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장이 내킬 때 여는 식당
3월도 이제 막바지입니다. 장을 보러 갔다가 여러 가지 봄나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니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단정의 방을 열어야 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나열되는 메뉴들을 정하고 후다닥 공지를 만들어서 올렸습니다. '봄밥 먹으러 와요.'라는 인사에 반갑다고 연락을 하나 둘 주시고 있습니다.
단정의 방은 가게 한켠의 방입니다. 주방과 사무실, 홀 외에 남겨진 공간이지요. 시부모님께서 사시던 주택 1층을 개조한 것이라 이 방은 원래 안방이었습니다. 이곳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재작년부터 손님들과 함께 맛있는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편안하게 시간을 나누는 단정의 식당으로 종종 이용하고 있습니다. 지난겨울에는 수프 카레와 우리밀 스콘, 생강 라테를 그전에는 쇼가야키(생강고기구이) 정식과 홍차, 쿠키를 먹는 식당을 열었습니다. 이 날은 오시는 분들이 최대한 편안하길 바라면서 준비합니다. 미리 수저와 앞접시를 가지런히 놓아두고, 따뜻한 차를 우려 놓고, 환기를 하거나 온도를 조절해 적당한 공기를 만들어 놓습니다. 별스러울 것 없지만 정성으로 준비한 음식들을 드시고 편안하게 놀다가 가시면 됩니다.
여는 날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갑작스럽게 엽니다. 굳이 표현을 만들자면 상시가 아닌 임시로 열리는 곳입니다. 요즘은 임시로 연다는 표현을 '팝업'이라고 하는데 이게 단정과 어울리는 단어는 아닌 것 같아 쓰는 것을 피하려 합니다. 이러니 저러니 말을 늘어놓았지만, 주인장이 내킬 때 여는 식당이라니 요상한 것은 맞습니다.
왜 자주 열지 않느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에게 답변을 잘하고 싶지만 참 어렵습니다. 수제청 가게로 시작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채울 수 없다는 허기를 느꼈을 때 생각했습니다. 계절의 재료들을 만나는 순간, 맛있는 것을 만들었는데 나눌 사람이 없을 때, 곳곳에 피고 지는 자연의 소식들, 문득 공간에 드리우는 햇빛, 마침 우연히 겹쳐진 연주곡 같은 소소한 행복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하지만 손님을 맞이하는 일은 즉흥적인 감정으로만 대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단정의 방을 치르고 나서 소진된 에너지를 회복하느라 꽤 오래 씨름한 후에야 깨달았어요. 만반의 준비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요. 애정의 마음으로 주시는 충고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와 단정의 속도였던 것입니다.
지난 단정의 방, 카레 식당의 마지막 날 아침에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유낭(남편)이 말했습니다.
" 와... 나 눈물 날 것 같은데? "
깜짝 놀라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일본의 냄새가 난다며 허탈하게 웃었습니다. 그는 유년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습니다. 돌아보면 좋았다고 할 만한 기억이 하나 없었다고, 말 한마디 통하지 않던 곳에서 외롭기만 했다는 그 시절의 어린 유낭이 참 애처로웠습니다. 그를 가장 위로해 주었던 것은 바로 급식이었다고 합니다. 맛과 냄새, 몇 번을 먹어도 괜찮다 다시 담아주는 밥. 그 향수 덕분에 본인도 식당을 시작했고 8년을 운영했지만 결국 건강을 잃고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누군가의 끼니를 책임진다는 일은 온 마음으로 매일을 갈아 넣어야 해낼 수 있는 일인 겁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기엔 저의 역량이 모자랍니다. 쫓기듯 식당을 연다거나 이윤을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하면 이 방을 열 수가 없습니다. 실수하거나 나가떨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계절에 맞는 재료로 식사를 만들고 어울리는 그릇을 찾고 좋은 차를 내려드리는 일은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주인장이 행복해야 내는 음식도 인사에도 진심을 담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곳을 오래 포기하지 않고 꾸려가려면 더더욱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느리고 생각이 많은 제가 전하고 싶은 말을 한 번에 속시원히 하기 어려운 탓도 있습니다. 늘 전쟁통 같은 주방, 택배 박스가 어지럽게 쌓여 있는 사무실과는 달리 이 방만은 깨끗하게 비워두는 것으로 일과 일사이에 쉼표를 넣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방을 자주 열어 달라는 여러분들의 부탁에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주인장을 조금은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곧 봄밥을 채운 그릇들로 단정의 방에서 만나 뵙겠습니다. 그날까지 모두 안녕하시길 바랍니다.
먹고사는 일 단정하게 합니다.
인스타그램 @_danjung