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봐줘

엄마에게

by 무연


엄마는 나를 사랑했다. 그러니까, 나를 사랑했을 거라고 나는 믿었다. 적어도, 내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을 때만큼은.


초등학생이 되기 전부터 소소하게 시작했던 내가 정식으로 바이올린에 매진하게 된 건 중학교 때였다. 다른 아이들처럼 이런저런 취미 여러 개를 전전하다가, 우연히 권유받은 악기였다.

손에 처음 활을 쥐었을 때, 나는 이게 내 악기라는 예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엄마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하고 있는 나’, 그중에서도 ‘이왕이면 잘하고 있는 나’를 엄마는 유독 오래 바라보았다. 나는 그 눈빛이 필요했다. 어쩌면, 살아야 할 이유보다도 더 간절하게 원했다.


그 눈빛이 나를 붙들어줬다. 그것이 이유였고, 전부였다. 그래서 악보를 붙잡고 연습했다.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어깨가 저려도 멈추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멈추고 싶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내가 멈추면, 엄마의 눈도 함께 돌아갈까 봐. 하지만 나도 사람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바이올린 말고도 하고 싶은 게 생겼다.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았고, 시를 쓰고 싶은 날도 많았다. 내 안에 차오르는 어떤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어릴 적 나에게 그것은 생존 본능에 가까운 충동이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말했다.

“그건 취미고, 바이올린도 그만큼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은 무너졌다. 그림을 그릴 때, 엄마는 한 번도 내 옆에 오래 앉아 있지 않았다. 내가 쓴 시도 무심히 넘기거나, 아무 말 없이 덮었다. 그녀의 눈은 언제나 같은 질문을 던졌다.

“바이올린은 했어?”

나는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엄마는 날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어떤 모습의 나만 사랑하는 걸까?


언젠가부터 나는 나를 보여주는 방식이 비뚤어졌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까 봐. 그래서 꺼내든 것이 자해였다. 팔을 긋고, 상처가 보이도록 소매를 걷어, 엄마 앞에 서서 묵묵히 내 상처를 내보였다.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빛은 말했다.

“이제 알겠어? 나, 이렇게까지 아파.”

엄마는 놀랐다. 당연히 놀랄 수밖에. 하지만 그 놀람은 너무 짧았다. 그 뒤로 엄마는 더 조심스러워졌고, 조심스러워진 만큼 더 멀어졌다. 그녀는 나를 끌어안지도 않았고, 무언가를 묻지도 않았다. 그건 오히려 침묵이라는 이름의 방치처럼 느껴졌다.


나는 점점 더 복잡해졌다. 엄마의 관심이 그리워 시작한 자해는 습관이 되었고, 내 감정은 감정이 아니라 증명처럼 작동했다. 아픈 만큼 보여야 한다는 강박. 아프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확신.

그 시절, 나는 누구에게도 건강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상담을 시작하고 약을 먹고, 병원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나는 조금씩 내가 왜 그토록 그 눈빛에 집착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건 사랑이었다. 무조건적인, 조건 없이 나라는 이유만으로 받아들여지는 사랑. 엄마가 그걸 줄 수 없던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의 나를 품고 살아간다. 그 아이는 아직도 가끔, 혼자 방 안에서 그림을 그리며 “엄마, 나 잘했지?” 라고 중얼거린다. 대답은 들리지 않는다.

이제 나는 안다. 그 눈빛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고, 나는 더 이상 그것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걸.

그러나 그럼에도, 그 시절 내가 바랐던 그 따뜻한 한 눈길, 그 손등을 덮어주는 손 하나, 그 말을 건네주던 목소리 하나쯤은, 나라는 사람에게 너무 과한 요구는 아니었을 거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엄마,

그때 나는 당신을 미워한 게 아니었어. 그저 바라봐주기를, 단 한 번이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랐을 뿐이야. 그게, 그때 내가 아팠던 이유야.

그리고 지금까지도 가끔 아픈 이유이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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