 문제를 복잡하게 바라보고,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 도시에 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그들은 왜 '농부'를 선택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