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nimal May 16. 2021

문화적 다양성이 아닌 삶의 다양성의 문제

다양성이 과소평가되는 사회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


내가 속해있는 그룹의 어떤 여성회원(21세)이 학교를 그만두고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고 싶은데 조언을 구한다고 글을 올렸다. 댓글이 17개쯤 달렸는데,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30-40대가 대부분이었다. 개중에는 어린나이에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3건)도 있었지만, 나머지는 대학은 나와야한다는 의견이었다. 그중의 절반정도(7개)는 우리가 이른바 '꼰대'라고 칭하는 이들의 잔소리었는데, '대학생활도 견디지 못하면서 사회에서 무슨 성공을 바라느냐. 정신차리라'는 악플에 가까운 댓글이었다. 


웬만하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댓글이 너무 폭력적인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서 댓글을 남겼다. 

"구체적으로 어떤 플랜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수가 없지만,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고 싶다는 열정이 진실하다면, 한번쯤은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엄청난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것도 그때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였다.


그리고 이후 이어진 DM에서 나는

"한국에 정착하여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제도권에서 한번도 벗어나 본적이 없는 이들에게 굳이 원대한 계획을 털어놓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길이 없다면 길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도 더러 있고,그 사람이 꼭 불세출의 천재일 필요는 없다고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곳에서 기회가 생길 수 도 있으니까요. 다만, 언젠가 학교에 돌아올 수도 있다는 여유는 가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들이 마냥 맞는 말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함께 일해야하는 동료나 상사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라고 했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이에게 굳이 시간을 들여 메시지를 전달한 이유는, 나 역시도 정해진 틀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고, 이런 나의 생각은 종종 무심한 말들과 때로는 험한 말들로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보통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같이하던 가까운 친구들이었거나, 조언을 구하지도 않았는데 잔소리를 쏟아붙던 소수의 선배들이었다. 돌아보니, 그들이 왜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쏘아댔는지 알 것 같다. 그러나 삶이 꼭 그들이 바라보는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도 경험을 통해 알게되었다. 실패는 참으로 잔인하고 견디기 어려운 것이지만, 과연 그들이 겁내하는 것이 당사자의 실패인지 아니면 자신의 신념이 무너지는 것을 견딜 수 없어하는 것인지 아직도 헷갈린다. 


원대한(이라쓰고 허무맹랑한 으로 읽는다) 꿈들은 종종 짓눌리고 희롱당한다. 그 누구도 화나게 하지 않으려면 '생긴대로 살자' 말하고 끝내면 될 문제기도하다. 하지만, 나는 삶의 다양성을 해하는 태도가 영 불편하다. 이쯤되면 삶의 다양성의 반대말은 보편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과 억압에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최선의 역량을 딛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우리가 단속해야할 것은 어린 친구의 상상력과 야망이 아니라, 실패하였을 때 세상이 너무 매섭게 돌변하지 않도록 폭력을 제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정말 이 싸움에서 이기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일기장을 다시 꺼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