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나서 알게 된 것들 - (4) 월급이 사라진 자리
퇴사 후, 무너진 건 마음과 루틴 말고도 또 있었다. 바로 돈의 흐름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다녔던 공공기관에서 약 10년 정도 근무하고 퇴사했다. 그때 받은 퇴직금이 내 손에 들어온 순간 꽤 든든해 보였다.
“이제 나도 뭔가 시작할 수 있겠지?”
“10년 내내 고생했는데, 나를 위해 미국 여행 한 번쯤은 괜찮지 않을까?”
그때의 나는 퇴직금이 ‘내 인생의 새 출발 자금’이라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 달랐다.
마이너스 통장을 메우고, 대출금을 일부 갚고, 몇 달간의 생활비를 쓰고, 매달 아이들 교육비 일부를 쓰고 나니, 그 많던 퇴직금이 정말 순식간에 사라졌다.
월급은 생각보다 강력한 안전장치였다.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돈이 없으니 하루하루가 달라졌다. 돈이 줄어드는 속도와 내가 발을 딛고 선 현실이 그제야 선명해졌다.
“이 속도면… 바닥까지 가는 건 한순간이겠구나.”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내 소비의 민낯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월급을 받을 땐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디지털 구독은 편해서 유지했고,
배달음식은 귀찮으면 눌러서 시켰고,
옷이나 화장품은 잊을만하면 샀다.
이 모든 게
‘큰돈은 아니니까’,
‘나를 위한 건데 뭐’
이런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소비되었다.
하지만 월급이 끊어진 뒤에 돌아본 소비는 하나같이 감정과 편리함에 휘둘린 지출이었다.
편리하긴 했지만, ‘지금 당장’ 없어도 되는 것들.
그걸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아... 그동안 퇴직금에 환상만 품고 있었구나.”
퇴직금은 ‘새로운 삶의 시작을 위한 자본’이라고 여겼는데, 실제로는 내 소비습관과 재정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자금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퇴사 전부터 이 퇴직금만 바라보고 버텼다면 내 인생은 더 허무했을지도 모른다. 퇴직금은 시작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돈에 무심했는지’ 알게 해 준, 나를 깨운 차가운 진실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맞벌이 부부였다.
남편이 일부 생활비와 교육비, 대출금을 분담해 줬기에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외벌이가 되는 순간을 상상하니 현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그래서 그 시점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다.
디지털 구독 서비스 정리
배달음식 최소화 (집밥 늘리기)
불필요한 소비 끊기 (특히, 빵 종류)
모임과 외식 줄이기 (필요한 모임만 참석)
생활비 예산 정하기 (가계부 쓰기)
돈이 빠지는 길을 막아야 내 마음도, 계획도 안정됐다.
혹시나 퇴사를 고민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퇴사 전에는 꼭 이 두 가지는 준비해두었으면 한다.
✔ 최소 6개월을 버틸 수 있는 ‘생활비 여윳돈’
예상보다 내 마음은 더 흔들리고, 돈은 더 빠르게 나간다.
✔ 매달 몇십만 원이라도 꾸준히 들어오는 수익 구조
큰돈이 아니어도 좋다. 단지 내가 무너지는 속도를 늦추는 장치라 생각하면 된다. 이런 안전망이 있어야 퇴사 후 조급해지지 않고 인생을 다시 설계할 수 있다.
퇴사 후, 돈 문제는 나를 더 작게 만들었고 내 삶의 허점을 정확히 보여줬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소비의 패턴을 보게 되었고, 새로운 삶의 구조를 다시 설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