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2017년 5월 1일, 동생과 함께 먹거리 가게, 단정을 시작했습니다. 함께 하자고 결정한 순간부터 가게를 열기까지 모든 일들을 일사천리로 헤쳐 나갔던 것은 아직도 두고두고 회자하는 이야기입니다. 싸게 인수한 낡은 가게의 곰팡이 가득 핀 벽지를 뜯어내던 일, 카운터와 작업대를 만든다고 직접 목공소로 뛰어다닌 일, 가스레인지, 에어컨, 냉장고를 싼 가격에 구매하기 위해 중고 시장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던 일. 모두 자매인 그녀와 함께였기에 설레고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 일 중에 가게 이름을 어떻게 지을지 고민했던 날들이 생각납니다. 그 속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가게의 모습, 제품, 만듦새, 주인들의 생각까지. 이름을 내뱉는 순간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야 합니다. 하지만 정작 내 일이라고 생각하니 얼마나 어렵던지요.
머리가 둘이나 있는데도 후보만 쌓여가고 마땅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동생이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조카 호나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가게 이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름 좀 지어줄래?" 하니 아이의 대답이 "단정 어때, 그냥 단정하게 해. 그게 엄마랑 제일 잘 어울려."였다 합니다. 이야기를 전해 듣고 아차 싶었습니다. 가게의 중심인 주인들을 빼놓고 이름을 짓고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나'가 빠져 있었던 거죠. 더군다나 엄마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얼마나 정확했겠습니까. 돌아볼 것도 없이 단정으로 이름을 정했습니다. 가게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철학관에서 개업 날짜도 받고, 떡집에서 시루떡도 주문하고 말린 북어와 명주실을 구해다가 우리들만의 작은 고사를 지냈습니다.
현재 단정의 모토인 '먹고사는 일 단정하게 합니다.'라는 메시지는 훨씬 이후에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사람의 먹고사는 일이 단정하지만은 않다는 불편한 의미에서 출발했습니다. 더 큰 뜻을 품고 제주로 가겠다는 동생을 보내고 문을 닫을까 고민했던 가게를 지금의 자리로 옮길 때 단정이 제게 보낸 날카로운 충고의 말이기도 합니다. 이제부터야 말로 진짜 내 가게를 만들어가야 할 때라는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끊임없이 사세요 드셔보세요라고 외치는 순간들보다, 어느 날 조용히 저 메시지를 보고 오신 손님과 나눈 말들이 더 선명히 남아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단정함은 단순히 외적인 정리나 겉치레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함 속에서도 주변과 나눌 줄 아는 사려 깊음, 쏟아지는 좋은 것들 속에서도 나만의 좋음을 찾아낼 줄 아는 현명함을 뜻합니다. 그를 기준으로 가게의 가치관, 사람을 대하는 태도,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해결해 나갑니다. 이를 통해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어렵지 않게 저만의 단정다움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가게를 운영한지 이제 10년을 향해 갑니다. 많은 것들이 변했습니다. 시작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생은 제주도에서 '감미롭다 제주'라는 식당을 운영 중입니다. 현재 단정은 저와 남편이 함께 꾸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때에 만들어진 이름과 메시지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그 역할을 훌륭히 해냅니다. 앞으로 전할 이야기들은 가게 단정의 먹고사는 일에 관한 것입니다. 어떤 날은 이웃집 언니와 수다를 떠는 듯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또 어떤 날은 치열한 가게의 현장기록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먹고사는 일이 단정하지만은 않은'이 삶 속에서 서로를 보듬는 위로의 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 글들을 통해 여러분들만의 단정한 씨앗 하나를 찾아낼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해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