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dson Yard Project의 꽃 The Vessel 을 방문하여
전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밤새 술마시고 놀았다. Hell's Kitchen에서 술을 진탕 마셨던 것 같은데 결국 그 친구네 집으로까지 가서 한잔 더 하게 되었다. 숙취가 남아서 좀 힘들었지만, 아침 일정때문에 9시쯤 집을 나섰다
뉴욕에서는 걷는 것이 즐겁다. 길거리를 걷다가 예상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멋진 버스킹을 즐길 수 있는 것도 걷는 것이 즐거운 이유중 하나인데, 이번에도 운이 좋았다. 사람들이 출근하는 시간대인 아침 9시즈음, 지하철역을 걷게 되었는데 먼거리에서 감미로운 일렉기타소리가 들렸다. 출근시간이라 역사내는 제법 엄숙한 분위기였는데, 음악이 그걸 잘 맞춰주는듯 했다.
오후 12시즘 the Vessel 전망대를 오르기로 예약해놨기 때문에 발길을 서둘러야했다.
The Vessel 은 뉴욕에 도착한 첫날 Hudson Yard를 방문하면서 한번 둘러본 적이 있었다. 전망대에 오르기위해서는 예약을 하거나, 당일 공석이 생길때까지 줄을 서서 기다려야 오를 수 있는데 시간이 짧은 여행을 했기 때문에 나는 미리 예약해놓기로 했다. (현재 끊임없는 자살 시도/사고로 잠정폐쇄되었음)
이 작품을 만들어낸 건축가는 토머스 헤드윅(Thomas Heatherwick)으로 일전에 2010년 상하이 엑스포에서 씨앗을 주제로한 파빌리온 건축가로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은바 있다. 그의 공간은 기능(function)에 집중한다기보다는 일탈의 성격을 지닌 도시적 이벤트를 만드는데 아름다움이 있다. 이번에도 역시, Hudson Yard라는 뉴욕에서 가장 커다란 사회적 이벤트중 하나를 그의 작품이 장식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래전부터 꼭 한번 가고 싶었다.
아마도, Hudson Yard 프로젝트를 담당하던 사람들은 어떻게하면 프로젝트를 홍보할 수 있을까 고민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장소가 현시대 가장 뛰어난 부동산 가치가 있는 장소인지 증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해당 프로젝트는 근 2009년부터 이어진 Highline Project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사회적 이벤트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Michael Bloomberg 전 뉴욕시장의 최대 치적으로 포장해야할 책임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The Vessel은 Highline 위에 지어진 구조물이다. 아마도 highline위에 지어졌다는 사실이 '우리가 왜 이 계단을 오르고 있지?' 에 대한 질문에 해답을 찾아줄지도 모르겠다. Highline 의 미덕은 사람들이 도시를 걷도록 만들었다는데 있다. 사람들은 걷기위해서 이 좁은 Highline을 방문한다. 덕분에 이 버려진 철길에 전세계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동네상권이 살아난다. 이에 발맞추어 뉴욕 시정역사상 가장 커다란 부동산개발이 이어진다. 부동산 개발은 1차적으로 개발업자와 투자자(때로는 투기꾼)등 이해당사자에게 이득을 주는 것이겠지만, 이는 큰 그림에서는 뉴욕시의 세입에 기여하고, 뉴욕시의 시장이 커지는 결과를 불러온다. 따라서, 관점을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오르는 이유는 오직 도시의 상권을 되살리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의문하게 된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이 순수하게 경치를 즐기기 위해서 주장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100년전만 하더라도 도시를 설계한다는 것은 우리가 경제활동을 하기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예술이나 도시적 이벤트(스포츠 경기등)는 그때에도 활발하게 이어졌지만 이것 역시도 보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20세기에는 도시와 건축이 살기위한 기계라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통용되었었다. 하지만,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그런 관점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인간은 허영심이 있고, 합리적인 소비에 생각보다 재능이 없으며, 온통 편견으로 가득차 있다. 요즘처럼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가 활발하게 연구되는 시절에는 특히 더 그래보인다. 컴퓨터가 인간을 모델링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이유중에 하나는 우리의 기질이 컴퓨터와 많이 다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따라서 도시를 설계하는 전문가들의 인간에 대한 이해가 이전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우리가 뚜렷한 목적이 없더라도 계단을 기꺼이 오르는 이유는 이런 배경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The Vessel을 방문하는내내 건축가의 지평이 넓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Orthodox한 관점으로 본다면 이는 개탄스럽기만한, 아무 쓸모없고, 허영심으로 가득찬 사치스런 구조물 정도로 매도할 수 있겠지만, 이것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따라서, 건축가는 도시재건이나 집짓기 같은 전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그대로 가되, 이런종류의 사회적 이벤트, 그리고 이벤트들을 엮어내는 스토리를 구성해내는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직 도시스케일에서 사용자를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은 건축가뿐이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이를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도시의 이벤트를 지휘(Orchestrate)하는 지휘자로서 공학지식과 학문으로서의 건축의 지식을 엮어내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App이나 웹사이트 같은 개발자들이 UX와 UI를 개발하는 것처럼 건축가는 도시스케일에서 UX와 UI를 고민해보면 어떨까?
The Vessel을 관람하고 다시 Upper East Side 로 향했다. 몇정거장 앞서 내려서 굳이 Museum Mile이라고 불리는 거리를 걸었다. 다시봐도 즐거운 광경이었다. 센트럴 파크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주변의 건축물은 바라보기만해도 기분좋은 것들이다.
동선으로 놓고보면 굉장히 비효율적인 여행계획이었다. 아침에 친구집에서 바로 향했더라면 훨씬 많은 시간을 아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늦은 오후즈음 다시 이 구역으로 돌아온 이유는 고등학생들을 위한 직업박람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기 한달 전에 이벤트를 알게되었고 일정한 비용($20)을 지불하고 예약했다.
뉴욕의 그래픽디자인, 건축디자인등 시각예술 전문가들이 박람회에 참여했다. 미리 참가를 신청한 미성년 학생들은 전문가들과 자연스레 대화하면서 그들의 진로를 상담받았다. 타겟은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Cooper Union, Tisch, SVA 등 대학기관 입학처장들도 참석했다. 이 곳에서 아이들은 실무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직업에 대해 알아갔다. 나는 이 때 해외 취업준비중이었기 때문에 미국의 학생들은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하는지, 그들의 교육환경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기 때문에 Cooper Hewitt 미술관의 전시도 볼겸 자리하게 되었다.
사실 속내는 이 곳에 참여하는 업체들의 인사담당자들에게 포트폴리오나 이력서라도 전달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참석한 사람들이 이 박람회에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는지 확인하고 나서 실례가 될것이란 판단이 들었다. 넘어서는 안되는 선처럼 느껴져서 나는 조용히 박람회장을 나왔다.
돌아가는 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축물중 하나인 구겐하임 미술관을 방문했다. 안에 전시를 볼 여유는 없었지만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볼 수 없는 디테일들을 둘러보면서 감상해봤다.
나는 2009년에 휴학생 신분으로 이 곳을 찾았었다. 당시에는 과연 건축(전공)이 내 길이 맞는가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미술관을 처음 방문하게 된 날 큰 깨달음을 얻었었다.
원은 한 점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위치한 점들의 집합이다. 따라서 원은 자연스레 중심과 테두리라는 요소로 구분이 가능하며, 이 기하학이 공간으로 발전하면 자연스럽게 중심성이 생기게 된다. 우리가 여행하며 마주하게되는 기념비적인 건축물 (로마의 판테온 같은)이 원형으로 설계되어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미술관에 구심점(중심)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구겐하임 미술관이 만들어진 역사를 참고해보면 이해하기 쉬워진다. 수많은 예술작품을 남기고 사망한 기증자의 유언에 따라 건설된 이 미술관은 '전시'의 기능도 중요한 한 축이었지만 다른 많은 미술관의 경우와도 마찬가지로 뉴욕 상류층의 '사교활동'을 위한 무대이기도 했다. 시각예술과 관련된 사회활동, 학문적 연구활동을 소화하면서 수많은 기증자들과 추종자들을 위한 장소이기도 했다는 소리이다. 따라서, 원을 따라 상승하는 램프에는 전시공간을 마련하여 전시기능을 훌륭하게 소화함과 동시에 천장에는 창을 두어 중심공간을 한번 더 강조한다. 전시공간이 아랫공간을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자연스럽게 연결(유기적으로 연결-건축가의 말을 빌리자면)하는 것이다.
나는 이처럼 건축가의 의도와, 사회적 필요와, 형태적 특성(관습/지식)이 일체화 된 건축물을 보지 못했었다. 우리가 공간의 '기능'을 충실히 소화해내면서 탁월한 시각적인 효과를 만들어내는 공간을 경험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건축가는 그 타협점을 찾기위해서 부지런하고 영민하게 조율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렇게 강렬한 형태를 만들고, 공간의 기능적 속성을 완성해나가는 것은 이미 거장으로 분류되었던 Frank Lloyd Wright가 아니고서야 불가능 했을 것이다. 당시에 건축이 뭔지, 내가 과연 잘 할수 있을지 고민하던 나에게 걱정대신 큰 꿈을 꿔볼 수 있게한 중요한 경험이었다.
물론, 램프로 완성된 전시공간이 진지하게 전시를 바라보는데 방해가 된다는 비판과, 백색의 콘크리트와 과감한 조형성이 UFO를 떠올린다는 비평등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건축가의 의도, 조형성, 기능적 요구를 한 번에 해결하고자 했던 그의 비전에 감탄할 뿐이다.
박람회를 나와 1시간정도 지하철을 타고 브루클린을 향했다.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의 The Edge of Order 강연을 듣기 위해서였다.
강연내용은 TED 나 Youtube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강연 내용은 어렵지 않았다. 대중을 선동할 수 있을만큼 강력한 달변가는 아니었지만, 오랜기간 고민한 자신의 건축철학을 어렵지 않게 설명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World Trade Center(1 World Plaza) Master Plan 총괄 건축가를 맡고나서 완전히 뉴욕에 정착한 것 같아 보이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지금도 뉴욕에서 Practice를 하고 있다.
오늘은 The Vessel 과 Guggenheim Museum, 그리고 Daniel Libeskind까지 현재와 과거의 뉴욕의 건축과 사상들을 폭넓게 훑어보면서 유익한 하루를 보냈다.
여행에 설레는 이유는
아마도 생산활동 없이 온통 소비와 사색으로 하루를 가득 채울 수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기꺼이 자신의 집에 초청해준(그것도 Upper East side의 아파트!) 친구와, 멋진 건축물을 설계한 Thomas Heatherwick과 유익한 강연을 해준 Daniel Libeskind에게 고맙다. 덕분에 하루를 재밌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