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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mal Jun 18. 2020

먹고사는데 별 도움 안되는 예술

왜 하는가

예술의 진정한 의미? 


대중음악이 그가 누리고 있는 문화 예술활동의 전부라고 그 사람을 낮게 평가한다면 그것은 오만한 처사일 것이다. 예술이 우리들의 생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사람들이 예술과 멀어지는 것은 자연스런 것이다. 하지만, 정서적 웰빙을 위한다면, 가끔은 예술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수 있다. 예술이라 하여 그 칭호에 부담감을 느낀다면 회화 미술에 국한하여도 좋겠다. 가령, '미술은 과연, 시감각에만 호소하는 단순한 눈요깃거리에 불과한 것일까?' 따위의 질문 말이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뻔하다. 우리는 예술을 숭상하지는 못할망정 존중하라고 배웠다. 그런데 이 질문은 용감하게도 미술을 눈요깃거리로 폄하하려 한다.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이 질문이 숭상의 문제라기보다 존중의 문제라는 것을 쉽게 인식할 것이다.

 

 질문은 사실 유서가 깊다. 미술이 단순한 눈요깃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꽤 오랜시간동안 진지한 담론이 오갔다. 조르조 바사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등 불세출의 거장들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으면 왈가왈부하는것 자체가 무의미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나같은 비전공 학부생이 예술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 가당한 일이기나 할까? 오랫동안 고민해봤지만 많이 부족함을 느꼈다. 그래서 서울대학교 미학과 박사 정수경선생님이 강의하시는 <미술론 입문>의 힘을 빌리고자 한다. 물론 이 강좌도 예술계에 획을 그을 엄청난 이론을 서술하기 위한 강좌는 아니다. 나는 그저 앞서 언급했던 내 삶의 정서적 웰빙을 위한 것이다. 바라건대 무감에 미술관을 드나들었던 나같은 사람들에게 미술관에 드나드는 즐거움이 생겼으면 좋겠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이 작업에 KOCW <미술론입문> 강좌가 제격이라 생각하는데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미술이 내게 소중하게 다가온 순간


안철수 교수의 <영혼이 있는 승부>에선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나는 우주에 절대적인 존재가 있든 없든,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켜나가야 할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아무런 보상이 없더라도 그것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세에 대한 믿음만으로 현실과 치열하게 만나지 않는 것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또 영원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살아있는 동안에 쾌락에 탐닉하는 것도 너무나 허무한 노릇이다. 다만 언젠가는 같이 없어질 '별 너머의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 생각한다.


"동시대 사람들과 좀 더 의미있고 건강한 가치를 지켜가면서 살아가다가"


사실 이 인용구는 예술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한사람의 인생관을 나타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었을때 나는 단박에 예술이 떠올랐다. 예술이 품고있는 소통의 가치를 잘 말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학입학 후 만 2년간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다. 가끔은 알량한 내 모습에 겨워 자뻑에 취해있을 때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못난 내 모습에 자괴하는데 써야만했다. 거의 매 순간이 도전이었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가치관들은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고, 끝일거라고 생각했던 사고의 영역은 끝도 없이 넓어졌다. 내 자신이 얼마나 오만한 사람이었는지 처절하게 느꼈다. 이 과정속에서 나는 예술, 특히 미술이 얼마나 영민한 존재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이 사회에 충격을 가하면서 얻고자 했던 가치는 파괴적이고 선정적인줄만 알았다. 하지만 세월이지나 그들을 돌아보니, 그들은 선입관과 편견의 스테레오타입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불통의 영역에 대하여 과감히 도전하는 것. 그들이 생각하는 이 사회의 건강한 가치를 위해, 각자의 의미있는 삶을 위해 총대를 메고 전진하는 것이었다.


아마 뉴욕여행을 하고 나서 이 생각이 더욱 심화 된 것 같다. 갤러리에서 만났던 예술가들이 그들 스스로의 온전한 삶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표현했는지, 그 뜨거움을 기억한다. 그건 아마도 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재하는 작은 개인이 아니라, 생(生)을 영위하는 인간으로서 그들 스스로의 삶에 왜 귀 기울여야 하는지, 그들이 새롭게 발견한 가치가 왜 소중하게 여겨져야 마땅한지를 예술작품을 통해서 강렬하게 외쳐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금방 밑천이 드러날 지식의 양으로 쓰기 때문에 포스트들이 '허세'로 비춰질 까 두렵다. 분명히 이 글은 편협하고 비전문적이다. 위에서 언급한 미술은 고작 아방가르드풍 미술에 집중할 것을 암시하지 않는가? 실로 미술은 다양성과 정의 불가능에 적을 두고 있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용기내어 글을 써보려 한다. 불통의 영역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것이 예술이라면, 내 고민을 간단히 묵살할 수만은 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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