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가을은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마치 이 도시는 원래 가을을 위한 도시였던 것처럼 분위기가 물든다. 가을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게 담긴 영화는 아마도 <뉴욕의 가을> 일 것이다.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뉴욕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경험해보기였고, 얼마전에 그 목표를 달성했는데 아무래도 가을이 가장 아름다운 도시같다. 여담이지만, 겨울은 정말 형편 없다. 고층빌딩 사이를 걸어야 할때면 내 말에 공감할 수 있을텐데, 건물 사이로 웃풍이 부는데다 눈까지 내리기라도 하면 온 몸이 젖어버릴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은 반강제적으로 아침 일찍 길을 나선편이다. 나라고 피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살인적인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Dorm Room 에서 묵었기 때문에 조금만 시간을 잘못 맞추면 외출시간이 한없이 늦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통 6시정도엔 일어나서 나갈 채비를 했다.
내가 또 해보고 싶었던 경험중에 하나가 Jacqueline Kennedy Onassis Reservoir(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저수지) 조깅하기 였다. 현실적으로 뉴저지에서 조깅하는 옷차림으로 나가는게 쉽지는 않았기 때문에 일찍 포기했지만, 대신에 아침에 조깅하는 사람들을 구경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날에 비가 와서였는지 저수지 주변 산책로는 질펀하게 젖어있었다. 그 와중에(역시 뉴요커!) 열심히 조깅하는 사람도 물론 있었지만 진흙이 튈까 가까이 가지는 못했다. 오후에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센트럴 파크 북부의 포장된 도로를 따라 걷기로 했다. 다음 행선지가 Museum Of City of New York (113번가, Upper East Side, Museum Mile 끄트막에 자리하고 있다.) 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여러방면에서 유익했다. 일단 지난 10년동안 6회정도 방문했던 짬이 찼기 때문에, 내가 정확히 무엇을 봐야하며, 시간을 어떻게 안배해야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어느날 어느 지역에가서 어떤 고민을 해야하는지 계획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박물관 역시도 다른 여러 박물관을 우선 방문해야하느라 미처 방문하지못한 박물관이었는데 처음 뉴욕을 여행한지 10년만에 방문하게 되었다.
건축공부는 양이 많고 방대해서 가이드가 없이 '자기주도적'으로 진행하기 참 어려운 학문이다. 특히, 학교에 가고 나서는 이에대한 갈증이 더 심화된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는 '건축학'을 공부하기 훨씬 이전에 '직업'으로서 테크닉과 기본기를 다지는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꽤 오래 지속된다. 사실 이런 고민속에서 헤메다가 이제 막 공부를 어떻게 해야할지 알겠을 무렵에 쫓겨나듯이 졸업하는게 맞다고 해도 될 것 같다. 물론 내 주변에도 두뇌가 명석하고 스스로 사유할줄아는 친구들은 학교에서도 충분히 빛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2009년에 처음 방문했을 때에는 이제 1학년을 마친 새내기 였다. 건축역사는 커녕 세계사의 흐름도 뒤죽박죽이던 공학도였고, 어렴풋이 건축이 멋있는 학문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게 당최 뭔지 모르는 그런 귀염둥이였다. 그 때 뉴욕을 여행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건축적인 주제를 고민하기에 뉴욕만큼 좋은 도시가 없기 때문이다.
Museum of City of New York(이하 뉴욕도시박물관)은 바로 그때 방문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게 하는 전시공간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왜 도시에 사는가?' 고민하게되고, '그래서 어떤 도시에 살아야하는가?'까지 생각을 확장할 수 있다. 특히, 아무런 연고도 없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몰려든 이민자들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그들이 이 도시를 어떻게 만들어냈고, 지금은 어떤 상황이며 이것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게 되어 추상적이었던 건축이론들이 손에잡히는 현실의 문제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1) MONEY 돈: 뉴욕은 자본주의의 수도이다.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는 기관이 위치하고 있으며 금융의 중심지이다. 살인적인 빈부격차가 존재하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각국의 젊은이들은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뉴욕으로 몰리고 있으며 바로 여기서, 부가가치가 생산이 되고 시장이 확장되고 있다. 도시가 우리의 생계를 이어나게하는 하나의 기계라 한다면 돈은 연료가 될 것이다.
2) Diversity 다양성 : 19세기부터 뉴욕은 이민자의 도시였다. 유럽본토의 시끌벅적한 정치판을 벗어난 망명자들과, 전쟁 난민들, 경제불황의 피해자들이 대규모로 몰려들어 만들어진 도시다. 이 도시에서 다양성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개념이었다. 만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단일한 가치관으로 재편되고자 했다면 아마 도시는 난장판이 되었을 것이다. 서슬퍼런 9/11 테러 사태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시대를 지나면서 그 색이 많이 퇴색된 것 같아 보이지만, 여전히 뉴욕은 국제도시이자 전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인종이 모이는 곳이다.
3) Density 밀도: 도시가 숨막힐정도로 밀도가 높아진 것은 몰려드는 이민자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뉴욕(Manhattan island)은 네 방향 모두 물로 막힌 섬이기 때문에 수평적으로 확장하기 어려운 구조였고, 20세기 초반 크게 유행한 마천루양식(Skyscraper)의 건물들은 이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도시를 더욱 빽빽하게 하였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다양성의 문제는 일상의 첨예한 화두가 되기 마련이었고 사람들이 뉴욕을 문화의 용광로(melting pot)이라 부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뉴욕만의 밀집문화는 건축적으로 문화적으로 고유한 환경을 만들어 냈다.
4) Creativity 창의성: 무한경쟁을 지향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혁신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정글과 같은 식생을 가지게 마련이다. 자본주의의 본산이라할 수 있는 뉴욕에서는 오래전부터 '혁신(innovation)'을 최고의 기업가치로 여기며 성장한 회사들의 고향 역할을 자처했다. 처음에는 유럽 문화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시작한 문화예술운동이었지만 점차 자신만의 고민과 철학을 만들어 내면서 새로운 현대 예술을 발전시키기까지 뉴욕이 새로운 기술과 참신한 생각에 대한 열린 환경이 큰 역할을 했다. 이 곳에 유럽스타일의 고전주의 관성이나 관습이 자리하기는 쉽지 않다.
더 많은 이들에게 Hudson River View를 선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건축유형
강남을 향해 달리는 한남대교에서, 압구정동 미성아파트를 바라보면,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왜 복도가 한강을 면하고 있을까? 한강뷰 아파트는 원래 웃돈을 주고라도 사게되는 프리미엄 부동산 아닌가? 어쩌다 강남아파트들이 한강을 복도에 내어주게 되었을까?
비슷한 현상이 뉴욕에서도 일어난다. 한때 공장이었던 시설을 예쁘게 단장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면 여지없이 강변이다. 아무래도 우리가 강을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서울쥐 시골쥐(원제: 뉴욕 쥐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그럴만도 하다. 하천은 도시의 커다란 하수구에 불과했을테니.
오늘 소개할 이 건물도 역시 공장지대에 새로 개발된 주거시설이다. 강변에 있다. 새로지어진 건물은 우리나라로 치면 아파트인데, 정말 독특하게 생겼다. 한강변의 상자형 아파트를 싫어하는(보다 더 강하게 혐오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갈 것이다.
삼각형의 형상이 강하게 다가온다. 건물이 삼각형의 모양을 갖기가 쉽지가 않은데 용감하게 뾰족한 삼각형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빗변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에게 불편함을 줄뿐인데, 그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보는 것도 이 건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첫번째, 의도된 브랜딩이다. 눈에 튀지 않으면 명성을 유지하는데 굉장히 불리하다. 스타키텍트로 분류되는 건축가들에게 브랜드는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이자 생존수단이다. 거대한 설계집단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마땅히 고민하게되는 조형성을 NURBS 곡면을 통해 영리하게 풀어냈다.
두번째, 허드슨 강과 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허드슨 강의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게해야 부동산 수익도 극대화되며, 건축인들이 고민하는 건축공간의 품질도 해결할 수 있다. 일타쌍피를 노리기 위해선, 더 많은 호실에서 허드슨강을 즐길 수 있어야한다. 따라서 허드슨 강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꼭지점을 높이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방을 집어넣었다. 덕분에 노을이 지는 허드슨 강을 즐길 수 있는 세대수가 극대화 된다.
세번째, 건축가가 사용하는 컴퓨터 프로그램 때문이다. 홍보동영상을 보면 라이노가 사용된 것으로 나타나데, 분명 여러 프로그램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렸을 것이기 때문에 굳이 특정 프로그램을 지칭하지는 않겠다. 현재 일선에서 사용되는 3D 모델링 프로그램은 점과 면의 관계를 정말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한쪽 꼭지점을 들어올렸을때 면이 휘게되는 곡률을 간단한 2차 방정식으로 표현할 수도, 무한대의 차원을 갖는 방정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부피는 삼각형 면들의 집합으로 표현된다. 해당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하다보면 자연스레 삼각형의 기하학적 원리를 이용하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공간을 이리저리 실험하면서 이런 역량을 활용하고 싶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디지털의 힘이 없었더라면,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리지 못했을 것이고, 사용하지 못하는 죽은 공간들이 양산되어 살기에 부적합한 공간이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건축공간을 대하는 방식을 한번 함께 돌아봤으면 좋겠다. 부동산 개발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건축가가 가장 정성을 기울인 것은 공간의 품질이었다. 그것이 건축에서 멀리 떨어진 브랜딩과 마케팅의 편협한 부분을 다루고 있다고 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나라 한강변의 아파트는 30-40년 전에 지어진 아파트와 비교해 어떠한 점이 성숙했으며 어떤 점이 발전했을까? 꼭 뷰를 신경쓰고 지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 그 빈자리는 어떤 가치가 자리할까?
실제로 방문했을 때, 사실 닭장같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태생이 고밀도 주거건물이라(부동산 수익을 고려해서 지어진 건물이라) 층고도 낮고 개별호실도 좁았다.특히 컨셉을 살리기 위해 과감하게 그어진 사선의 벽들이 과연 최선의 생활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건축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 느닷없이 '자기작품'하겠다고 덤비는 것은 현실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주어진 프로그램과 기능/용도에 맞게 설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설계자에게 재량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건물이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설계자의 몫이니까.
이미 여러번 뉴욕을 방문했기 때문에 타임스퀘어가 특별하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야하는 생각으로 아쉬움에 잠길때쯤 기념으로 방문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쿨한척 뒤로 미뤄버린 일정이었지만 여전히 반갑고, 설레고, 신기했다. 유명하기 때문에 유명한 Times Square, 사람들은 왜 이런 곳을 좋아할까? 아니 왜 나부터 이런 곳을 좋아하는걸까?
집에 돌아가는 길까지도 여행의 당연한 일정인데
너무나도 아쉬웠다. 뉴욕의 마지막 밤은 Times Square 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재즈 바이다. 근처에 NYU 강의동과 기숙사가 있기도 하고 젊은 친구들이 많은 재즈클럽이다. Bluenote는 정장입고 가는 분위기라면 여기는 슬리퍼신고 가도 아무 문제 없다. 안에서는 Beer Pong, Pool table, Foosball등 여러가지 게임도 준비되어있다.
그렇다고 음악에 신경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입장료는 $4 정도인데,
정말 훌륭한 아티스트들이 공연한다. 시끌벅적하고, 젊고, 음악이 좋은 곳이다.
아! 아직 밤이 이른데, 술이나 한잔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