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프레데릭 옴스테드, 그가 꿈꿨던 풍경은?
서울 노른자 땅에 위치한 토지 100만평(센트럴파크의 면적 근사치)을 녹지로 덮어버리겠다고 발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경복궁 옆 송현동 부지가 약 5천억정도의 시장 가격을 갖는다고 알려졌는데 이 땅이 약 1만평 정도 된다. 그러니 송현동 부지와 비슷한 조건의 땅 100만평을 공원으로 덮겠다면 토지대금만 어림잡아 50조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공원을 만들든 건물을 짓든, 자본주의 경제체제 안에서 건축행위는 공동체의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만약 계획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면 자본의 논리와 그것을 보호하는 법률, 행정규약 그리고 관습을 토대로 의견을 조율하고 결정을 내린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예시에서처럼 넓은 면적의 공원이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50조 규모의 땅을 개발한다면 임대수익이 상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박원순 시장과 같은 행정가들은 경제적 이득을 충분히 상쇄할 만큼의 공원의 가치를 파악하고, 시민들을 설득해야하는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도시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회고적으로(retrospective) 선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당대 사람들이 어떤 가치관으로 삶을 바라보았는지, 이 가치는 왜 저 가치보다 더 높게 평가를 받았는지 뒤돌아 볼때에야 가늠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맨하탄 섬의 약 6%를 덮고 있는 센트럴파크를 공부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지금의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해낼 자신이 없는 성격의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Designing New York City
https://youtu.be/n7tEkv2Rlk8
여기 영상에서 소개되는 사내는 한번도 도심공원 프로젝트를 설계해본적 없는 풋내기 청년이다. 게다가 설계공모 데드라인을 하루 넘겨 제출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도대체 19세기 뉴욕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기에 센트럴 파크라는 멋진 사고가 일어난 것일까?
어느 곳에나 몽상가는 존재하고, 어느 시대나 청춘은 있다. 1850년대 뉴욕에는 이런 젊음과 청춘이 있었다. 피카소와 고흐가 태어나기도 전의 세상의 일이라 조금은 미치광이같고 전근대적인 요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무슨 꿈을 꾸면서 사는지, 어떤 비전을 갖고 살아가는지 물어보고 싶게 한다. 도심속에 전원풍경을 설치하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했을지, 도대체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풍경은 어때야하는지 궁금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