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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mal Sep 07. 2021

7 Days 뉴욕여행 5 위대한 이름

B.I.G, Daniel Libeskind, Mario Botta와 함께

오늘은 B.I.G 사무소에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러 가기위해 서둘러 나왔다. 숙소였던 뉴저지에서 브루클린까지 1시간정도 걸려서 갔는데 출근시간에 맞춰 돌아다니는게 이번 여행에는 참 많았다. 사무실이 위치한 DUMBO(Down Under Manhattan Bridge Overpass; 맨하탄 다리 밑 공간이라는 뜻)는 뉴욕시에서 가장 Hot한 구역중 하나로, 최근 IT/Tech 기업들의 사무실이나 Co-working space들이 들어서면서 젊은 이미지를 뽐내고 있는 곳이라 기대가 컸다.



이 모든것이 일장춘몽이어라, <Once upon a time in America>

혹시 Once upon a time in America를 보셨는지 모르겠다. 뉴욕여행을 할 때 영화 몇편을 챙겨보고 가면 좋다. 영화의 중요한 장면을 실제로 마주하게되었을 때 그 감동은 산술적으로 계산이 되지 않을만큼 차이가 크다. 내가 DUMBO에 온 것은 실은 포트폴리오 제출과 힙하다는 동네 카페에서 커피를 홀짝이는 것과 같은 소소한 재미를 위한 것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여기가 Once upon a time in America 포스터가 촬영된 곳이었다. 자라면서 무한도전을 보고 다양한 경로로 이 곳이 촬영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사무실을 찾아 헤맸을 뿐인데, 너무나도 강렬한 장면이 나타나서 넋을 잃고 말았다.


Once upon a time in America, 라떼는 말이야..  

깡패영화고, 그들의 삶자체가 무법천지라 '이야기'가 아닌 실제상황에서 주인공을 알게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낭만적인 시선으로 영화를 기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장면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보여준 연기는 이 모든 것들을 용서하게 하였고, 그가 원했던 것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 척박한 인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나저나, B.I.G 사무실은 생각보다 외부인에게 열려있었다.

입구앞에 놓인 B.I.G 최근 작품 모델 이 앞에서 한 10분을 망설였다. 들어갈까 말까.

이번에 포트폴리오를 제출하기로 한 것은 사실 치기에 근거한 행동이었다. 서류를 여러번 제출했지만 한번도 답변이 오지 않았다. 나는 내 경력과 포트폴리오가 한번이라도 검토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무실에 직접 제출하기로 했다. 이렇게 부르지 않았는데 직접 찾아가는 것은 처음이라서 걱정이 앞섰다. 불법 침입자로 몰려서 경찰에 끌려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야하나, 무엇보다도 마치 소개팅 5분전에 느끼는 압박감과 같이 내 포트폴리오가 형편없어서 망신을 당하면 어떻게하나 같은 것들로 걱정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B.I.G 뉴욕사무소는 Reception이 입구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거리를 혈혈단신으로 건너가야하다니 아찔했다. 마치 용건이 있는 사람처럼 전화기를 귀에 대고 성큼성큼 리셉션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포트폴리오를 제출하고 싶은데, 혹시 어디다 제출해야하는지 알려줄 수 있나요?"


생각보다 익숙하게 내 포트폴리오를 받아든 리셉셔니스트는, "걱정하지마, 너같은 애들 많이와"라고 해줬다.ㅋㅋㅋ


오랜시간이 지났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고, 나는 지금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이럴줄 알았으면 그렇게 쫄지 않았겠지. Pantry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음식이나 몇개 집어오고 사진이나 찍을걸!




성당의 대문을 닮은 Brooklyn Bridge,


B.I.G 사무실을 나오니 긴장이 풀리면서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아침을 먹지 않았다. 끼니를 거를정도로 내가 집중했다는 사실이 꽤 자랑스러웠다. DUMBO야 워낙 cafeteria가 많은 곳이니 멀지 않은 곳에서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식사후에 다음일정을 위해서 Brooklyn Bridge를 건너 Wall Street를 향했다.



걷기로 마음먹었다면 브루클린에서 맨하탄 방향으로 걸어보세요


영화 섹스앤더시티(Sex and the city 1편)를 보면 이혼위기에 처한 미란다와 스티브가 결정을 앞두고 서로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는 장면이 나온다. 서로에게 한번의 기회를 줄 의향이 있다면, 다시말해 결혼생활을 유지할 의지가 있다면, 브루클린과 맨하탄 사이에 있는 브루클린 브릿지에서 만나자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정 중앙에서 만난다. Meet me halfway라는 화해할때 쓰는 영어표현이 이처럼 꼭 맞아 떨어질 때가 있을까?


 왜 영화는 다른 수많은 뉴욕의 다리를 놔두고 브루클린 브릿지에서 촬영을 했을까? 브루클린과 연결하는 다리는 Brooklyn Bridge 외에도 여러개가 더 있다. 정답은 아니지만 몇가지 생각을 거꾸로 추적해 올라가다 보면 이 다리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가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첫번째, 뉴욕과 브루클린을 이은 첫번째 다리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처음 성취한 가치는 높게 평가를 받게 마련이다. Brooklyn Bridge도 단연 가장 오래되었다는 타이틀 때문에 사람들에게 정서적 가치를 더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다리의 스타일이 고딕성당과 비슷해서 웬지 더 오래되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있다. 뉴욕이 역사가 오래된 도시이며, 그만큼 많은 스토리가 이 곳에 얽혀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화의 무대로 사용되는데 충분한 가치를 줄 것이다.


두번째, 실질적으로 보행환경이 가장 훌륭한 다리이다. 다른 교각들, 가령 Manhattan bridge, Queensborough Bridge 과 같은 다리들은 보행환경이 없거나 열악하다. 자동차나 기차(지하철)이 지나가도록 만든 다리이기때문에 보행자에 대한 배려를 찾기는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Brooklyn Bridge의 경우 기차가 지나는길 위로 보행자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있어 자동차가 다니는 길과도 분리될 뿐만아니라 지나가는 차량에 풍경이 가리워질 일도 없다. 강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교각이기 때문에 걷는과정이 짧고 유쾌하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차에 치일까봐 걱정해야하는 환경은 아니다.  


그밖에... 이런 실용적인 관점을 벗어나서도, 여성이 완성한 최초의 다리라는 타이틀, 브루클린 통근자(Commuters)의 탄생을 알리는 거대한 사건이었다는 점(그리고 뉴욕시가 맨하탄을 벗어나 거대한 Metropolis로 확장되는 계기였다는 점)등 이 다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는 무한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랜드마크가 되었을 것이다.


걷는것이 불편하지 않다면 한번쯤은 건너보는 것이 좋은데, 기왕 걷는 것이라면 브루클린에서 맨하탄 방향으로 걷는 것을 추천한다. 왕복으로 건너기엔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걸으면서 맨하탄의 스카이라인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는길에 Federal Reserve Bank를 지나쳤다.


오전에 B.I.G 사무실에 포트폴리오를 제출하고 나니 자신감이 좀 생겨서, 이 김에 다니엘 리베스킨트 사무실에도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출하기에 많이 부족한 포트폴리오였지만, 이김에 사무실이나 한번 구경해보자는 심산이었다. 미드타운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다니엘 리베스킨트 사무소가 위치한 월스트리트로 향했다. 가는길에 책에서 보았던 연방준비위원회 수장고(Federal Reserve Bank of New York)를 지나쳤다.



금본위제가 폐지되기 전까지는 Federal Reserve의 주요 업무중 하나는 금을 보관하는 일이였다. 달러를 가져오면 1달러당 일정한 무게를 교환해줘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는 전세계의 금이 뉴욕에 모였다. 그 금들이 바로 이 은행건물의 지하에 묻혀있다고 했다. 만약 조금 더 서둘렀더라면 내부 투어를 신청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꼭 한번 가보고 싶다. 최근에 주식공부와 경제공부를 하면서 화폐를 자주 생각하게 되었는데 전세계의 기축통화의 본산인 Federal Reserve의 구조를 파악하는데 조금이라도(사소하지만) 도움이 될 것 같다.



뉴욕의 마천루의 탄생배경, 역사를 한번에 공부할 수 있는

보석같은 박물관 Skyscraper Museum


뉴욕에는 작고 귀중한 박물관들이 많다. 특히 어떤 학문적 주제에 대해서(그것이 비전통적인 학문이라 할지라도) 깊이있게 파고드는 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박물관들이 많다. 이미 건축학도일때부터 알고 있었던 Skyscraper Museum을 방문했다. 항상 주요 박물관 일정과 겹치면서 후순위로 미뤄뒀던 장소인데 이렇게 방문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기뻤다.

지금은 사라진 쌍둥이빌딩의 모형이 전시되고 있다. 전체적인 형상은 투박하지만 모형덕에 건축가가 어떤 디테일을 구현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맨하탄은 섬이었고요, 강으로 둘러싸인 한정된 공간에
유럽의 난민들(이민자)들이 몰리면서 하늘로 향해야했던 땅이기도 합니다.

아쉽게도 마천루(skyscraper) 건물은 더이상 뉴욕의 것만은 아니다. 뉴욕에 새로운 마천루가 세워질때 자연히 따라붙던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이라는 수식어가 완전히 사라진지도 20년(쌍둥이빌딩이 무너진 때부터) 좀 넘어간다. 이제 그들은 '서양문명권에서 가장 높은' 이라는 타이틀을 대신 사용한다.(대표적으로 1 World Plaza가 있다. -이제는 The Edge로 바뀌었다) 두바이와 상하이등지에 더 높은 건물들이 많이 생긴 덕분이다. 하지만, 마천루라는 개념이 잉태되고 크게 발전한 곳은 뭐니뭐니해도 뉴욕이다. '섬(island)'라는 한정된 공간이 수많은 이민자들이 몰리면서 도시의 밀도가 그 어느 도시보다도 급증했으며, 자연스레 더 높은 건물들이 경쟁하듯 우후죽순 등장하게 된 곳이 뉴욕이기 때문이다.



마천루(Skyscraper)가 뉴욕에서 어떻게 발전하게 되었는지

모형과 3D그래픽으로 자세히 설명해주는 박물관입니다.

코르크로 맨하탄 섬 전체를 표현했다.


전시회는 크게 3가지 요소로 나뉜다. 전시패널, 모형 그리고 3D 그래픽. 건축학을 공부한 친구들이라면 아무래도 이 3박자에 익숙할 것 같은데, 실제로도 이 3가지 매체를 차근차근 훑고 나면 아주 좋은 건축강의를 들은 기분을 느낄 것이다. 특히 모형의 디테일이나 모형의 규모, 종류등을 따로 떼어놓고 관찰하더라도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물론, 실제와 가장 비슷한 모형을 보고 싶다면 Queens 에 위치한 박물관을 찾는편이 낫겠지만 이 곳은 꾸준하게 초고층 관련 포럼과 세미나를 개최하는 학술단체가 관리하는 박물관이기 때문에 건축학에 관심이 있거나 건축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한번 방문할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ADFF, 건축 디자인 영화 축제에서 Mario Botta를 만나다


오후내내 비가내렸다. 박물관에서 전시를 관람할 때는 괜찮았는데, 아무래도 바깥을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는 못했다. 다행히 오늘 마지막 일정은 영화관에 가는 것이었다. 건축가 마리오보타의 경기도 수원의 남양성모성지성당 프로젝트를 취재한 다큐멘터리 필름이었는데 건축가가 직접 대담회를 가질것이라 하여 기대가 컸다.

우리나라에도 여러차례 방문한 이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수선떨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하루를 B.I.G.와 Daniel Libeskind와 Mario Botta로 채워넣다보니 이것또한 즐거움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약 40분가량이어진 대담에서는 참가자들의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나처럼 전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마리오보타에게 열정적으로 질문을 했는데, 참 뉴욕은 국제적인 도시라는게 다시한번 느껴졌다.


이벤트가 끝나고 함께 Venue를 나서던 중에


아침부터 일찍 돌아다니느라 수고가 많은 하루였다. 뭐 어제도 그제도 그랬으니 새로운 것은 없지만. 하루종일 건축만을 생각하고 건축만을 이야기해서 신선한 하루기도 했다. 조금만 열심히 준비하면 뉴욕을 여행하는동안엔 이런 이벤트들을 많이 경험할 수 있다. 다음 여행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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