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나서 알게 된 것들 - (5) 내가 잘하는 것
퇴사 후,
나를 지독히도 괴롭혔던 질문은 의외로 아주 단순했다.
“그래서, 나는 뭘 잘하지...?”
회사 다닐 때는 굳이 이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할 필요가 없었다. 직함이 있었고, 역할이 있었고,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사라지자 나는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볼 때면, 잘 나가는 사람들만 보였다. 그들 앞에서 나는 더 작아졌고, 내 자리는 점점 흐려지는 것 같았다. 내가 잘한다고 생각한 것들도 점점 무색해졌다.
정답이 안 보일수록, 질문은 더 커졌다
‘경험은 많은데,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잘하는 게 있긴 한 걸까?’
‘그냥 오래 다닌 직장인일 뿐이었던 건 아닐까?’
생각은 계속 맴돌았지만 정답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이 질문은 단번에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갤럽 강점검사, 나를 설명할 언어를 찾다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이것저것 시도해 보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갤럽 강점검사였다. 참고로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혁명' 책을 사면, 책 속에 무료로 테스트해 볼 수 있는 ID코드가 있다.
검사 결과, 나의 강점 TOP5는 '배움', '책임', '발상', '행동', '미래지향'이었는데, 솔직히 극적인 감동이 있지는 않았다. 처음엔 “아, 그렇구나.” 그 정도였다. 하지만 문장을 다시 읽고, 내 지난 시간을 하나씩 대입해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 ‘그래서 내가 이 역할에서는 꽤나 즐거워했구나.’
강점검사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기보다는 내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꺼내주었다고 할까.
챗GPT와의 대화, 생각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다
강점검사 후에도 뭔지 모를 답답한 마음에 챗GPT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했다. 내 생각을 그냥 던졌다. 나에 대해 떠오르는 단어들, 중복되는 고민, 내가 성취하고 실패했던 순간들, 갈팡질팡 하는 사소한 감정들까지 모두. 그런데 신기하게도 대화를 이어갈수록 머릿속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통된 패턴이 보였다.
어느 순간, 이런 문장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의미와 방향을 함께 찾아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기보다, 상대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 나에게는 꽤 자연스럽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대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는 순간들을 나는 꽤나 즐기고 있었다. 처음으로 팀장이 되어 팀원들과 함께 일 할 때도, 고민이 생겨 찾아오는 동료와 친구들에게도 나는 그런 존재였다.
예전에는 그걸 ‘특별한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 익숙해서, 굳이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퇴사 후에야 그 익숙함이 내가 가장 오래, 가장 꾸준히 잘 해온 일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한때 '내가 잘하는 것'을 찾는 자기 탐색은 뭔가 거창할 것이라 생각했다. 인생을 바꾸는 책 한 권, 한 문장을 만나야 하고, 뭐랄까 운명 같은 순간이 있어야 한다고. 그런데 내가 겪은 현실은 달랐다. 검사결과 속 한 줄, 매일 마주하는 끊임없는 고뇌, 생각, 느낌들 속에서 시작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난 18년 직장생활 동안 제대로 '나'를 바라본 기억이 없다. 언제나 가족, 타인의 시선이 더 먼저였다. 그래서 '나'를 알아가는 지금이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하다. 그렇다고 “나는 뭘 잘하지?”라는 질문에 나는 아직도 완벽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다. 정답은 어느 날 번쩍 떠오르지 않았고, 무수한 대화, 질문들 속에서 조금씩 윤곽을 드러냈다는 것.
그리고 온전한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작은 시작점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