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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mal May 19. 2020

너의 뉴욕을 기억할게

지난 10년간의 뉴욕 여행을 되새기며

Happy Thanksgiving, 뉴욕!'


"(시끄러운 TV 소리) 터치다운! 터치다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방 한켠에 놓여있는 TV를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내가 묵었던 하이호스텔(HI Hostel New York)은 이제 겨우 주방 공사를 끝낸 것 같았다. 스치는 모든 것들이 날카로웠고 매서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게 된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새로웠다. 약간은 허무맹랑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TV나 영화 속에서나 어울리는 것인데 그 한가운데 내가 있었다. 참 많이 낯선 풍경이다.


2009년 11월, 타임스퀘어에서 추수감사절 기념행사가 있었다.


오후가 되자 주방에는 시끄러운 소동이 일었다. 호스텔에서 서--비스로 준비한 터키(Turkey)가 준비되었기 때문이다. 허둥지둥 달려가 초록색 그레이비소스를 잔뜩 담고 기름기가 철철 넘치는 칠면조 고기를 담았다. 사실 고기의 맛과 풍미는 기억에 나질 않는다. 다만 눈이 쨍하게 밝았던 주방 LED 조명과, 이런 명절에나 느낄 수 있는 왁자지껄 부산스러운 분위기, 투박한 아메리칸 드립 커피의 냄새와 물기가 흥건한 싱크대의 모습만 아른거릴 뿐이다. 참 이런 별 것 아닌 모습들이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 (코로나로 항공편이 모두 끊긴 요즘에는 더욱이.)


사실, 나는 영어가 자연스럽지 않았던 때부터 꽤 오랫동안 뉴욕을 꿈꿨었다. 시트콤 <프렌즈>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서 뉴욕에서 사는 것이 곧 성공한 삶일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 내 컴퓨터 바탕화면은 뉴욕의 야경사진이었다. 흠잡을 곳 없이 아름다운 사진이었다. 내 기억에 9/11 이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설치예술작품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나는 맥락 없이 “My dream of hometown."  새겨 넣었다. 우리 고향이 꿈이 참 많은 도시였나보다. 


이것도 생각하면 참 궁상맞은 사진이다. 스테이크가 너무 비싸서 (80$) 브로콜리를 시켰었다. 나도 감자가 먹고 싶었는데.


과외도 하고 코스트코에서 타이어도 팔면서 겨우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당장 내일 식비가 없는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유명한 스미스 울른스키 스테이크가게를를 어느 날에 갈지 고민했다. 배짱이 두둑한 날들이었다. 그때 내 과외비가 한 달에 25만 원 정도였으니 돈이 쉽게 모일 리 없었다. 어쩌다 운이 좋아 꽁돈이라도 생기면 급한 불부터 끄는 식이었다. 당시 최저가로 구매한 97만원짜리 전 일본공수(ANA)  항공권을 해결하니 숙박비가 모자랐다. 급한대로 추석기간 동안 타이어를 팔았다. 그 돈을 모아 겨우 숙박비를 해결한다. 젠장. 이젠 가서 쓸 돈이 없다. 시나리오대로라면 5일 이후엔 굶는 수밖에 없다. 나는 출발 하루 전까지 이런 문제들로 골머리를 앓았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뉴욕


Top of the Rock 록펠러센터 전망대 (2015)


그러고 보면 여행은 참 성가신 일이다. 점심에 뭐 먹을지를 한 달 전부터 고민한다. 그뿐이랴. 생전 클래식이라곤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메트 오페라뉴욕 필하모닉을 기웃거린다. 관광객으로서 윤리적 책임감 같은 게 느껴진달까. 그땐 정말 그랬다. 뉴욕을 언제 또 방문할지 모르겠다 생각했고, 죽을힘을 다해 돌아다녔다. 스마트폰이 없었으니 한 손에는 전자계산기를 들고 겨드랑이 참에는 지도를 끼고 하루 종일 걸었다. 참 낡고 행복한 순간들이다.


여행을 떠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그중에 하나는 역시 비용이다. 아주 특별한 소수를 제외하고 태평양을 건너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테다. 실제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지출을 설계하다 계획을 접고 나도 많이 그랬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결국 떠난다. 모든 비용을 기꺼이 감수하고 간다. 우리가 이토록 용기 있게 행동하는 때가 많지는 않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행동하게 만든 걸까?



너의 뉴욕을 기억할게


뉴욕 방문 때마다 잊지 않고 참여하는 Joyce Gold History Tour


여행은 사실 여기서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뜻이라 한다. 마음이 지옥인 사람들은 어딜 가도 지옥이다.  그렇다고 집 안에 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 않겠나. 우리가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겪어봐야 아는 것들이 있다.


나는 뉴욕이 좋았다. 마음의 문을닫고 외톨이로 살아가던 때에 오직 시트콤 <프렌즈>만이 나의 벗이었다. 하루 종일 귤 까먹으면서 <프렌즈>를 보고 뉴욕에 사는 상상을 했다. 그곳엔 친구와 사랑과 인생이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5년을 보냈다. 2009년 가을의 끝자락에 마주한 뉴욕이라는 도시. 그 이후에도 여운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어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뉴욕을 방문했다.


앞만 보고 달릴 때에는 잘 몰랐다. 돌아온 길을 둘러보니 역시 이것또한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제 더 이상 뉴욕이 내 인생의 정답이 되어줄 것이란 믿음은 없다. 나는 어디서든지 잘 살 수 있다는 새로운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욕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마치 첫사랑처럼 오랫동안 따랐고 좋아했다. 내가 태어난 도시 혹은 내가 자란 도시를 제외하고 전 세계 어딘가에 지도를 펼치지 않아도 눈에 훤할 만큼 잘 아는 도시가 있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다. 덕분에 어디서든지 길을 잃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그것이 내 삶이든, 어느 도시이든.


앞으로는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게 될까?

서울 안의 뉴욕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을 마친다.


다니멀 씀.

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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