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콤달콤쌉사레한 제주청을 만들겠지요
단정의 중요한 재료인 제주레몬을 포함한 재료의 소식들은 겨울을 거쳐 봄을 지나는 사이에 들려옵니다. 3월부터 진행되는 '제주 레몬 클래스'와 '제주청 만들기.'를 잘 해내려면 매일의 날씨도 농부님들의 소식에도 예민하게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합니다. 제주청은 제주에서 생산되는 세 가지 재료인 제주 레몬, 당유자, 팔삭을 섞어서 만드는 단정의 특별한 과일청입니다. 생강청, 도라지청과는 달리 상큼하고 새콤 쌉싸레한 맛이라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입맛을 돋우기에 제격입니다.
제주 레몬으로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제주의 귤들에 대해 시장 조사를 하던 중 당유자를 처음 만났습니다. 실물이 너무 궁금해서 받아보길 기다리는 동안 꽤 설레었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크기는 어른들 주먹만 한 정도에서 들쑥날쑥한 편이었고, 껍질은 우둘투둘했습니다. 향을 맡아보니 보통 귤에서 말을 수 있는 새콤하고 향긋한 냄새와는 달리 나무껍질에서 나는 것 같은 송진향과 거친 흙냄새 같은 것이 났습니다. 껍질의 두께가 두꺼워 껍질을 벗겨내고 나니 속 알맹이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시고 쓰고 너무 맛이 없어서 먹자마자 뱉었습니다. 절대 그냥은 먹을 수 없는 맛,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을 건드린 느낌.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당유자가 없으면 단정의 제주청은 그 맛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예로부터 당유자는 각종 제사상에 올라가거나 임금님의 진상에 올라가는 매우 귀한 과일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방언으로는 댕유지라고 불리며 제주에서는 아이들이 감기에 걸렀을 때 이를 약으로 먹었다고 해요. 또한 당유자는 '맛의 방주'에 당당히 등재되어 있는 자랑스러운 재료입니다. *맛의 방주(Ark of Taste)란 이 탈리아 브라에 본부를 두고 있는 비영리 국제기구인 글로벌 슬로 푸드 국제 본부가 진행하고 있는 전통 음식과 문화 보존 프로젝트로써, 쉽게 말하자면 지구가 멸망해도 지켜내야 하는 토종 종자나 토박이 식품들을 선정해서 남기자는 일종의 운동입니다. 선정 기준은 특징적인 맛을 가지고 있을 것, 특정 지역의 환경 • 사회• 경제 • 역사와 연결돼 있을 것, 소멸할 위기에 처해 있어야 할 것, 전통적 방식으로 생산된 것 등입니다. 당유자가 이에 선정된 것은 제주 고유의 맛과 배경을 타고난 귀한 재료이지만 반대로 멸종 위기에 놓여 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제주에서도 이 당유자를 키우시는 농가는 몇 되지 않기 때문에 구하기 위해서 수소문을 많이 해야 했습니다.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시는 분을 찾다가 발견한 제주의 농부 은파각시님의 ‘팔삭’도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재료입니다. 풋귤로 인연을 맺은 은파각시님이 재배하고 계셔서 알게 된 팔삭은 제주 자몽이라고 할 정도로 그 맛과 식감을 담아 있지만 저는 팔삭이 훨씬 맛있습니다. 속껍질이 질긴 탓에 겉껍질과 속껍질을 모두 벗겨 알맹이만을 먹어야 맛있는 것이 좀 귀찮긴 합니다. 알맹이가 탱글탱글해서 씹는 맛이 있고, 와락 터지는 새콤한 과즙이 입속에 퍼져 순식간에 침이 고입니다. 끝 맛이 달콤하게 혀에 잔상처럼 남아, 껍질을 수고스럽게 벗겨내는 일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집니다. 한번 먹어본 사람은 반드시 다시 찾는다며 농부님과의 통화가 길어집니다. 얼마나 정성 들여지으시는지 전해주시는 농사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언젠가 꼭 막걸리 한잔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제주에서 나는 레몬과 당유자, 팔삭을 껍질부터 속까지 모두 갈고 착즙 해서 만들고 있습니다. 당유자로만 청을 만들었을 때는 뭔가 어려운 맛이어서 단정의 맛으로 정하기엔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 재료를 어떻게든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던지라 부족한 점을 서로 보완해 준 레몬과 팔삭을 섞어보기로 한 것입니다. 세 가지가 섞이는 것이라 어느 것을 더 넣고 덜 넣는지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입니다. 비율을 찾는 것이 관건이지요. 일이 재미있어지는 순간입니다.
단정에 오는 모든 재료와 맛이 소중하지만 결국 손님들에게 갈 때는 '맛있다.'는 보편적인 기준 아래 단정만의 것으로 재해석해야 합니다. 만들면 만들수록 변수도 심하고 어려 운일이 수제청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거 재료 잘라서 설탕 뿌리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말, 왜 안 들어봤겠어요. 하지만 단정에 오셔서 함께 만들기를 하고 나면 한결같이 하소연합니다. '힘드네요, 사서 먹는 게 낫겠어요.' 라며 돌아갑니다.
매서운 겨울바람과 눈을 이기고 레몬과 당유자, 팔삭이 차례대로 도착합니다. 지구가 멸망해도 지켜내야 할 재료가 어디 당유자뿐이겠습니까. 팔삭도 레몬도, 단정에 오는 모든 것들이 소중합니다. 그만큼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것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전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마음도 함께 병에 담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는데 그런 날이 온다면 과연 단정은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과연 어떤 것을 지켜내고 싶은 걸까요. 답을 찾을 수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소명을 찾았다고 여겨도 될는지요.
*맛의 방주: [네이버 지식백과] 맛의 방주(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