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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mal May 16. 2020

장 누벨의 루브르 아부다비

사막에 그늘을 드리워야겠다. 

'사막에 그늘을 드리워야겠다.',

이 글은 UAE 아부다비에 위치한

루브르 박물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막의 뙤약볕에 지친 자들이여

서늘한 그늘이 있는 곳에서 쉬어가시게


사실 쉬운 일이다. 다음 사람을 위해 잠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는 일. 무거운 짐 진 자를 위해 잠시 문을 잡아주는 일. 조회시간에 몰래 까치발을 들고 그늘을 만들어 주는 일. 무언가 대단한 일을 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쉬운 일들이다. 아마도 장 누벨에게 공간으로 감동적인 장면을 만드는 일이 그렇게 쉬운지도 모르겠다.


장누벨이 그늘을 만드는 법. 아라베스크 무늬를 7겹 쌓아 마치 자연의 숲속을 거니는 듯한 공간을 만들었다.



'건축은 기후와 환경에 대처하는 공동체의 태도'라는 관점


루브르 아부다비관은 장 누벨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유독 '기후에 대처하는 건축가의 태도'를 잘 표현했다. 모래밖에 없는 사막 섬 사디야트(Saadiyat)에서 뜨거운 태양을 막아 사람이 살기 좋은 한가로운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생각이겠거니 가볍게 보기에는 그가 그늘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뒤죽박죽 특별히 나타내는 것이 없는 것 같은 무늬는 알고 보면 아라베스크 문양에서 영감을 받았다. 또한, 하나의 거대한 모임공간을 만들기 위해 최소한의 기둥을 사용해 돔 구조를 지탱하는데 내부의 사용자들은 공중에 떠있는 것 같다는 착각을 들게 할 정도다.


이 작품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싶다면 같은 자리에서 다른 건축가들은 어떤 고민을 했는지 비교해보면 좋다.



같은자리에서,


프랭크 게리는... 이 동네에서 흔한 천막을 본떠 만든 조각 작품을

노만 포스터는... 친환경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공학적으로 접근한 작품을

자하 하디드는... 마치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것 같은 유기적인 조형물을  만들었다.


프랭크 게리, 노만포스터, 자하하디드 등 불세출의 건축가들이 같은 지역의 비슷한 용도의 건물을 두고 경합을 펼쳤다.


아쉽게도 세 작품 모두 아직 완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험을 토대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향후 이 중 어느 건물이 완공이 되어 나의 기호가 바뀔 수도 있겠다. 하지만, UAE 아부다비라는 역사적 맥락이 빈곤한 땅에서, 무엇보다도 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뜨거워지는 사막기후 아래서 건물이 어때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 작품이라 공부하는 즐거움이 있었던 건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루브르를 방문했을 때, 외부환경에서 서늘한 그늘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녹음이 짙은 숲 속에서 경험하는 상쾌함을 새로운 장소에서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수변공간이 전해주는 기분 좋은 촉촉함과, 서늘한 그늘 사이로 떨어지는 찬란한 빛과 그림자가 공간의 매력을 한껏 올려주었다. 공조시설로 관리가 되는 실내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미술관을 그저 돈 많은 아저씨들의 취미생활이라 생각하기엔 아쉬운 부분이 있다.  ‘먹고살기 바빠서 예술 같은 건 개나 줘버린’ 입장에서 ‘한가로이 그늘 속에서 사색하는 삶’으로 바뀌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소일 거리라기엔 참 품격이 있는 편이다. 삶의 질을 격상시키기 때문이다.




노을빛이 노오랗게 공간을 물들였을 때... 그리고 공연


내가 갔을 땐, 미술관 내부에서 전통예술 공연이 한창이었다. 아랍의 음악을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은데 운이 좋았다. 마침 해가 기울면서 백색의 공간이 노오란 개나리의 색이 되었다. 사람들은 노란 햇병아리가 된 상태에서 무대와 관객석의 구분이 없는 공간에서 공연을 즐겼다. 나는 당시 파병 중이던 군인으로서 거친 배 생활로 감성이 많이 메말라 있었는데 번지수를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을 했다.


중앙에 위치한 물과 휴식의 공간에서는 아랍문명 특유의 전통문화공연을 진행한다. 밤이고 낮이고.



루브르라는 이름값 부족하진 않지만 무언가 아쉬운


사실 내부의 전시물은 '루브르'라는 브랜드 가치에 걸맞은 진귀한 것들이 많았지만, 양이 굉장히 적은 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름을 대여하는 것과는 별개로 상당한 돈을 들여 전시품을 빌려와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가지로 이 미술관은 독특한 구석이 많다. 그중에는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고질적인 질문들도 있다. 가령, 이 곳은 예술 테마파크인가 미술관인가? (혹은 굳이 둘을 구분해야 할까?) 건물이 지나치게 나대는 것은 아닌가, 왜 작품보다 건물에 시선을 빼앗겨야 하는가?, 왜 나폴레옹을 아무 연고 없는 사막에서 봐야 하는가, 그냥 파리에서 볼 수는 없었나? 아부다비에 위치한 덕에 다양한 검열제도를 통과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과연 이건 온당한 것인가? 와 같은 질문들 말이다.  


이런 고민들은 사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이들에게는 시답잖은 것일 수 있다. UAE는 석유가 다른 에너지원으로 대체되었을 때를 걱정하고 있다. 아부다비는 교육과 문화예술로 방향을 정했다. 그리고 그들이 사디야트(Saadiyat Cultural District)에서 추구하는 바는 고급 예술이며 장 누벨은 그 기대를 충분히 부응해주었다. UAE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또 하나의 관점은 라이벌 구도이다. 같은 나라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두바이(Dubai)와 아부다비(Abu Dhabi)의 관계는 묘하다. 한일전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의 프로젝트 면면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두바이는 제2의 라스베이거스를 꿈꾸며 세속적인 욕망을 마구 표출하는 반면에 아부다비는 고급 예술을 지향한다. 그리고 그런 땅에서 장 누벨이 가장 먼저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함축해서 보여주는 예라 생각한다.


 

건축은 사회적 산물,

다양한 맥락에서 톺아볼 때 이해할 수 있는 종합예술


루브르 아부다비를 방문하며 다시 한번 '건축은 사회적 산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07년 즈음, 건축학도로 처음 이 작품을 보았을 때에는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공간에 전율을 느꼈다. 시간이 많이 흘러 군인의 신분으로 방문했던 루브르에서 내가 어떤 공부를 했었는지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그런 세상은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까? 중동의 사막 섬에서 재밌는 생각을 하고 왔다. 만약, 아부다비를 경유하는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한 번쯤은 가보고 싶으실 테다.


장 누벨루브르, 이 둘만 있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도 건축을 공부하고 고민할 수 있어서 좋았다.


2020.05.16

다니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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