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나서 알게 된 것들 - (3) 움직임이 주는 위로
고대했던 정부창업지원사업도 줄줄이 고배를 마시면서 퇴사 후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졌다.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앞으로 뭘 해야 하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게 맞는 선택이었을까?”
생각은 계속되는데 정작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끝나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상했다.
나는 분명 ‘쉬고 싶어서’ 퇴사한 게 아니라
‘더 나답게 살고 싶어서’ 퇴사한 건데.
쉬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계획을 세우는 것도 아무것도 나를 살리지 못했다.
그때 알았다.
생각이 너무 많아졌을 때 필요한 건
생각이 아니라 ‘움직임’이라는 것을.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집 근처 산을 올랐다. 처음엔 그저 답답한 마음을 떨쳐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걷는 동안 머릿속의 소음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사람이 숨을 헐떡이며 걷다 보면 잡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나쁜 생각도, 불안도, 미래 걱정도 모두 한 걸음 한 걸음 사이로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어느 순간, 걸음의 리듬이 마음의 리듬을 맞춰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주 3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음악도 듣지 않고, 그저 나무와 흙냄새를 맡으며 바람 소리를 들으며 올라가는 시간. 걷다 보면 머릿속의 생각들이 조금씩 가라앉고 몸의 리듬만 남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조용히 깨달았다. 내 온몸이 산이 주는 선물들을 그저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계획도 의미도 없이
그저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등산으로 조금은 체력이 올랐다는 생각에 여름이 되자 저녁 러닝을 시작했다. 처음엔 10분도 못 뛰었지만 뛰고 나면 몸이 가벼워졌고 마음도 가벼워졌다. 뛸 때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게 좋았다.
퇴사 이후 나는 온종일 ‘생각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는데 뛰는 동안만큼은 생각이 ‘멈춰’ 있었다. 뭔가를 잘하려고 뛰는 것도 아니고, 건강해지려고 뛰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날의 나를 조금이라도 구하고 싶어서 뛰었다. 그렇게 러닝은 나에게 ‘움직임으로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저녁 러닝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일정이 생기면 러닝을 금방 미루게 된다.
“오늘은 애들 식사 챙겨야 해서…”
“오늘은 너무 더워서…”
“내일 아침에 하면 되지, 뭐.”
그 ‘내일 아침’은 영원히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아침 러닝을 해보자!
매일 5시 45분.
하루의 가장 조용한 시간에 눈을 떴다.
어스름한 새벽빛 속에서 달리기 시작하면 숨은 차오르지만 마음은 희한하게 맑아졌다.
2~3km를 뛰고 집에 돌아오면 동이 트는 순간을 볼 수 있었다. 그 장면이 너무 짜릿했다.
아침 8시 전에 운동도 끝나고, 샤워도 끝나고,
머릿속도 맑아진 상태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하루를 내가 다시 잡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퇴사 후 내 마음은 머릿속에서만 계속 움직이고, 몸은 멈춰 있던 모순적인 상태였다. 그러니 당연히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나는 더 무기력해졌고 더 작아졌다. 그런데 몸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마음도 조금씩 따라 움직였다. 산을 오르고, 저녁에 뛰고, 아침 러닝을 하며 다시 하루를 회복하면서 나는 깨달았다.
몸이 먼저 살아나야 마음이 따라온다는 것.
그 작은 걸음들이 무너진 나를 다시 붙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